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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노사 양측이 지난 1일 민주노총에서 만나 교섭을 벌이고 있다.
이랜드 노사 양측이 지난 1일 민주노총에서 만나 교섭을 벌이고 있다. ⓒ 박지훈

이랜드 노조의 유통매장 점거 농성과 공권력 투입에 따른 강제해산. 이후 지난달 31일부터 이어진 6차례의 성과 없는 교섭.

'이랜드 사태'의 돌파구가 좀처럼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고용안정이라는 쟁점을 둘러싸고 노조 측과 사측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교섭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노사 간 불신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안을 내놔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

지난 6일 열린 교섭에서 이랜드 사측은 상급단체에 교섭권 위임 및 노사정 3자간 협의 진행 등의 교섭방식을 내놨다. 하지만 노조 측은 "비정규직의 생존권이 달려있는 교섭"이라며 "제3자가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노조의 사측에 대한 불신은 언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측이 노조 측과 합의된 사안이 아닌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조의 입지를 좁게 만들고 있기 때문.

지난 1일 열린 교섭에 취재진이 들어가자 이랜드 노조 관계자는 사측을 향해 "그쪽(사측)에서 기자들을 데리고 왔냐"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노조 측 다른 관계자는 "사측에서 노조 측과 협의도 안 된 사실을 사측에서 계속 (언론에) 흘려왔기 때문에 날선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파업 현장서 나타난 '노사 불신', 유한킴벌리가 깨트려

'이랜드 사태'에서 보여 지는 '노사 불신'에 따른 진전 없는 대화는 대부분의 파업현장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국내 모든 노사가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간 대화와 협력으로 '불신'의 벽을 깨트린 이들도 있다.

1997년 12월3일 IMF 구제금융 합의 이후 유한킴벌리는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리해고 바람이 들이 닥쳤다. 당시 유한킴벌리 노조위원장인 최남열 위원장은 "IMF로 인해 24시간 가동해왔던 기계들이 8~9개월 동안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계의 가동중단은 결국 근로자의 해고를 뜻한다. 이에 따라 최 전 위원장은 문국현 사장을 단독으로 찾아가 근로자를 해고 시키지 말 것을 권고했다.

유한킴벌리 최남열 전 노조위원장, 사장 찾아가 근로자 해고 철회 요구

지난해 열린 유한킴벌리 노사 간 간담회.
지난해 열린 유한킴벌리 노사 간 간담회. ⓒ 유한킴벌리 제공

"기계가 가동중단 되면 결국 사람도 해고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위원장 입장에서 한 사람도 해고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 사장에게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계는 세우지만 사람은 해고시키지 말 것을 권유했다"

한국 기업의 풍토 속에서 최 전 위원장의 요구는 어려운 것이었다. 문 사장은 그러나 최 전위원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근로자 해고를 단행치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신 그는 창고비용을 줄이기 위해 원자재를 쌓아 두는 기간을 2~3개월 단축시키고, 수요가 떨어지는 물품에 대해선 생산을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아울러 3개조로 운영되던 기존 근무 제도를 4조2교대로 편성, 오히려 근로자들을 늘렸다. 예를 들어 한 기계에 10명의 운전자가 필요하다면 기존 근무제도에선 30명이 필요했으나 오히려 1개조를 늘려 40명의 근로자를 둔 것. 결과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33%의 인원을 늘린 셈이다. 4조2교대 근무제도란 쉽게 말해 "16일 중에 8일 근무하고, 7일 쉬며, 1일을 교육 받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게 있다. IMF같은 상황 속에서 노조위원장이 사장을 찾아가 부탁했다고 해서 근로자에 대한 해고를 철회할 회사가 국내엔 얼마나 있을까.

오랜 기간 구축된 '노사 간 신뢰'가 근로자 계속 고용 발판

유한킴벌리 또한 이익을 창출키 위한 회사이기 때문에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논리'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그러나 노사 양측이 오랜 동안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는 짧은 시간동안의 대화에서 근로자 해고를 단행치 않은 것이다.

최 전 위원장은 "긴 시간동안 대화와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노조위원장이 사장을 찾아가 근로자들을 해고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고, 사장도 그러겠다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한킴벌리 노조는 1994년에 출범했다. 문국현 사장은 이듬해인 95년에 사장이 됐다. 이 때부터 노사 간 갈등은 끊임없이 지속돼왔다. 97년도엔 사원 간 극심한 봉급 차이로 노조 측에서 본사점거까지 강행하는 파업을 벌였다.

최 전 위원장은 "이런 파업의 과정에서도 노조와 회사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며 "회사 중역들과 노조 간부들 간 만남은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5~6년 간의 긴 대화의 시간이 없었다면 아무리 내가 찾아가서 근로자를 해고하지 말라고 부탁해도 사장이 콧방귀나 뀌었겠나"라고 덧붙였다.

현재 유한킴벌리는 고충처리위원회를 구성해 불만이 제기되면 상시로 처리하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은 "때문에 노사 간 대화가 막히거나 불만이 폭발직전까지 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97년 파업 이후 임원과 노조 간부 80여 명은 1박2일 워크숍을 열고, 원탁회의를 통해 의견을 서로 조율한다.

워크숍 비디오 사보 통해 노조원이 회사 경영 상황 직접 볼 수 있어

워크숍에선 회사 경영에 대한 성과와 계획 등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질의응답이 이뤄진다. 또, 격월로 사장이 회사 경영 상태를 보고하기도 한다. 회사 경영의 투명성을 노조원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최 전 위원장은 "97년 한 해 동안 2번 파업을 해서 본사점거까지 강행했지만 사측의 성실한 대화와 협력으로 지금까지 전면 파업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이랜드 사태'와 관련해 최 전 위원장은 "사주가 근로자들에게 양보를 할 줄 몰라서 이 같은 사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며 "경영자들은 근로자들이 회사를 키운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꾸준히 교육시켜 발전시켜야지, 근로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해고는 문제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신성태 노조위원장 "노사 간 동반자 길을 걷기 위해선 '신뢰'가 가장 중요"

유한킴벌리 신성태 노조위원장
유한킴벌리 신성태 노조위원장 ⓒ 유한킴벌리 제공
유한킴벌리에도 비정규직은 있다. 그러나 생산라인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만을 쓴다. 최 전 위원장은 "생산라인에선 비정규직은 없다. 다만 청소 및 소각 업무 등에 외주를 주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현재 유한킴벌리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성태 위원장도 "유한킴벌리엔 비정규직이 거의 없다"며 "다만 예외적으로 김천공장의 경우 여사원들의 산전산후 휴가로 인해 5명의 파견사원을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파견사원도 정규직과 급여 및 근무시간, 회사 지급 선물, 식당, 출퇴근 버스 등에선 차별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신 위원장은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며 "경영자가 근로자들이 회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첫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사회에서 노사가 동반자로서 길을 걷기 위해선 상호배려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며 "일시적인 기업이 아닌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선 노사가 함께 긍정적이고 선순환적 기업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랜드#유한킴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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