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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화려한 휴가'를 보았다. 1980년 당시에 나는 어린 나이에 불과했지만 학창시절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보고 싶은 영화'였다. 작품에 대한 기대와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숙연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내린 간단한 평가는 무언가 '낯설다'는 것이었다. 이런 평가는 '내 기대와는 좀 달랐다'는 의미의 주관적 느낌에 가깝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냥 주관적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랬다는 것이다.

사실 낯선 느낌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유명한 배우들'이나 '블록버스터'라는 홍보문구가 광주항쟁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꽉 막힌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잘 인식하지 못했던 '시대의 변화'를 어렴풋이 느낄 만큼의 낯섦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영화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나 싶다.

여하간 '화려한 휴가'를 보고 느낀 낯섦은 얼핏 영화에 가미된 '픽션(가공의 인물이나 구성)'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한 영화에 픽션이 가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런 생각은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며칠 동안 이 지극히 주관적인 '낯선 느낌'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 낯섦은 우선 '광주항쟁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래도 '주인공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 같은 것이 가미되지 않은 보다 역사적이고 이념적인 분위기의 5ㆍ18 영화를 선호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역사적이고 이념적 분위기란 말할 것도 없이 '민주화 투쟁'일 것이다.

확실히 과거에는 5월 광주를 '화려한 휴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거의 방식이 '사랑'이나 '해학'을 의도적으로 배척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정치적인 비장함으로 인해 그 무게감이 더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해학은 임진택의 창작판소리 <오월광주>에도 등장하지만, 그것은 현실감을 더해주는 촉매제일 뿐 정치적인 무게감을 훼손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해 '화려한 휴가'는, 영화를 보는 세대나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서는 광주항쟁에 다소 어울릴 것 같지 않다고 여길 만한 구성으로 '정치적 무게감'이 떨어졌다는 느낌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화려한 휴가'를 깎아 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정치적 의도'일 수만은 없고, 영화제작에서 '흥행'을 고려하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며, 더욱이 '정치적 무게'가 느껴지는 것이라고 항상 훌륭하거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영화가 갖고 있는 장점을 통해 5ㆍ18 광주항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 정도로 불러일으킬 만큼,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사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를 통해 느껴지는 낯선 느낌은 여전히 남는다. 이제 그 느낌은 좀 복잡한 것이 돼버렸다.

가령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5ㆍ18 광주항쟁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어느 '고등학생'의 고백에 충격을 받는다. 학교에서 광주항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던 시대도 아닌데 고등학생조차 잘 알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이 낯설다.

또한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을 아직도 '폭도'라 하고,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파쇼들을 영웅으로 추종하며, 심지어 '각하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전사모)'마저 존재하는 웃지 못 할 이 오늘의 현실이 너무 낯설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다가도, 이런 현실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오히려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진실을 전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광주항쟁이 아직도 이런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오늘의 이 같은 현실은 제대로 된 과거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5ㆍ18 정신이 계승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권력찬탈을 획책하여 군사반란을 일으킨 세력에 대한 단죄가 '사면'이라는 이름의 어정쩡한 화해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타협은 군사반란을 '그럴 수도 있는 일', '때론 필요한 일'인 것처럼 인식할 수 있는 안락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나약하고 병적인 정치인식을 가진 철없는 사람들에게 광주항쟁을 여전히 '폭동'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아울러 이 같은 문제는 단순히 '광주항쟁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군사반란을 '구국의 혁명'으로 여기는 자들은 지금의 시대를 '좌익이 득세해서 자신들이 억압받는 잘못된 세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철부지 같은 이들이 '제3의 군사반란'을 또 다른 구국의 혁명으로 추앙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자유의 적에게도 자유를 주는 것'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이지만, 이들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꽃피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5ㆍ18 관련 세력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동안의 모습을 보면 '화려한 휴가'를 보았을 때보다도 더 큰 아쉬움이 남는다.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 아픔은 계속 될 것이다. 더불어 그들이 해 온 싸움은 말할 필요도 없이 숭고하고 정당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고통에는 마땅히 배상이 이루어져야 하고, 또한 그들의 투쟁에는 명예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5ㆍ18'이라는 이름을 내건 세력의 활동은 그 이상의 것이어야만 한다. 광주항쟁의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을 넘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민주화를 위해 싸워야만 한다. 정의로운 항쟁을 '폭동'이 아닌 정의로운 항쟁으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도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거나 끝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광주항쟁에 관한 오늘날의 안타까운 현실에는 5ㆍ18 관련 세력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인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광주를 위한 싸움'에서 벗어나 '광주라는 이름에 걸 맞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광주항쟁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모든 사람의 기대도 그와 같은 것이리라 여긴다. 더불어 그렇게 해야만 광주항쟁의 정신이 계승될 수 있다. '정신계승'은 요구하는 것이기 이전에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지 않은 정신을 어떻게 계승한단 말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518, #광주, #화려한 휴가, #민주화,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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