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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접전에서 기선을 제압한 이숙번이 지신사 유사눌로 하여금 변계량이 작성한 왕지를 대간에 전달하도록 했다. 쾌속 항진이다. 이숙번과 유사눌은 쾌재를 불렀다. 이제 민무휼 민무회를 처치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다음 수순이 문제다. 여세를 몰아 쇠뿔을 단김에 뽑을 것인지 한 박자 늦출 것인지 그것이 문제였다.

원경왕후 민씨의 패악이 적시된 왕지가 대간에 전해지자 조정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했다. 의정부를 비롯한 삼성(三省)이 들고 일어났다. 충성경쟁에 불이 붙었다. 사간원에서 먼저 상소가 올라왔다.

"선한 것을 복주고 악한 것을 화(禍)주는 것은 하늘의 도입니다. 민무구·민무질은 이미 하늘의 주살을 당하였고 민무휼·민무회는 상은을 입어 아직까지 목숨을 보전하고 있는데 종지를 제거하고자 하는 민씨의 음참(陰慘)하고 교활한 것이 극에 달했습니다. 민무회·민무휼의 죄를 밝게 밝히시어 후래를 경계하소서."

원윤 이비와 산모 김씨를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민씨는 왕비다. 임금이 어떠한 지침을 내리지 않는 한 왕비를 성토할 수 없다. 왕비를 입에 담는 것은 불경이다. 화살이 민무휼 형제에게 꽂혔다. 원윤 이비 학대사건에 어떠한 형태로든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것을 캐자는 것이다. 사간원에 이어 사헌부에서 상소가 올라왔다.

“민씨가 종지를 제거하고자 한 일은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 민씨가 잔적(殘賊)하고 참인(慘忍)한 죄악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 민무휼·민무회는 아직도 성명을 보존하고 있으니 한 하늘 아래 함께 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민무휼·민무회를 전형(典刑)대로 처치하여 신민의 울분을 쾌하게 하소서.”

유배지에서 잡아온 죄인을 국문하라

태종은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문간에게 귀양살이 하고 있는 민무휼·민무회를 잡아들여 의금부에 하옥하라 명했다. 영문도 모르고 경기도 해풍 유배지에서 잡혀온 민무휼 형제는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태종이 우사간(右司諫) 조계생, 집의(執義) 정초, 의금부제조(義禁府提調) 이천우, 이조판서 박은, 예조참판 허조를 불렀다.

"해풍에 나가 있도록 명하였을 때 민무휼에게 이르기를 ‘내가 편안히 있으면 너희들도 마땅히 환(患)이 없을 것이나 내가 만일 편안치 못하면 너희들의 화는 더욱 빠를 것이다.’라고 했는데 지금 내가 편하지 않다.”

“죄인을 율에 따라 처결하소서.”

“민무회·민무휼이 원윤 이비의 모자를 죽이고자 한 죄와 세자에게 불경한 죄를 자세히 바루도록 하라. 그 음모에 가담한 민씨의 집 노비도 아울러 국문하라.”

드디어 민무휼 형제에게 국문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추국한 내용을 보고받는 것이 아니라 죄목까지 거명하며 지침이 내려온 것이다. 원하는 답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국문과 심문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심문은 그래도 자의에 의한 진술이고 국문은 강요된 답을 받아내기 위한 방법이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라는 답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고문이 뒤따른다. 곤장은 기본이고 주리를 틀고 낙형을 가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 압슬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문대열에 의정부참찬 최이, 우부대언 서선이 보강되었다. 강도 높게 국문하라는 뜻이다. 승정원은 별도로 계집종 삼덕, 사내종 화상과 한상좌를 내정으로 불러 초사를 받은 다음 의금부에 가두었다. 증거확보 차원이다. 죄인들이 부인하면 대질시키려는 준비 작업이다.

“너는 이 사건을 언제 알았느냐?”

의금부진무 서선이 민무휼에게 물었다.

“그 때에는 알지 못하였고 이듬해 애를 낳아서 교하에 가있다는 말을 들었다. 기축년에 산모의 아비 상에 문상 갔을 때 파주 교하에서 처음 보았다.”

“너는 언제 알았는가?”

의금부진무 전흥이 민무회에게 물었다.

“그 때에는 알지 못하였고 기축년에 문상을 다녀온 형으로부터 원윤이 교하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 만나보지는 못했다.”

“세자에게 불경한 죄를 다시 말하라.”
“할 말이 없다.”

국문 장에서 흘러나오는 비명소리

민무휼은 빳빳했다. 이미 한 얘기를 반복하라니 역겨웠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의금부 도사 이문간이 곤장을 쳐라 명했다. 볼기에 떨어지는 곤장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민무휼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압슬형을 가하라."

의금부 도사의 명이 떨어졌다. 압슬로 가기 전, 다리 사이에 주릿대를 끼워 비트는 주리형이 있었지만 건너뛰었다. 갈 길이 바쁘다는 얘기다. 압슬형, 이거 인간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형문이다. 사금파리를 깔아 놓은 자리에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서 자백을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고문이다.

으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민무휼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입에서는 동물적인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래도 할 말이 없는가?”

“중전이 편찮을 때 아우와 더불어 중궁전에 나갔는데 아우 민무회가 세자를 향하여 눈을 흘기자 세자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물러나올 때에 내가 말하기를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 하였다. 귀양 갈 때 ‘네가 세자에게 무슨 말을 하였는가?’ 하고 물으니 아우가 말하기를 ‘세자가 너희들의 가문이 좋지 않다고 하기에 내가 ’세자는 어느 곳에서 자랐는가? 라고 말했다.”

“민무회는 무슨 말을 했는가?”
“세자에게 고한 말을 잊어서 기억하지 못한다.”

민무회에게 압슬형이 가해졌다. 심문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형문이다. 압슬형을 당하는 죄인이 고통에 못 이겨 빨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도록 만드는 것이 압슬형이다. 자식이 아비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부인이 지아비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형문이다. 이러한 비인간성 때문에 영조 때 폐지되었으나 조선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자행됐다.

“사금파리가 무디어 졌다. 새것으로 다시 깔아라.”

민무회가 축 늘어지며 말이 없자 의금부도사가 날카로운 사금파리로 바꾸어 깔도록 명했다. 대기하고 있던 일단의 노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 나와 뭉개진 사금파리를 치우고 새것으로 깔았다. 의금부에 배속된 사노 칠복이는 노비변정 때 민무회의 집에서 군기감으로 이적된 종이었다.

계집종의 몸에서 태어난 칠복이는 민무회 형제의 국문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평소보다 더 날카로운 사금파리를 준비해두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많이 아프게 해주고 싶었다. 평생 종으로 살아야하는 자신의 출생을 원망하던 칠복은 양반들을 증오했다. 아비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더 커다란 고통을 주면 그것이 복수라 생각했다. 잘못된 인연이고 잘못된 만남이다.

"형들이 죄 없이 죽었다 했소, 그 말이 무슨 죄가 된달 말이오?"

민무회에게 다시 압슬형이 가해졌다. 심문관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 까지 가하는 것이 압슬형이다. 1차, 2차, 3차, 무릎에 올리는 돌의 무게를 배가하며 강도를 더해가지만 대부분의 피의자는 3차에 이르기 전에 무너지고 만다.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민무회의 입에서 동물적인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형들이 모반한 것이 아닌데 죽었으니 죄 없이 죽은 것이다. 세자가 우리 가문에서 자랐으니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라 하니 세자가 말하기를 ‘가문이 좋지 않다.’ 고 말했다. 형이 말하기를 ‘세자는 어느 곳에서 자랐는가?’ 하였다.”

이것이 바로 태종이 원하는 답이다. 의금부로부터 국문 내용을 보고받은 태종은 흐뭇했다.

“이미 형들이 죄 없이 죽었다고 말하였으니 다시 무슨 일을 추문하겠느냐? 민무휼을 원주에 안치하고 민무회를 청주에 안치하라.”

임금의 명이 내려졌으나 지신사 유사눌이 움직이지 않았다. 항명이다. 지신사는 임금의 명이 떨어지면 지체 없이 받들어야 마땅한데 유사눌이 부복(俯伏)하여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간에 지침을 내리는 사람이 임금이라면 지신사에게 지침을 내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지신사는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최고 권력자의 측근에 있는 사람이 균형감각을 잃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때 비극은 현실이 된다. 비서실장이 경호실장에 휘둘려 일어난 비극이 우리의 최근세사에서도 있었다. 역사의 반복. 피해가고 싶지만 답습하는 경우도 있다.

태그:#압슬형, #고문, #형문, #이방원, #민무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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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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