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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거리 풍경
비엔나의 거리 풍경 ⓒ 허선행
비엔나에서 밤을 맞았다. 기분도 그렇지 않으니 시청사 앞 카페로 가 맥주도 마시고 영상 오페라도 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여행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기에 모두들 환한 표정으로 찬성을 했다.

기대에 부풀어 택시 4대로 나누어 탄 우리 일행은 시청사에서 내렸다. 택시비로 11유로를 지불했다. 그런데 일은 그렇게 해서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4인 1조로 4대에 각각 택시를 탔으나 내린 곳은 4팀 모두 제각각. 일행을 찾아 헤매느라 안절부절했던 것이다. 타지에서 어려운 일을 겪어봐야 그 사람의 대처능력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함께 걱정하고 보듬어줘도 시원찮을 텐데 “그것 봐라. 이곳까지 와서 기분을 낸다고 하다가 이게 무슨 꼴이냐”며 짜증을 내며 골을 부리는 남편, 또 다른 일행을 찾으러 가겠다는 여자들에게 꼼짝 말고 이곳에 있으라며 호통치는 지인의 남편…. 큰소리가 오고 가고 말았다. 거기다가 갑자기 비까지 쏟아진다. 우산도 없는데.

결국 비를 피해 야외무대를 벗어나 건물로 들어서는 그 수많은 인파에 휩싸이고 말았다. 오늘 저녁은 관람객이 별로 없는 요일이라는 말만 듣고 정해진 장소 없이 그냥 시청사 앞에서 만나자고 했던 것이 큰 화근이었다.

호텔로 다시 돌아가면 되는 거겠지만 잔뜩 기대를 하며 그곳을 찾았으니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남녀노소 엄청난 숫자의 인파 속에서 한국의 작은 아줌마가 휘젓고 다니며 일행을 찾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왜냐하면 비록 화면으로 보여주는 영상공연이었지만 공연은 공연이었으므로 나지막하면서도 애절하게 모임이름을 부르며 다녔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화면에 비치던 오페라 장면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만큼 절박했었다.

한참을 찾으며 다니는데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를 피해 있던 우리 일행이 나를 알아보고 부른 것이다. 그분 보고 나와 함께 택시 타고 온 분들을 모셔올 테니 그곳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택시 내린 자리로 다시 갔다.

아뿔싸! 그런데 증발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두 분이 다시 호텔로 돌아갔단 말인가. 다른 일행을 만나서 오히려 우리를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닌가. 더 막막해졌다. 만난 사람들끼리 노천카페에 자리를 정해 놓고 다른 일행을 찾으러 갔다. 비엔나에서의 술래 없는 숨바꼭질은 한참 계속되었다. 우리는 숨바꼭질 끝에 모두 만났다.

비엔나의 전철
비엔나의 전철 ⓒ 허선행
비엔나 지하철역
비엔나 지하철역 ⓒ 허선행
비엔나의 밤을 만끽하려던 기대감이 서로 찾다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우린 한자리에 모여 맥주잔을 들고 “나이야 가라!”를 외쳤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애정을 표시하는 스킨십 때문에 사방을 둘러보느라 눈길을 주는 것 조차 어렵다. 5일동안의 여행이었지만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여유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숙소에 들어가면 씻고 다음날 일어나면 이동하니 빡빡한 일정에 맞추느라 모두들 조심해서 몸 관리를 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에서야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었다. 부부끼리의 모임이니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이야기는 당연히 부부문제다. 맥주로 한창 취기도 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뜬금없이 옆에 분이 다른 분에게 “이겨”라고 물으니 “응, 이겨”라고 대답한다.

도대체 무얼 이긴단 말인가? 궁금해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부인을 바라보는 그의 남편 말씀이 더 걸작이다.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 들어서 져주니 편하더라는 말씀이셨다. 우리의 화제가 부부간의 세력다툼으로 옮겨졌다가, 지금까지 아이들 훌륭하게 키우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부부간의 지혜와 슬기가 합친 작품이 아니겠느냐는 결론으로 술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아직도 흥이 남았는지 젊은 층의 부부들이 모였는데 모른 척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을 위한 에너지 충전 차원이다. 테이블 위의 디지털카메라 배터리 충전과 함께 침대 위의 내 에너지 충전은 같은 모습으로 잠들었다.

덧붙이는 글 | 7월 24일부터 8월 1일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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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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