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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의 지옥훈련을 받던 이들과 웃기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을 당하는 예능인들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그런 때문인지 3년 4개월 동안 북파 공작원 훈련을 했던 실미도에 <무한 도전>팀이 도전했다. 이름 하여 ‘머드 특집-실미도’편. 파괴와 폭력, 공포와 죽음의 공간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에는 웃음만 있었다. 그들의 도전 대상은 ‘웃기기’였기 때문이다.

과거 불행한 역사의 진중함은 언제나 이후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오락 거리밖에 안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억울하게 죽어간 무고한 사람들의 원혼, 그들의 슬픔을 희극으로나마 풀어주었다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의도는 없어 보였다. 다른 이들의 불행이나 상처보다는 내가 살아야한다는 생존적 본능(?)의 경연장이었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대부분 생존의 위협을 느낄 만큼 절박하지도 않았다. 프로그램 자체도 인기가 있으니 마찬가지다. 겹치기 출연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실미도를 희극적으로만 다룬 것은 그래서 동의하기 어렵다. 그들은 처음부터 무사히 돌아가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실미도 대원들은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만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실미도를 인천에 있는 해수욕장 정도로 기억하는 것이 시대적 감수성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과 살육의 공간은 <무한 도전>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무분별한 희극화는 병영체험에 관한 무감각한 사회적 감수성이 탓일 수도 있다. 여름철이면 병영 체험 프로그램이 봇물이다. 어디 여름뿐일까. 방학 때만 되면 학생들을 포함한 병역 미필자를 대상으로 한 병영체험프로그램이 성업이다.

학생은 말할 것도 없이 주부 그리고 여기에 해외의 동포청년들까지 끌어들인다. 목적은 극기 훈련이다. 어떠한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이다. 해외의 동포 청년들에게는 조국의 아픈 현실을 체험하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조국의 아픈 현실과 병영극기 프로그램과는 관련성이 없다. 아니 우리에게 ‘상상의 공동체’로써 조국이란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해병대나 특수부대의 훈련을 우월하게 격상시키고, 다른 부대들은 엉터리로 만드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체험할 것이 없어 병영체험을 하냐는 비판이 빤하다고 해도 지나칠 수는 없다. 병영은 그야말로 사람을 죽이는, 아니 생명 파괴의 기술을 습득하는 공간이다.

이를 위해 인내하는 법을 가르친다. 아무리 그것이 방어용이라고 해도 말이다. 분명 인간의 사유와 자율성을 파괴한다. 인간은 오로지 물자이자, 동원 자원일 뿐이다. 물자와 자원의 공간에서는 오로지 수동적인 무사고의 존재만 필요로 하고, 그런 존재를 규격에 맞게 찍어내는 공간이다.

병영 경험이 어떠한 어려움도 해결할 있도록 만든다면 병역을 마친 이들은 모두 성공한 사람이 되었을 법하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폭력적인가 하면 기회주의적이고 권력 지향적 처세술을 습득하게 만든다. 학습 효과는 놀랍다. 권력 혹은 힘에 철저하게 복종하고 명령에 수행하는 것만이 단기간 최대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며 각 존재가 살아남는 법임을 학습하니 말이다. 물리적인 고통을 통해 인간의 행동 동기를 촉발하는 것 자체가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특히, 여성이나 학생이라는 약자들에게 군사 문화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생기(生氣)를 죽인다. 각종 매체에서는 여학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겨 사진으로 담아 보도한다. 이렇게 되면 군사 문화적 차원에서 남성 중심적 가학성의 발로라는 비판이 가해진다. 마치 여성들은 병영 프로그램을 통해 군대에 대한 속죄의식을 치르는 듯하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들이 군사캠프에 참여하는 것도 죄 아닌 죄를 씻기 위한 소비행위다.

전쟁을 통해 상품을 만들어 수입을 챙기는 것은 군수 산업가들만이 아닌 것인가. 이러한 차원에서 전쟁을 하나의 통과의례로 여기는 것이 병영 체험을 삶의 활력소로 여기는 행태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고루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에서 병영 체험이나 군사훈련을 무분별하게 방영하는 것은 고민해야 할 문제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 보낸 글을 수정했습니다.


#무한도전#병영체험#실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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