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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감독의 신작 <디워>에 대한 이송희일 감독의 글이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그런가?("<디워>, 300억짜리 루즈 발랐다고 예뻐지나?" 기사 참조)

"셧업 플리스" 등 표현이 거친 것은 분명하다. 알아듣기 쉽게 풀어낸 것도 아니다. "영화를 영화적 시간과 공간 내에서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다"라는 식의 표현은 불친절이거나 잘난 체로 보일 수 있다. 자부심이 배어있는 문체에 괜히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잘난 체 하는 것 같아 마음에 안 드네 하는 식의 곁가지 식 트집이 아닌, 그 글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두고 논해보자.

그의 글을 완곡하게, 또 조금은 쉽게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영화, 정치가 아닌 영화로서 보자는 것

1. <디워>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은 "미국서 1500여개의 스크린에서 개봉", "수백억원의 제작비", "가공할 CG", "우리나라 영화" 등의 사실을 옹호의 이유로 내세움. 그 이유가 하나같이 규모라든지 애국심이라는 것과 연결되고 있음. 과연 이것만으로 영화를 말할 수 있는가? 그것만으로 영화를 평하고, 그것만으로 하나의 작품을 무조건 옹호하고 찬사를 보내는 것이 가당한가? (그렇다고 한다면 더 이상 영화는 없다는 것, 규모와 애국심에 열광하는 것은 산업화 시대적 마인드라는 것) <디워>에 대해 무조건 옹호하고, 평론가들이 <디워>에 대해 뭐라 섭섭한 소리라도 할라치면 마구 달려들어 악플을 들이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음.

2. <디워> 옹호, 찬사의 또 다른 근거로 심형래 감독의 열정이 자주 거론됨. 또한 심형래 감독도 TV 프로그램에서 그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데, 열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가난과 싸우며 묵묵히 열정을 바치는 이들이 대단히 많음.(열정은 심형래 감독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3. 충무로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심형래 감독의 발언은 사실이라기보다, 시민들로부터의 우애(바보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내심 지지를 보내게 되는)를 끌어내기 위한 마케팅으로 봐야 함.

4. 영화를 이루는 것은 CG, 눈에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 영화는 그 제작비나 그래픽, 비쥬얼뿐 아니라 주제, 내용, 표현의 방법, 이야기 전개, 완결성 등 다양한 요소로 평가되어야 함.

5. <디워>를 무조건 옹호하는 이들은 영화에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음. 영화 자체를 놓고 봐야함.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애국주의, 민족주의가 위태롭게 느껴짐.

잘 알지 못해도 할 말은 많은 모순

이번 논란은 수년 전에 있은 황우석 사건이나 개똥녀 사건과 닮은꼴이다. 여론과 언론이 보이는 모습과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여론은 자극을 원한다. 자극은, "위대한 내 조국!"이라는 식의 자부심을 안겨주는 쾌거여도 좋고, 어느 한 사람을 집단으로 따돌리고 공격하며 느끼는 쾌감이어도 좋다. 일단 작은 알맹이만한 여론이 생기면 구르기 시작하면, 여기에 언론이 슬쩍 올라타 알맹이를 눈덩이로 부풀린다.

눈덩이는 정신없이 빠르게 굴러가는 고로 사람들은 사건의 진상이나 전후좌우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렵다. 눈덩이는 한 방향으로만 굴러 내려가는 까닭에 이를 따라가다 보면 여러 입장에 대해 생각지 못하게 되며, 다른 방향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없게 된다.

개개인에게 냉정한 분별이나, 드러난 것 이면의 진실에 대한 물음, 그리고 경청함이 없는 것이 눈덩이를 키운다. 기사 제목만 보고서, 혹은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로부터 받은 순간의 이미지에서 사건과 그에 연관된 기업, 단체, 혹은 인물에 대한 선악미추, 옳고 그름, 호불호의 판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와 같이 판단이 내려지고 나면, 실제로는 사건에 대해 아는바가 전혀 없어도, 기사를 제대로 읽지 조차 않았어도, "그 사건은 내가 볼 때는 말이지"하고 일장연설을 펼 수 있게 된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 <디워>를 본 적도 없고, 그런즉 그 내용이나 완결성 같은 것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으면서도 이 영화에 대해 밤 새워 논쟁할 수 있는 이들이 인터넷 댓글란에 넘쳐난다.

여론은 어디로 가는가

여론, 다수의 의견은 무조건 옳은 것으로 여기는 환상도 문제다. 여론은 감정적이며 맹목적이다. 자극에 이끌리며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여론과 다수의 호불호가 선악미추, 옳고 그름의 잣대가 될 수는 없는 이유다.

여론의 약점이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여론은 여기에 더하여 애국심의 과부하, 전체주의적 민족주의라는 문제도 안고 있다. 축구니 역사니 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한국 사회 전체가 불이라도 삼킨 듯이 뜨겁고 격렬해진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뭉치고, 피아를 구분하며, 우리의 상대는 곧 적으로 인식된다. 또, 대부분이 같은 말, 같은 목소리를 내며 한 방향으로 향한다. 여기서 떨어져 나와 홀로 다른 소리를 하다가는 밉보이기 십상이다. 독일과 일본의 예가 보여주듯 이러한 민족주의는 강점이 될 수도 있으나, 동시에 거대한 위험일 수 있다. 이송희일 감독이 지적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언론은 좀 더 성숙한 태도로 이러한 여론에 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언론이 그런 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늘날 동북아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민족주의가 강한 지역이다. 이들 민족주의는 언제나 전체주의로 옮아갈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 이러한 동아시아의 정황은 20세기 전반(前半)의 유럽과 닮아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이런 부분에 대해 비판을 한다거나 자제를 요청하기보다, 오히려 여론을 부추기고 여론에 편승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가지 말고, 휩쓸리지 말고, 직접 판단하고 평가하자

이송희일 감독의 글로 돌아가 보자. 다시 말해 이송희일 감독이 블로그에 올린 글의 요지는, 평론가들이 <디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쉽게 말할라치면 몰려들어 욕을 하는 네티즌들에게 "뜨거운 가슴만으로, 정치성만으로 이를 볼 것이 아니라, 냉정한 머리로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놓고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영화 <디워>를 냉정히, 있는 그대로를 두고 본 소감은 이러저러 하다는 것이다.

개똥녀 사건이건, 영화 <디워>이건, 이송희일 감독의 글이건, 무엇이건 간에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 보자. 기사가 보여주는 제목에, 다른 이들의 말에, 댓글에, 그들의 평가와 판단에 당신의 평가와 판단을 내어 맡기지 말자. 제대로 경청해 보고서, 제대로 알고 나서 그 다음 직접 판단하고 평가를 내리자. 그런 다음에 말하자.

태그:#디워, #이송희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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