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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고용허가제로 입국했던 베트남인 호아(Hoa)는 요즘 "하늘 아래의 세상이 무섭다"고 한다. 그녀가 하늘 아래의 세상이 무섭다고 말하는 건, 먼저 '햇빛 알레르기'로 인해 얼굴 가득 붉은 반점이 돋아 자신이 보기에도 익숙지 않은 자신의 모습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다.

호아는 아열대 지방인 베트남에 있을 때도 일반적인 베트남 여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외출할 때는 얇지만 긴 소매 옷을 입고 햇빛에 장기간 얼굴 노출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농장에서 며칠간 뙤약볕에서 일을 한 후 얼굴 전체가 화끈거리고 좁쌀 모양의 붉은 반점이 돋아 고용주와 함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약도 처방받은 이후 나아지려니 했던 얼굴은 별다른 차도가 없고 간지러움만 더해 갔다. 호아는 한국 물정도 모르는데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이러다 얼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라도 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일을 쉬며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가 낭패를 당했다.

▲ 치료를 받은 지 1주일이 지난 후에도 얼굴에 붉은 반점이 사라지지 않은 호아
ⓒ 고기복
고용지원센터에선 고용주가 근무처변경에 동의해 주지 않아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용주는, "햇빛 알레르기가 아니라 여드름인데 근무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계속 근무처변경을 요구하면 시범 케이스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억지를 부렸다.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말은 근무처변경을 하지 못하도록 해서 불법체류자를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의 '합법화된 외국인근로자 취업 및 고용관리지침'에 의하면 호아는 아무런 문제없이 사업장 변경을 할 권리가 있다. 해당 지침에는 '질병, 부상 등으로 부여된 업무수행이 곤란하나 다른 사업장에서 근무는 가능할 경우 노동부 직권에 의한 근무처 변경을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호아의 경우 '햇빛 알레르기'로 인해 자외선을 쐬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고, 계속 근무를 하면서 치료를 시도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런데도 회사 측에서는 "여드름을 갖고 근무처변경을 요구한다"며 "다른 외국인을 구할 때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퇴사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인 수겅(Sugeng)은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상황에서 양팔 전체에 커다란 수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학약품의 영향이라 생각해서 회사에 보고하자, 회사에서는 일단 업무를 쉬고 치료를 받도록 했다.

치료 기간 중 수겅은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자신 혼자 팔뚝 전체에 수포가 발생했었다는 사실 때문에 계속 근무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는 뜻을 사측에 전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3주 정도의 치료 기간이 지나 완치되자, 곧바로 근무처변경에 동의해 주었다.

이처럼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근무처 변경은 고용주의 동의 여부에 따라 쉽게 이뤄지기도 하고,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최소한 일선 고용지원센터들이 원칙에 따르기만 해 줘도 이주노동자들이 근무처 변경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들은 선뜻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사실 힘들게 외국 인력을 고용한 입장에서는 입사한 지 채 몇 달이 안 된 이주노동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면 속상할 수밖에 없다. 상담을 하다 보면, 그런 속상한 마음을 표하는 고용주들 중에는 "외국인들을 데리고 오려고 사용한 모든 비용, 교육비 등을 내놓으면 근무처변경에 동의하겠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6장 벌칙에 의하면, "제25조(사업장 변경)의 규정에 의한 외국인근로자의 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을 방해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악의적으로 사업장 변경을 방해하며 이주노동자의 신분적 약점을 빌미로 인권침해를 일으키는 고용주에 대해, 벌칙 조항이 원칙대로 적용되기만 해도 사업장 변경과 관련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노동권 침해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도 일선 고용지원센터의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고용주가 이러는데 어떡합니까?'라고 되묻는다. 답은 자명하다. '원칙만이라도 지켜라'라는 것이다. 그래야 병 주고 약 주며, '계속 일해'라고 요구하는 고용주 때문에 하늘 아래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사연들이 사라질 것이고,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이라고 하는 '사업장 변경'으로 인한 문제점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태그:#이주노동자, #근무처변경, #인권, #고용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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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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