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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철 음식으로 안성맞춤인 노각무침과 오이지냉국
ⓒ 전갑남

"여보, 오이 늙은 게 보여요?"
"그래? 오이 딴 지가 며칠 되었나? 사나흘?"
"그 땐 눈에 안 띄었는데…."
"뻔질나게 따는 데도 어느새 늙었나보다."

정말이지 오이가 숱하게 달린다. 손가락만한 것이 며칠 지나면 오동통 살이 찐다. 특별히 주는 것도 없는데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어 키워내고 있다.

오이가 참 많이도 달리다

▲ 아직 싱싱함이 살아있는 우리 오이밭이다.
ⓒ 전갑남
우리 오이밭에 누런빛을 띤 늙은 오이 몇 개가 보인다. '장마철에 오이 자라듯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손이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늙은 모습일까? 몰라보게 변하는 녀석들을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5월 초순, 우리는 스물대여섯 그루의 오이를 심었다. 주렁주렁 달린다는 말을 실감한다. 숱하게 따고 사나흘 뒤 들여다보면 또 달려있다. 요즘 들어서는 달리는 게 더 많아졌다. 참 많이도 따먹는 것 같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늘 이렇게 풍성하다. 고맙고 또 고맙다.

오이는 식구 수만큼 심으라는 말이 있다. 식구가 넷이면 네 그루, 다섯이면 다섯 그루. 그만큼만 심어도 여름 내내 따먹는다.

대부분 작물이 그렇듯 오이도 처음에는 시나브로 큰다. 그러다 꽃이 피기 시작하고부터는 자라는데 속도가 붙는다. 그리고 꽃이 수정된 뒤 열흘 정도면 따먹을 수 있다.

식구 적은 우리 집에 오이가 넘쳐난다. 한창 열릴 때는 아내의 발걸음이 바쁘다. 이웃들에게 나눠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모양새가 좋든 나쁘든 무공해라며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몇 개씩 들려 보내면 큰 인심이라도 쓰는 것 같다.

오이는 날로 먹어도 좋다. 입 안 가득 나오는 수분과 담백하고 향긋한 향이 그만이다. 산에 갈 때 서너 개씩 배낭에 담아가면 간식으로도 좋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오이는 수분 섭취와 비타민을 공급해주는 소중한 먹을거리이다.

2주 전에는 한꺼번에 30여개를 따 오이지를 담갔다. 오이지는 냉국과 무쳐먹으면 짭조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여름철 우리 집 식탁엔 끼니마다 오이가 단골메뉴이다. 채 썰어 미역냉국도 해먹고, 부추를 넣은 오이소박이와 샐러드까지 각종 요리로 즐긴다. 또, 냉면이나 콩국수를 해먹을 때 고명으로 얹어먹으면 향긋한 내음과 싱그러운 맛을 느낀다.

참 많이도 달린 오이를 실컷 먹을 수 있어 올 여름은 더없이 즐겁다.

노각을 그냥두면 오이덩굴도 늙는 법

▲ 며칠 걸러 오이밭을 뒤지면 꽤 많은 오이를 수확한다.
ⓒ 전갑남

오이를 여남은 개를 땄다. 잎을 들추며 요리저리 잘 살펴야 빠트리지 않고 딸 수 있다.

아내가 잘 빠진 오이 하나를 싹싹 문지른다. 반은 자기 입으로 가고, 나머지는 나에게 건네준다. 어석어석 오이를 씹어본다.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물컹물컹 씹히는 오이 맛이 좋다.

늙은 오이 서너 개가 땅에 끌리듯 쳐져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잎 뒤에 숨어있다.

"여보, 노각은 더 놔둘까요? 씨받게!"
"씨받기는! 오이가 늙으면 덩굴도 늙는 거야!"

아내가 따낸 노각이 오동통하다. 그리고 꽤 크다. 아마 씨가 똑똑 여물어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늙은 오이를 노각이라 부른다. 오이는 따는 시기를 며칠만 놓쳐도 금세 늙는다. 늙게 되면 누런빛으로 껍질이 두껍고, 꺼칠꺼칠하여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그래 오이는 노각이 되기 전에 바로바로 따야한다.

노각이 된 오이가 많게 되면 오이덩굴도 누런잎이 진다. 그러면 오이 달리는 게 시원찮아진다. 덩굴이 싱싱하여야 오랜 기간 따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각도 무침이나 생채, 장아찌를 해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특히, 복더위에 지쳤을 때 무쳐먹으면 입맛을 돋궈주고도 남는다.

"노각으로 뭐 해먹지? 새콤하게 무쳐볼까?"
"좋지! 입맛이 깔깔한데 오이지 담근 거로 냉국도 해보지?"

아내가 저녁 찬거리를 결정하고, 할 일이 생긴 듯 생기가 돈다. 뭔가 할 일이 정해지면 아내 손길이 빨라진다.

노각무침에 오이냉국이라? 저녁반찬이 기대가 된다. 아내가 청양고추 몇 개를 딴다. 고추밭을 뒤지는 폼이 붉은 고추를 찾는 모양이다. 대파도 몇 뿌리 뽑는다. 울안에 있는 텃밭에서 갖가지 재료를 찾아낸다.

와! 이런 맛이 여름철 입맛을 살려 준다니까!

▲ 노각무침에 필요한 재료이다.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넣어 갖은 양념을 하면 매콤한 맛이 더해진다.
ⓒ 전갑남

▲ 노각무침을 할 때 소금에 절여 보자기에 싸서 꼭 짠다. 여기에 갖은 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치면 된다.
ⓒ 전갑남

"여보, 노각은 내가 손질할까?"
"그러면 고맙죠! 난 오이지부터 꺼내올게요."

노각을 감자 깎는 칼로 표면을 벗겨내자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껍질과 속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게 노각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운데를 가르자 여물기 시작한 씨가 보인다. 숟가락으로 씨를 도려낸다. 그리고 세로로 길쭉길쭉 썰어놓는다.

아내가 고맙다며 그만 쉬라며 등을 떼민다. 이제 아내의 손맛을 기다려본다.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며 일을 시작한다.

우선 노각을 소금에 절인다. 슬슬 소금을 뿌리는 솜씨가 잽싸다. 소금이 절여지는 동안 오이지를 손질할 모양이다.

▲ 팔팔 끓은 소금물을 부어 만든 오이지. 무쳐먹기도 하고, 냉국을 하여 먹으면 맛난 반찬이 된다.
ⓒ 전갑남

▲ 오이지는 얇게 썰어 찬물에서 간기를 빼야한다. 냉국을 만들 때 얼음을 동동 띄워먹으면 시원하다.
ⓒ 전갑남

오이지냉국은 간단하다. 얇게 오이지를 찬물에 담가 간기를 뺀다. 한두 번 국물을 따라 내고 간을 맞춘다. 여기에 청양고추, 홍고추, 양파, 파를 넣고, 얼음을 동동 띄운다. 보기에도 맛난 냉국이 완성된다. 오이지냉국은 여름철 음식으로 시원한 맛이 참 좋다.

이제 노각무침을 할 차례다. 소금에 절인 노각에서 많은 물이 우러나왔다. 절여진 노각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여보, 소금 간을 찬물에 씻어야 되는 거 아냐?"
"그러면 간물이 빠져나가 맛이 별로에요."

아내가 마포보자기에 절인 노각을 넣어 꼭 쥐어짠다. 고추장을 넣으면 미끈거린다며 고춧가루만으로 갖은 양념을 한다.

맛난 노각무침과 오이지냉국은 식초 몇 방울과 참깨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시큼한 냄새에 군침이 돈다.

뜨거운 밥에 빨간 노각무침을 얹어 후루룩 먹어본다. 살캉살캉 씹히는 소리와 부드러움이 맛의 조화를 이룬다. 노각무침의 칼칼한 맛이 입안에서 끝날 즈음, 시원한 오이지냉국을 떠먹으니 개운함이 그만이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아내에게 맛난 음식을 해줘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한마디 하였다.

"와! 오이반찬이 더위에 지친 입맛을 팍팍 살려주었네!"

#노각#늙은오이#오이지#오이지냉국#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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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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