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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순수하게 빛나는 청춘의 한 때를 보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고통과 시련은 그들의 젊음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방황과 좌절조차 그들만의 특권처럼 윤기가 흐른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정아·장현주 극본, 이윤정 연출, MBC)이 보여주는 것은 정확히 싱그러운 젊음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는 열정의 자극과 충돌이 있고, 에너지의 약동과 전이가 있으며, 수평적이지만 은밀한 유대가 있다.

그저 그런 변종 신데렐라 이야기로 시작된 이 드라마를 그 젊음만으로 빛날 수 있는 청춘송가로 만든 것은 무엇보다 세심하게 조탁한 탁월한 연출력이다.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 의심스러운 이들의 젊음은 모든 것이 용서될 만큼 포용적이고 무한하다.

소년이 되고 싶은 '소녀'들의 나르시시즘적 욕망

그 중심에 고은찬(윤은혜 분)이라는 '남장여자'가 있다. 남장여자라는 핵심 콘셉트는 단지 이 화사한 드라마를 채색해주는 색다른 취향, 색다른 캐릭터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시종일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훑게 만드는 우리의 시각적 탐색의 대상이 되며, 그녀의 육체는 드라마 자체가 그것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모든 논란과 갈등의 생산지이자 종착지이다.

물론 트렌디 드라마에서 말괄량이 소녀가 성숙한 여인이 되어가듯 남장여자는 사랑을 통해 다시 여자가 될 것이다. 은찬은 한결(공유 분)과의 마법 같은 사랑을 통해 본래의 여자로 되돌아갈 것이며, 자신도 몰랐던 여성성에 눈을 뜰 것이다.

그러나 정말 흥미로운 것은 은찬이라는 캐릭터가 환기시키는 여성들의 무의식적 욕망이다. 그것은 학창시절 여학교에서 발생하는 보이시한 여학생에 대한 선망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남자를 대신하여 남자 같은 그녀를 남자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지만, 그 밑에는 남자가 되고 싶은 소녀들의 더욱 근원적인 욕망이 있다. 그것은 미소년에 '대한' 욕망이라기보다 소년이 '되고 싶은' 나르시시즘적 욕망이다.

성장기 소녀들이 흔히 겪는 이러한 내홍은 오랜 세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낳은 결과일 텐데, 그 이후로도 많은 여성들은 여성적인 것이나 여성성에 대한 거부와 부인을 내면화하게 된다.

그녀들은 자주 성차를 부인하려는 안간힘으로, 성차 이전의 세계, 경계 이전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남자, 여자 이전에 인간이라는 뭉뚱그려진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며, 남자들과 성적 관계 이전에 인간적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이 당도한 세계는 중성이나 무성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남성들의 세계이다. 여성성을 숨기고 여성의 '약점과 한계'를 감춤으로써, 그녀들은 남자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은찬이 가슴을 동여매고, 목소리를 굵게 만듦으로써 남자들만의 세계 '프린스' 왕국으로의 입성을 허락받은 것처럼.

그처럼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남자들의 세계이다. 그곳에는 각자 개성 있고 사연 있는 매력적인 남자들, 한결과 홍사장(김창완 분), 하림(김동욱 분)과 선기(김재욱 분), 민혁(이언 분)이 살고 있다. 3회에서 은찬이 그 세계에 입성하여 그들 사이에 껴서 그들과 함께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풀샷 장면은 그녀의 욕망이 어디에 있는지 뚜렷이 드러내준다.

가슴 아픈 장벽이 된 은찬의 속임수와 거짓

▲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장여자 은찬역을 맡은 윤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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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서 보여지는 남자들의 우정과 동지애는 비장하고 조직적이며 비열한 성인남자들의 세계 속 그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물장난처럼, 타악기 난장처럼 천진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 세계는 여성의 판타지가 만들어낸 동화 속 세계다.

한결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왕국처럼, 한성(이선균 분)의 타인을 끌어들이는 음악 세계처럼. 그것은 수평적이고 확산적이며 카오스 같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소녀들이 꿈꾸는) 소년들의 세계이다.

은찬은 그렇게 남자가 되었다. 그녀가 가난한 소녀가장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였건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한결에게 끌려서였건, 그녀는 정말 '남자가 되어' 그 세계에 합류했다.

이제 자신을 남자로 속인 그녀의 '속임수와 거짓'은 대부분의 트렌디 로맨스에서처럼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진실'한 감정을 얻기 위해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곤경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한 은찬과 한결이 서로에게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가슴 아픈 장벽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 사랑은 은찬에게는 게이라는 오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얻고 싶은 사랑이며, 한결에게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흔들어놓을 정도의 사랑이 된다.

당연히 이런 '어마어마한' 곤경을 만든 은찬의 '가벼운' 속임수와 거짓은 단지 그녀가 여자라는 진실만 밝혀진다면 모든 것이 해프닝으로 끝나고 해피엔딩이 될 로맨스적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혹시 은찬의 속임수 안에 진짜 속임수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자신을 남자로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남자로 속이는 척하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남자를 연기하지만, 남자를 연기하는 척함으로써 자신이 남자임을 숨기는 것은 아닐까?

은찬은 남자라는 외관 안에 여자를 감추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의 그처럼 보인다. 그녀는 남자로 행세하기 이전부터 남자로 오인되었고, 다른 남장여자 영화들처럼 특별한 변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평소 그녀가 하고 다니는 모습 그대로 하던 행태 그대로 남자행세를 한다.

그렇다면 은찬은 남자인 척하는 여자인 것이 아니라, 남자 흉내를 내는 여자인 척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속임수를 통해 표면적 거짓(남자)과 숨겨진 진실(여자)이라는 이분법은 해체된다. 성정체성의 위기는 애초에 한결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은찬의 것이었던 것이다.

은찬은 말하자면 이중으로 분열된 주체이다. 한결, 한성, 유주(채정안 분)와 벌이는 사각관계에서, 한성과 유주에게는 여자이며 한결에게는 남자이다. 집에서는 여자이며 밖에서는 남자이다.

그녀(그)는 상대를 교란시키는 이중적 포지션 위에 있다. 그녀(그)는 여성인가 남성인가? 은찬은 여자로서 한결을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남자로서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은찬은 이성애자인가 동성애자인가? 은찬과 한결은 이성커플인가 동성커플인가?

이중성과 모호성이 은찬의 매력

물론 이런 '위험한' 질문을 효과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실제 내용과 어긋나는 드라마의 시각적 전략에 의해서다. 게이커플에 대한 거부감은 실제 내용을 무화시키는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해소된다.

윤은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시한 예쁜 여자이지 결코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한계가 아닌 드라마 로맨스의 진짜 매력을 구성한다. 관념적 수용과 시각적 거부라는 간극(관념에 비해 시각은 얼마나 보수적인가?)을 메움으로써 드라마의 환상적인 게이로맨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말로 남녀 어느 한쪽으로도 온전히 귀속될 수 없는 이중성과 모호성이야말로 은찬이라는 캐릭터의 진짜 매력이다. 아찔하게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그 모호성은 성차를 넘어서는 어떤 신비를 감추고 있다는 환상을 한결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부여한다. 그 모호성으로 인하여 그들 사이의 육체적, 성적 긴장은 훨씬 감각적이며 자극적이다. 금지된 것이 매혹적이듯, 로맨스 판타지는 과감한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태그:#커피프린스1호점, #윤은혜,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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