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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희식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네야 인사치레가 되기 때문에 "안녕하세요?" 해 놓고는 전후 사정을 모르지만 일단 "아유~ 얼굴 좋으시네요"라고 덧붙이기는 한다. 이렇게 인사는 하는데 그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 한다. 혹시라도 말 한번 잘못 붙였다가 노인으로부터 끝도 없는 세설을 듣게 되지는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인사를 건네는 것도 누구나 그러지도 않는다. 노인이 자기를 못 알아볼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는 처음부터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더 많다. 노인은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적당하게 예의를 차리는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머니를 모시기 전에 나도 그랬었다.

모임에 친구나 후배가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오면 웃으면서 인사를 드리고 손목 한번 잡아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말이라도 걸어오면 한두 마디 대꾸를 하면서 자리를 뜰 구실을 찾았다. 핏기도 없고 검버섯이 가득 찬 얼굴에 거미줄 같은 게 서린 듯한 노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다.

노인들도 그걸 안다. 당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기가 죽어 있다. 시선도 멀찌감치 밖으로 향하고 있는 때가 많다. 혹 실수라도 해서 자식이 창피나 당하지 않을지, 또는 자기 때문에 자식이 창피해 하지는 않을지 눈치부터 살핀다.

자식을 따라서 온 행사장 구석에서 부모는 혼자 끝나기만을 기다리다 자꾸 어린애처럼 보챈다. 집에 가자고. 그러다 보면 자식도 짜증이 난다. 방에만 있는 게 딱해서 바람 좀 쐬라고 모시고 나왔는데 그걸 못 참고 그러냐고.

이 스님은 근 30년 가까이 '동사섭'이라는 명상수련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셨는데 나도 이 수련을 초급·중급·고급을 총 7회 했었다.

내 야무진 꿈을 설명하러 절을 찾았다. 스님은 크게 반겼다. 부처님 오신 날에 생불이신 어머니부처님을 모시고 오면 좋겠다고까지 하셨다. 큰 활자로 된 <불자독경>이라는 불경집을 하나 얻어왔다. 천수경과 반야심경, 그리고 예불문이 순 우리말로 된 한글 독송집이었다. 어머님의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숙제였다.

궁리를 하다가 생협에서 '우리밀 녹차과자'를 세 봉지 샀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좋아하시는 과자다.

"어머니. 절에 갔더니요. 스님이 어거 어머니 잡수시라고 주셨어요."
"먹꼬?"
"까자."
"무슨 까잔데?"
"자아. 보세요. 하나 잡숴 보세요."


과자 봉지를 뜯어 보였더니 어머니는 눈을 번쩍 뜨면서 "뭐? 스님이? 스님이 사 줬어?" 하신다. 이때다 싶어서 <불자독경>을 펼쳐놓고 이것도 스님이 주셨다고 했다.

과자를 한 입 깨무시더니 뭔가 짚히는데라도 발견한 수사관처럼 눈썹을 살짝 찌푸리셨다. 그리고는 나를 낭떠러지로 밀어 던지는 말씀을 하셨다.

"스님이 이 과자 내가 좋아하는 거 어찌 알았을꼬?"
"스님은 다 알지요. 그러니까 스님이지요."
"스님은 무슨. 어떤 중놈인지 중이 뭣 땜새 이런 걸 다 주고 그락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녹차과자#어머니#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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