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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만 오는 것이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나도 당신을 원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고 당신의 일부분이 되고 싶소."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농부의 아내인 프란체스카 존슨에게 이런 열렬한 고백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 남녀가 이런 확실한 감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만남은 길을 잃은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길을 묻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우연에서 비롯된다. 그런 사소한 만남에서 '우주', '일생'이라는 큰 단어가 오가는 관계로 발전이 된 것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이렇듯 우리 삶에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런 알 수 없는 결과로 인해 때로 기뻐하기도 하고 실망하거나 슬퍼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시작이 좀 거창하지만 올 여름에 나는 이런 '기대'와 관련된 두 가지 흥미로운 사건을 경험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표지모델

"엄마, 오늘 길에서 재미있는 일 있었어."
"뭔데?"
"친구랑 OO백화점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우릴 붙잡았어."
"왜?"
"사진 찍고 가라고."
"무슨 사진을?"
"어떤 잡지사에서 창간 3주년 기념행사로 표지모델 이벤트를 벌이고 있더라고. 백화점 앞에 포토존을 설치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게 하는 이벤트."
"그래? 우리 딸이 예쁘니까 그 사람이 사진 찍으라고 붙잡았구나."
"내참 어이가 없어서. 웃기지도 않네요. 그 이벤트는 그냥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다 찍으라고 하는 거야."


▲ 기대하지 않았던 잡지 표지모델 이벤트 1등.
ⓒ 마이라이프
고슴도치 이론대로 나는 내 딸이 예뻐서 그런 제안을 받았을 거라고 내 식대로 해석했더니 딸아이는 눈을 부라리며 그게 아니라고 정정을 해준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오가는 큰길, 백화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는 게 얼굴이 두꺼워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딸아이는 어쩌자고 그런 담대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

"엄마, 거기 1등으로 뽑히면 OO백화점 상품권 10만원짜리도 주고 그 월간지 1년 정기구독권도 준대."
"그래? 잘하면 공돈 생기겠네."


밑져봐야 본전이니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이었다. 큰딸이 이번 여름에 한국에 나갔다가 경험한 해프닝이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일에 대해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슨 모델인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모델이라면 화장도 곱게 하고 옷도 세련되게 입은 사람이라야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애는 아직 앳된 10대로 화장은커녕 입술에 립그로스 하나 안 바르고 로션 하나 안 바른 이른바 '생얼'이고 옷도 그냥 청바지의 '생옷'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아, 한 가지 점수를 딸만한 근사한(?) 소품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바이올린이었다. 수선해야 할 바이올린을 맡기기 위해 딸아이가 들고나갔는데 그게 중요한 소품으로 쓰였다던가.

하여간 한국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고 결과도 보지 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결과를 발표한다는 날에 전화를 해보니, 오 놀라워라. 딸이 1등으로 뽑혔다는 것이 아닌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유쾌한 일이 생긴 것이었다.

기대했던 보상금은 꽝

▲ 끔찍했던 뉴욕에서의 교통사고.
ⓒ 한나영
작년 여름에 우리 가족은 뉴욕 여행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보스턴으로 가기 위해 뉴욕을 벗어나려던 참에 빨간 신호등 앞의 우리 차를 큰 트럭이 뒤에서 박은 것이었다.

우리가 타고 있던 렌트카 미니밴의 뒤 유리창은 완전히 박살이 났다. 브레이크 등이 떨어져 나가고 차체가 찌그러진 제법 큰 사고였다. 자동차의 견적도 아주 많이 나왔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차에 타고 있던 우리 네 식구와 한국에서 온 조카의 부상 정도는 크지 않았다. 물론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목과 허리가 뻣뻣하고 놀란 가슴에 한동안 말을 할 수 없는 충격이 있기는 했다. 또 맨 뒷자리의 조카는 유리가 몸에 박히기도 해서 고생했다.

이 사고의 여파로 우리는 계획했던 나머지 여행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피가 나거나 어디가 부러지는 등의 큰 외형적인 사고는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던 사고였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이 교통사고에 대해 이런 말로 우리를 위로해줬다.

"사고가 난 것은 안 된 일이지만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모처럼 계획하고 나선 가족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던 것도 많이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니까 일단 사고 후유증이 없도록 병원 치료를 잘 받아라. 그나마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본인의 과실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으니 보험회사 보상금이 제법 될 것이다. 그것도 다섯 식구나 되니 말이다. 그걸로 위안을 삼도록 해라."

그러면서 보상금이 적어도 수천 불은 될 것이고 많게는 만 불 이상 될 거라는 예측도 해주었다.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 자해공갈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상금이 나올 거라는 말에 조금 기대를 하긴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꽝이었다.

단 한 푼의 보상금도 없다는 얘기를 최근에 이 사건을 의뢰한 변호사로부터 들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교통사고에 대한 처리가 주마다 다른데 뉴욕 주 같은 경우에는 영구불구나 심각한 사고 후 후유증이 예상되지 않는다면 보상금은 단 한 푼도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에서는 이런 경우 당연히 보상금이 나온다고 했다.

사고가 어디에서 났느냐에 따라 이렇게 사고 처리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데 놀라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동안 병원에 다니느라 허비했던 시간이며 기타 비용을 생각하니 좀 허퉁했다.

치료를 끝낸 뒤에는 지정된 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해서 아이들 학교도 빠지면서 먼 길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이 모든 일에 대한 보상이 하나도 없다고 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고 후유증이 없는 것에 대한 감사로, 또한 병원에서 만났던 친절한 의사들과의 만남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만 가는 게 아닌 것 같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기분 좋게 벌어지기도 하고 기대했던 일이 무심하게 그냥 우리를 지나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기대#잡지 표지모델#뉴욕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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