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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함께 하는 도서관 독서캠프학교'가 열리고 있는 순천청소년수련원 유스호스텔
'철학과 함께 하는 도서관 독서캠프학교'가 열리고 있는 순천청소년수련원 유스호스텔 ⓒ 안준철
숲이 보이는 창가에서 글을 쓰는 아이들
숲이 보이는 창가에서 글을 쓰는 아이들 ⓒ 안준철
철학 맛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해마다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은데, 올해는 여러분을 만나는 것이 조금은 고민이 되었어요, 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데 여러분들 앞에서 철학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어린 왕자>가 생각났어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이런 대목이 나와요.

"안녕" 어린 왕자가 인사했다. "안녕" 상인도 인사를 했다. 그는 목마름을 해소시켜주는 알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씩만 먹으면 목이 마르지 않게 된다는 약이었다. "왜 이런 것을 팔죠?" 어린 왕자가 물었다.

"이 약은 시간을 아주 많이 절약하게 해주거든. 전문가들이 계산해본 결과, 일주일에 53분씩이나 절약을 할 수 있다는 구나."
"그러면 그 53분으로 무얼 하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만약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53분이 있다면,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텐데…' 어린 왕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철학으로 글쓰기 독서캠프학교
철학으로 글쓰기 독서캠프학교 ⓒ 안준철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라는 질문이에요. 그래서 철학을 '호기심의 학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어린왕자가 어린왕자 다운 것은 바로 왕성한 호기심 때문이었지요. 시간을 절약하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목마르지 않게 해주는 알약을 먹으면 53분이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상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게 되지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 수 있겠어요?

하지만 어린왕자는 계속해서 상인에게, 아니 자기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라도 생각하지요.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바로 즐거움을 의미해요. 우리 인생에서 즐겁게 사는 것만큼 더 중요한 일도 없을 거예요. 공부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호기심은 어른보다는 어린이들이 더 많아요. 그 만큼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럼 어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알고 있을까요? 사실은 그렇지도 않답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너무 바쁘고 힘들다보니 호기심이 다 없어져버린 것이지요. 어른들은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은 쓸데없는 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해마다 만나는 반가운 꼬마 친구들, 제은(오른편)이는 일년 사이에 키가 부쩍 커버렸다
해마다 만나는 반가운 꼬마 친구들, 제은(오른편)이는 일년 사이에 키가 부쩍 커버렸다 ⓒ 안준철
그런데 이 쓸데없는 일에 호기심이 많은 어른들이 바로 철학자들이랍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지요. 뉴턴은 과학자가 아니냐고요? 과학자 맞아요. 하지만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었던 순간만큼은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어요. 뉴턴의 만유인력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혹시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었나요?

"지구가 둥글다면 사람들은 어째서 공중으로 떨어지지 않지?"
이 질문은 '멍청'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위대한 과학자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서 품었던 의문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그때 뉴턴이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지요.

"사과가 익으면 왜 땅으로 떨어지지?"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어요.
"사과는 왜 공중으로 떨어지지 않지?"
뉴턴의 의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그럼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사과가 떨어져도 공중에 떨어지지 않고 땅에 떨어질까? 좀 더 높은 곳에서, 좀 더 아주 높은 곳에서."

모둠 방 풍경
모둠 방 풍경 ⓒ 안준철
아이들에 친근하게 다가가 도움을 주고 있는 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자원봉사자들
아이들에 친근하게 다가가 도움을 주고 있는 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자원봉사자들 ⓒ 안준철
좀 더 아주 높은 곳, 그러니까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난 어디에선가 사과가 떨어진다면 상황은 사뭇 달라지겠지요. 이런 식으로 여러분들도 끝까지 캐고 따져 일의 진상을 밝히고자 하거나,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계속 놀라고 신기해하면 훌륭한 철학자가 될 수 있지요.

이때 중요한 것은 지식(혹은 지혜)을 사랑하는 것이에요.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그냥 좋아하는 것을 말하지요. 철학을 영어로는 '필라소피(philosophy)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에서 왔어요.

'철학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똑똑히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철학이 진리(혹은 진실)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학문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지요. 문제는 어떻게 진실을 밝히느냐 하는 것인데, 그 한 가지 좋은 방법으로 '대화'라는 것이 있어요. 대화를 하되 논리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지요.

여기서 '논리'란 말이나 생각의 앞뒤가 맞는 것을 뜻해요. 사람들은 대화를 하다가 상대방에게 감정을 품거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자세로는 진실에 도달하기가 어려워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자주 사용한 대화법을 흉내 낸 대화를 한 토막 소개할게요.

선생님: 학생들, 여러분들은 동물을 보호하고 사랑해야합니다.
학생: 선생님, 쥐도 동물입니까?
선생님: 물론이죠.
학생: 그렇다면 왜 쥐를 잡아 없애라고 하죠?
선생님: 내 말은 보호하고 사랑할만한 좋은 동물을 말하는 거지.
학생: 어떤 동물 말입니까?
선생님: 인류에게 유익한 동물은 좋은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학생: 돼지와 양은 인류에게 유익한 동물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이 동물들을 잡아먹는 거죠? 그리고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는 동물인데 어째서 보호하고 있죠?
선생님: ……

여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 상상해 봐요. 선생님은 무엇이 인류에게 이롭고 해로운지 해석해 주어야만 했고, 이를 놓고 학생들이 계속 캐물었다면 토론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거예요. 이러한 토론은 꼭 결론은 못 얻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평소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문제를 분명히 함으로써 어떤 일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나 견해가 더 이상 이것도 저것도 아닌 불투명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지요.

숲 속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아이들
숲 속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아이들 ⓒ 안준철
소크라테스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은 곧 '너 자신의 무지함에 대해서 알라'는 말이었지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잘못된 것을 시인할 수 있어야 참다운 지식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북쪽으로 가야 목표했던 지점이 나오는데 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사람은 열심히 걸으면 걸을수록 목표에서 멀어져 가는 셈이지요. 이때 중요한 것은 자기가 걸어온 길을 한 번 뒤돌아보는 일이에요. 그것을 좀 어려운 말로 '자기성찰'이라고도 하는데, 여러분이 일기를 쓰는 일도 하루 일을 돌아보며 자기를 성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혹시라도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방향을 바로 잡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잘못된 길을 계속 열심히 가는 거예요. 어리석은 일이지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혹시 공부를 하다가 문득 "공부를 왜 하지?"하고 자신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나요? 아니면 "공부야 뭐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하는 거지"라고 어른들처럼 미리 결론을 내려버린 것은 아닌가요?

자,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주어진 제목이나 자기가 정한 제목으로 '철학으로 글쓰기'를 한 번 해보세요. 그렇다고 '철학'이라는 말에 너무 기죽지는 마세요. 오히려 친한 동무에게 이야기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글로 풀어보세요. 다만, 글 속에 어떤 사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작은 철학이 담겨 있으면 좋겠어요.

독서캠프학교 밖 풍경
독서캠프학교 밖 풍경 ⓒ 안준철
철학으로 글쓰기

나는 왜 살지?
-중2년생 글

"너 왜 사냐?"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거나 들어봤을 질문이다. 물론 장난삼아 내던진 말이겠지만, 깊이 생각해볼수록 우울해지는 질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나. 집이 가난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사는 것도 아니다. 공부도 물론 잘했으면 좋겠지만 역시나 어정쩡한 성적이다. 이 넓고 넓은 세상,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 하나쯤은 없어져도 세상은 잘만 돌아갈 것 같은데. 기고 뛰고 나는 사람들 천지인 이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 봐도 나 혼자 뒤쳐진 느낌… 나는 도대체 이 세상에 왜 태어났으며, 왜 살아가는가?

(…)그래도 분명 나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먼저 부모님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이다. 정자 3억 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결국은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지 않았는가. 또 생각해보면 나도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힘이 들 때 옆에 있어주면서 위안이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그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누군가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하였다. 나도 한 생명체로서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철학으로 글쓰기
철학으로 글쓰기 ⓒ 안준철
공부를 왜 하지?
-초등6년생 글

공부! 보통 사람들이 공부를 생각하면 대부분 의무적으로 해야할 것. 귀찮은 것, 머리가 아파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이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들은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험이면 죽어라 공부 시키고 방학이면 시간이 많이 남으니까 학원을 하나라도 더 보내려고 한다. 시험 볼 때나 공부할 때 "너는 최선만 다하면 된다. 점수는 상관없다. 그러니까 최선만 다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시험을 보면 "너는 왜 이렇게 점수가 엉망이니? 옆집 ○○이는 올백이라던데… 너는 기말고사까지 놀 생각도 하지 마"라고 하신다. 우리는 그 말에 상처를 받고 또 받는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공부라고 하신다. 당연한 말씀이다. 우리의 학교 시험 성적에 따라 나의 꿈이 크게, 작게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보다 다른 걸로 큰 꿈을 가질 수도 있다. 부모님은 우리의 특기와 취미를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우리는 공부와 특기를 모두 열심히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늘 공부를 하려고 학교에 오가면서 "공부를 왜 하지?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 당연히 좋은 대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어야하니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꼭 대학을 가기 위해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부는 자신의 기본적인 지식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공부는 세상사는 지혜를 얻기 위해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책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공부를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내용 중 일부는 아이필드 출판사에서 발간한 <참 소중한 생명>이라는 책에서 따온 것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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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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