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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아! 개똥아!”

서책을 옆에 끼고 새벽부터 성균관으로 가는 유생 조유만은 아까부터 계속 자신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며 뒤에서 따라오는 친구 박산흥을 무시하고 있었다.

“야 개똥아! 내가 장난 좀 쳤기로서니 계집마냥 말도 안 하기냐?”

계집 같다는 말은 조유만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조유만은 더욱 걸음을 빨리하여 쫓아오는 박산흥을 떼어놓으려 했다.

박산흥이 조유만에게 친 장난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이토록 조유만이 화가 난 이유는 그 정도가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전날 저녁, 박산흥은 가기 싫다는 조유만을 붙잡고 기생집으로 가 억지로 술을 권했다.

“거 난 술을 못한대도.”

조유만은 거듭 술잔을 거절했으나 박산흥과 기생들의 억지스러운 권유에 못 이겨 결국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대취하여 그 자리에 눕고 말았다.

“큭큭큭 이 친구 이거 술 한 잔만 들어가도 이 모양이라니까 .”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조유만을 보고 박산흥은 슬쩍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보게 가서 분하고 연지를 가져오게나.”

“뭐에 쓰시려 그러옵니까?”

기생이 간드러진 말투로 묻자 박산흥은 조유만을 가리키며 마구 웃었다.

“이 친구 얼굴선이 갸름하고 허여멀쑥한 것이 계집 같지 않은가? 어디 화장을 해 보면 어떨까 궁금하이.”

“그거 재미있겠습니다.”

기생들도 즉시 이에 동조하고 나서서 곧 조유만의 얼굴에는 분꽃과 쌀가루 등을 개어서 만든 분이 두텁게 발라지고 입술에는 홍화가루로 만든 연지가 새빨갛게 칠해졌다.

“으하하 영락없는 계집일세. 이거 자네들보다 더 고우이.”

“에그! 무슨 말을! 그런데 진짜 어쩌면 사내 얼굴이 저리도 고울까.”

기생은 조심스레 조유만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고서는 깔깔거렸다. 그렇게 화장을 한 채로 누운 조유만을 두고 술잔을 나누던 박산흥은 잠시 후 조유만을 깨우기 시작했다.

“이 사람! 여기서 잘 참인가? 성균관 유생이 이러다가는 쫓겨나지.”

겨우 일어난 조유만은 허위허위 나가려다가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

“이거 지금은 동재(성균관의 숙소)로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겠구먼. 으하하하”

그렇게 조유만은 잠이 들어 깨어나지 못하다가 새벽녘에 겨우 일어나 급히 세안을 하려다가 얼굴에 이상한 것이 묻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유만은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서는 크게 화를 내며 기생을 안고 잠들어 있는 박산흥을 두들겨 깨웠다.

“이보게! 내 얼굴에 무슨 짓을 한건가?”

박산흥은 슬쩍 눈을 뜨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딴청을 부렸다. 하지만 옆에 안겨 있던 기생이 웃음을 터트렸고 그로인해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조유만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 다시 자네를 안 볼걸세!”

조유만은 얼굴을 깨끗이 씻은 후 서둘러 성균관으로 돌아갔다. 숙소에 있는지의 여부를 성균관에서 관리하지는 않았지만 아침, 저녁식사 때를 맞춰서 식당에 들어가 서명을 하지 않으면 원점(圓點)1점을 그대로 날리는 것이 되었기에 조유만은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곤궁한 집안사정에도 불구하고 먼 부산에서 한양까지 올라와 공부를 하는 조유만에게는 그런 것 하나조차도 소홀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마음이 급한 마당에 기분 나쁜 장난까지 친 박산흥이 자꾸 쫓아오기까지 하니 조유만의 걸음은 더욱 잰걸음이 되었다.

“아 그 친구 참….”

결국 성균관 문턱에까지 이르러서야 쫓아오기를 멈춘 박산흥은 안으로 사라지는 조유만의 뒷모습을 보며 갑자기 그의 화장한 모습이 다시 떠올라 혼자 미친 사람마냥 낄낄 웃어 제쳤다. 새벽일을 나가는 이들이 그런 박산흥을 보며 손가락질을 해대었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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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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