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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사연구에 있어 인민해방군의 발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역사적 시기는 1840년 아편전쟁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까지 약 1세기에 해당한다. 이 기간 중 중국은 외세의 분할과 침략, 군벌의 난립,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 간의 내전 등 극심한 소용돌이 속에 있었으므로 강대하고 통합된 군사력 건설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인민해방군은 국민당의 장개석 정부와 노선을 달리하는 공산혁명가들에 의해 홍군(紅軍)이라는 이름의 사실상 비적(匪賊)이나 다름없는 소수 무장집단으로 출발했다. 그 후 무수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결국 국민당을 축출하고 대륙통합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인민해방군이 국민당군 보다 강력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내전이 종결되지 않은 1946년에서 50년 사이 인민해방군은 국민당군으로부터 소총 3백16만정, 기관총 32만정, 각종 야포 5만5천문, 전차 622대, 기갑차량 389대, 공군기 189대, 소형 군용선박 200척을 노획함으로써 어느 정도 정규군대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노획무기의 수적인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는 노후화돼 실전에 사용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군수지원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이처럼 국내 방위산업의 구축이 시급한 상황에서 공산국가 중국은 세계정세의 양극화로 인해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자 가장 발전된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에 자연스럽게 경사되었고 이렇게 해서 소련의 사회주의 발전모델에 따른 국가·경제·군사체제를 건설하게 된다. 물론 1960년부터 소련의 갑작스런 지원중단으로 경제 및 군사적으로 큰 피해를 입긴 했으나 그렇다고 소련의 군사적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군사부문에 관한한 중국 인민해방군은 소련 붉은 군대의 아류였다.

양(量)에 의한 사고에서 질(質)에 의한 사고로 전환

1981년 등소평은 인민해방군의 규모를 감소시키고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축소시키는 대대적인 정비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그 동안 독립조직이나 다름없었던 인민해방군의 통수권체계를 의회에 해당하는 인민대표대회 직속 민간기구인 중앙군사위원회의 통제를 받게 했다.

또 골수 모택동주의자들인 이른바 인민전쟁론 세대의 장교들을 대거 추방하고 그 자리에 현대식 교육을 받은 젊은 장교들과 부사관들을 대거 승진 발령했다. 여기다 고급장교들은 나이 제한을 엄격히 두어 군단장은 55세 이하, 사단장은 45세 이하, 연대장은 35세 이하, 대대장은 30세 이하로 한정했다. 최근 단행된 북경·광주·난주·난징군구(軍區)사령관 인사에서도 전문지식과 국제적 식견을 갖춘 복합지식형의 50대 인사들이 발탁됐다.

1985년에는 3개 학교를 통합하여 국방대학을 창설했으며 11개의 군구를 7개로 통합했다. 이에 따라 인민해방군은 35개 군에서 18개 군으로 축소됐다. 1985년 100만 명을 감축하고 1997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만 명과 20만 명을 감축한 인민해방군은 2005년까지 20만 명을 추가로 감축해 병력을 230만 명 수준으로 유지하고 앞으로 20년 내에 193만 명까지 줄이겠다는 장기 목표를 수립했다. 이와 함께 7대 군구를 개편해 미국식 군대편제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화 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개편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비록 14개 사단 약 20만 명을 인민무장경찰로 전환시켜 실질적 감소를 최소화하긴 했지만 비대한 총참모부·총정치부·총후근부의 3총부와 7대 군구로는 정병간편(精兵簡編)주의를 지향하는 국방정책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현대화 추세에도 크게 뒤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군대에 대한 전면개편에 착수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경·심양·제남·남경·광주·청도·난주의 7개 군구를 북방·연해·서남군구 등 3개의 대군구와 북경·우루무치·라싸·남해특별경비구 등 4개의 특별경비구로 혁신적인 개편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남경군구와 제남군구의 일부부대를 모체로 공군 예하에 창설될 제16공수군단에 항공기와 미사일부대를 배속시켜 기존의 제15공수군단과 함께 대 대만작전 전문특수부대로 육성할 것이라고 한다.

1979년 월남침공의 실패로 제기된 '현대적 조건하의 인민전쟁'교리와 '85년 소련의 위협약화로 등장한 국부전쟁' 교리는 근본적으로 현대전에서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정과 함께 국부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군의 현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는 중국 군부가 국경방위 및 비정규전과 관련해 긴급대응부대의 창설과 확대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과도 일치한다. 중국군 지도자들은 현대 조건하에서의 유한국부전쟁은 고도로 정예화 된 직업전사들과 선진화 된 첨단장비에 의한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양(量)에 의해 적을 굴복시킨다는 과거의 사고는 질(質)에 의해 적을 패배시킨다는 생각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11개 대군구를 7개로, 36개 야전군을 군단급인 24개 집단군으로 재편했다.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이 운용 중인 신속대응부대는 공군 예하의 제15공수군단, 북경군구 예하 제38집단군, 해군 예하 2개 해병여단, 그리고 정예 중의 정예인 7개의 대군구 직속 특수전대대다.

1988년 6월 14일자 해방군보에는 인민해방군 공수부대에 7개 대군구를 각각 지원하기 위한 권두부대(拳頭部隊 : 일명 주먹부대, 긴급대응부대)가 창설되었음이 보도되었다. 이 권두부대는 사전에 준비 없이 그 전투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12시간 이내 중국의 어느 지역에라도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어느 지역이라는 용어가 과장되어 사용되지 않았다면 그 지역은 중국 서남부의 티베트, 서북부의 신강 및 남중국해의 남사군도를 포함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긴급배치부대가 짧은 시간 내에 작전지역으로 투입되기 위해서는 수송기나 헬리콥터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중국공군의 수송능력으로는 무리일 것이다. 따라서 중국군은 각 대군구마다 1개 군단이나 1개 사단을 신속대응군으로 지정 운용하고 있으며 지상군 병력 160만 명 중 약 15~20%가 신속대응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2008년 북경올림픽에 대비해 2005년 말 테러 및 돌발사태를 전담하는 경찰 대테러특수부대로 '특경총대(特警總隊)'를 창설했다.

현재 집단군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북경군구 예하 38집단군과 심양군구 예하 39집단군, 사단 중에서는 신강성과 중앙아시아를 작전지역으로 하는 난주군구 21집단군 예하의 63사단, 인도와 월남을 작전지역으로 하는 성도군구 13집단군 예하 149사단, 한반도와 대만사태에 대비하는 제남군구 54집단군 예하 162사단 등을 비롯해 9개의 주력사단이 이 1993년부터 신속대응임무를 맡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긴급대응부대는 일차적으로 중국 영토 내에서 실시하는 작전능력과 아주 제한된 의미에서 중국 접경국가에 대한 군사개입을 지원하는 능력을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군편제 하에 있지만 중앙군사위원회 직속 긴급대응부대의 주축인 호북성 효감에 위치한 제15공수군단은 국지전 발생시 가장 먼저 투입되는 신속대응군으로 최근 43, 44, 45여단 등 3개 여단이 3개 사단으로 확대 개편됐다. 이 부대는 예산과 신예장비를 최우선적으로 지원 받고 있으며 24시간 내에 중국본토 어느 지역이라도 즉각 투입될 수 있다. 또 해군의 특수부대인 해군육전대(海軍陸戰隊)는 1953년 1개의 육군보병연대와 2개의 보병대대를 기초로 화동군구에서 창설되었다.

그러나 57년 6월 폐지되었다가 70년대 말 중앙군사위원회의 결정으로 다시 부활되었으며 현재 5천여 명 규모로서 육전보병·포병·장갑병·공정병·통신병·정찰병 및 각종 근무보장분대로 편성되어 있다. 1988년 남사군도분쟁 시 일부의 도서에 상륙했었다.

세계 최대규모에서 정예화 된 신속대응군으로

2006년 5월 중국 국방군사과학위원회는 원자바오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2006~2020 군사과학 증진계획을 확정했다. 2020년까지 군을 디지털로 무장시키고 항공·우주·핵발전·정보기술 등 군사과학기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군사현대화를 이룩한다는 것이다. 2001년 2월에도 중국 중앙군사위원회는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5개년 강군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2005년까지 지상군은 부대수를 줄이는 대신 각 집단군에 항공단을 창설하여 기동성과 신속대응능력을 높이고, 해군은 대양해군을 목표로 구축함·잠수함·호위함전력을 대폭 보강키로 했다. 또한 공군은 제1선 전투기 기종을 100% 신형으로 교체하고 100개의 전략비행장을 건설하며, 전략미사일부대는 신형미사일을 갖춘 전략미사일대대를 증설하여 제1단계 미사일방어체제를 완료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중국인민해방군은 적어도 수적인 면에서는 총 병력이 235만명으로 154만명과 113만명인 미국과 러시아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여기에 민병 500만명과 국내 치안 및 국경경비를 담당하는 인민무장경찰 66만 명을 더하면 적어도 수적으로는 세계최대다. 그러나 그 세계최대는 현재와 같은 상태로 계속 군사혁신이 진행될 경우 오래지 않아 세계최고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육군은 7개의 대군구, 28개 성급(省級) 군구, 4개 방위사령부, 21개 집단군, 61개 사단(44개 보병사단·9개 전차사단·7개 포병사단·1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편성된 160만의 대군으로서 노후장비 교체 이전까지는 탱크와 장갑차가 1만 3천여 대에 이르고 야포 1만7천6백문, 헬기320여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남·북한과 대만, 일본의 탱크와 장갑차를 전부 합친 것과 비슷한 규모다.

폭동진압을 포함한 국내치안과 탈북자·밀입국자 체포 등 국경경비, 주요 국가기관 및 지역경비, 반혁명활동 단속, 국가 고위층들에 대한 동향감시, 화재 및 산림경비, 국내 건설담당, 전시 정규군 지원, 심지어는 황금광산 발굴 등에 이르기까지 임무에 따라 3개로 나누어진 인민무장경찰은 1947년 공안군을 개편하여 창설한 후, 72년 4월 인민무장경찰, 인민변방무장경찰, 소방경찰을 통합함으로써 현재의 인민무장경찰로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다.

2006년 중국 국방백서는 인민무장경찰의 총원을 66만 명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부여된 임무가 많다고는 하나 인원수에서만큼은 세계 최대의 경찰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 인민무장경찰은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원회의 이중 지휘를 받고 있으며, 정규군의 장비가 지급되고 정규군의 법규와 지침에 따라 지휘·통제되며 정규군과 동일한 권리와 급여가 적용되는 사실상 제2의 육군으로서 전시에는 인민해방군과 함께 정규작전에 투입된다.

이와 함께 얼마 전까지도 중국공군은 덩치만 컸지 그 수준은 육군을 공중에서 엄호하고 수송하는 육군항공수준으로서 육군의 시녀에 불과했다. 방공포병을 포함한 40만 명의 인원에 전투기 4천여 대와 180여 대의 핵폭탄 장착이 가능한 720여 대의 폭격기를 포함해 6500여 대의 공군기와 1만 6천문의 대공포를 갖추고 있었으나 전력은 한 세대 뒤떨어진 구형항공기의 집합체에 불과하고 작전기 수에 있어서만 세계 2위로 주변국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부터 노후화된 전투기들을 대폭 정리함으로써 수적 우세를 질적 우세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04년 11월에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의 자체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1~2년 내 실전배치를 앞두고 있다. 또한 미국공군의 주력기인 F16에 대항하기 위해 비밀리에 독자 개발한 '섬(殲) 10 최신예 전투기' 10대를 남경군구 공군기지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99년 코소보전쟁 당시 세르비아가 보유하고 있던 러시아제 구형지대공미사일에 의해 격추된 미 공군의 F117A 스텔스 전폭기 잔해를 입수해 개발 중인 제4세대 ‘섬 13과 14 스텔스전투기’를 2015년쯤 취역시킬 예정이다. 러시아로부터도 최대 4000Km를 운행할 수 있는 SU-27전투기를 포함해 Su-30MKK, Su-30MK2, Mig-21, IL-76전투기, IL-78 공중급유기 등을 도입해 아시아 전역에서 작전수행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3500Km의 항속거리와 1200Km의 작전반경을 갖춘 제3세대 전투기인 ‘JF-17 선더’를 파키스탄과 함께 생산할 계획이다.

또한 1970년 4월 인공위성 동방홍(東方紅) 1호를 시작으로 2000년까지 4곳의 우주센타에서 48개의 위성을 쏘아 올렸으며 2005년까지 30개를 추가 발사할 계획이다. 특히 정찰위성 ZY2는 지상에 있는 20cm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미국의 정찰위성 KH11이 크기 15cm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중국의 군사위성 기술 수준은 거의 미국의 기술수준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우주선발사계획도 획기적인 결실을 맺고 있다. 1999년 11월 무인우주선 선저우 1호 발사를 시작으로 2003년 10월과 2005년 10월에는 유인우주선 선조우 5호와 6호의 발사에 성공했으며 스타워즈를 담당할 우주전력 양성의 일환으로 천군부대(天軍部隊)도 창설할 계획이다.

그러나 중국은 영공과 우주방위에 그치지 않고 가상공간인 사이버세계에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얼마 전 해방군보는 사이버전쟁을 특집으로 게재하고 “인터넷전쟁은 육·해·공군의 실전과 똑같이 간주돼야한다”고 역설했으며 사이버전쟁 양상으로 컴퓨터 해킹을 통한 정보전쟁과 특수부대에 의한 기습공격을 조합함으로써 적의 작전시스템을 파괴하는 전술을 소개했다. 이는 중국이 공격적인 사이버전쟁 수행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과시한 것이다. 중국은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고자 육·해·공군에 이어 전자전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이버군인 Net Force를 창설한데 이어 약 30만 명 규모의 사이버경찰도 창설할 예정이다.

후발제인(後發制人)의 핵전략

현재 중국의 핵전략은 남이 나를 공격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공격하지 않지만 남이 나를 공격하면 나도 반드시 상대를 응징한다는 “인불범아, 아불범인, 인약범아, 아필범인(人不犯我, 我不犯人, 人若犯我, 我必犯人)”과 일단 양보했다가 유리할 때 상대를 제압한다는 후발제인(後發制人)이다. 이는 타국이 중국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하는 것을 억제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2포병으로 불리는 21만 명의 전략미사일부대는 400여 기의 전략·전술용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150기가 전술핵미사일이며 260기가 전략핵미사일이다. 전략미사일 중에는 격납고 고정배치형 액체연료추진식이긴 하나 사정거리 13000Km로서 미국과 유럽 전 지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 동풍 : DF-5A(CSS-4) 대륙간탄도미사일 24기와 이와 동급인 DF-5(CSS-X-9) 8기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1999년에는 미국으로부터 첨단기술을 절취하여 제조한 것으로 알려진 고체연료 사용방식의 차량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동풍-31이 사정거리 8000Km를 성공적으로 시험비행하고 실전배치 된데 이어 최근에는 사정거리 12000Km의 이동식 다탄두 미사일 동풍-41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와 함께 유인우주선 선조우 5호와 6호의 발사에 성공해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우주강국으로 부상함으로써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력의 획기적 개발로 이어질 전망이다.

2006년 3월 26일자 해방군보에 따르면 중국공군은 최근 서북지방 한 사막에서 자국산 페이트리어트미사일의 개발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해방군보는 미사일의 구체적인 제원과 성능, 이름 등은 밝히지 않은 채 이날 발사된 미사일이 수 Km 상공에서 날아오는 가상 미사일을 정확히 맞혔으며 명중률은 10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고만 전했다.

그러나 페이트어트미사일은 미국 레이시온사가 개발해 지금까지 업데이트된 신제품이 수차례 나왔으나 아직도 명중률이 50~60%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명중률이 100%에 가깝다는 중국의 주장은 상당히 과장됐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중국이 독자적인 미사일방어체제에 돌입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미국의 대중 군사전략에 매우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취급될 것이다.

중국은 2006년 하반기에도 지상발사 고에너지레이저를 이용한 미국 정찰위성의 활동을 방해하는 실험을 성공시킨바 있다. 중국은 이미 1960년대부터 레이저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Project - 640 - 3으로 명명된 레이저무기 개발에 착수해 중국과학아카데미와 국방과학기술산업위원회를 중심으로 신개념무기 개발이라는 목표아래 고출력레이저, 고출력초단파, 레일건, 코일건, 입자빔 등에 관한 300여 개의 연구시설에서 1만 명 이상의 인력이 레이저에 관한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중국은 2007년 1월 11일 우주상공 859Km에 떠 있는 자국의 낡은 기상위성 풍운(風雲)-1C를 KT-2 위성발사용 로켓이나 DF-21 지상 발사 중거리탄도미사일로 격추시킨 실험이 성공함으로써 미국을 놀라게 한바 있다.

중국특색군사변혁(中國特色軍事變革)

이와 더불어 총참모부를 미국식 합동참모본부 체제로 개편하면서 창군 이래 육군이 장악해 온 총참모부에 처음으로 해·공군 출신의 부참모장을 임명, 육·해·공 3군 합동작전체제로의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이제 중국은 전통적인 대륙기질의 육군중심주의에서 탈피해 해·공군 등 작전 반경이 넒은 전략 군사력으로 중점을 옮겨감으로써 군사강국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또 총후근부의 주관 아래 전투와 직접 관련이 없는 타자수·전화교환원·방송요원·운전병·수리공·간호사·취사병 등 단순 노무직은 민간인으로 대체하는 아웃소싱이 추진되고 있다.

중국은 1990년 걸프전 발발 이후부터 ‘92년까지 보고서 2만여 건, 전문서적 700여 권 등을 발간해가며 군사과학과 이론분야에서 혁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처럼 중국군이 미래형 첨단 전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겪는 체질개선의 과정을 중국특색군사변혁이라 명명하고, 2004년 국방백서에 처음으로 명시하였다. 이는 중국 지도부 내의 오랜 기간에 걸친 군사혁신 방향에 대한 논의가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중국은 과감한 병력감축을 통한 군 소수정예화의 일환으로 부족한 기계화와 정보화의 동시 추구 및 이를 통해 최대규모형에서 질량효능형으로, 인력 밀집형에서 과학기술 밀집형으로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 강국으로서 2003년 발표한 과학기술 연구논문만도 40598건으로 세계 6위다. 2004년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초당 10조회 이상의 연산능력을 갖춘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돈인데 중국은 2006년 국방예산을 2005년 보다 14.7% 늘어난 351억 달러로 책정했다. 중국은 이로써 미국(4017억 달러), 영국(488억 달러), 일본(453억 달러), 프랑스(365억 달러)에 이어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국방비를 사용하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이는 중국 국민총생산의 1.36%에 불과하며 세계 평균치인 3%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이 국민 1인당 4만 달러인데 비해 중국은 고작 1000달러에 불과한 실정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국방비는 1995년 이후 지속적인 증가추세가 보여주는 것처럼 계속 증액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협의의 예산이고 미 국방정보국(DIA)이 발표한대로 다른 예산에 포함돼 숨겨져 있는 광의의 예산까지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공식적 국방비의 2~3배에 달하는 700억~1050억 달러까지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너무 과장됐다는 지적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약 450억 달러에서 900억 달러까지 추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최저액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2006년 일본의 국방비 453억 달러에 근접하는 액수로서 사실상 세계 3위 수준이다.

공식 책정된 국방비 규모가 아닌 실제 지출된 군사비의 지출 총액으로 산정할 경우에도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2006년 세계 15개 국가의 순위별 군사비 지출총액에서도 미국(5287억 달러), 영국(592억 달러), 프랑스(531억 달러)에 이어 495억 달러로 4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2006년 5월 25일 발표한 ‘군사력 균형’에서 중국정부가 군사비를 발표할 때 해외 군비구매, 중국 내 방위산업체 보조금, 국방관련 연구개발비 지출 등을 빠뜨려 왔다며 이 모든 지출을 포함시키면 중국의 발표보다 70%는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의 발표로도 국방비는 지난 15년 동안 매년 10%씩 증가해 왔으며 지난 10년 동안 3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수치조차 훨씬 저평가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각국의 물가수준을 반영한 세계은행의 구매력 평가지수(PPP)를 적용하면 중국의 군사비 지출은 755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지적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도 각국 국내총생산을 토대로 한 미국과의 구매력 비율을 감안할 때 중국의 군사비 지출은 미국으로 치면 1882억 달러에 해당돼 세계 2위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중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비율을 2001~2010년에는 1.5~3.0%로 대폭 올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무기구입비 지출도 세계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2004년 6월 스톡홀름의 국제평화연구소는 연례보고서에서 중국, 그리이스, 인도, 터어키, 영국 등 세계 5대 무기수입국 중 중국이 세계 무기시장의 13%를 소화함으로써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100년 전, 영국의 제국주의가 위세를 떨칠 때 청제국은 금세 와해되어 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영국은 중국에서 사라졌고 독일·프랑스·러시아·네덜란드·포르투갈 등 다른 모든 유럽세력들도 아시아를 떠났다. 또 1990년대 말에는 홍콩과 마카오도 되찾았으며 남부해안을 병합하여 바다에 산재해 있는 수천 개의 무인도에까지 군사기지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중국은 국경을 본토에서 1천마일이나 떨어진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해안선까지 넓힐 수 있게 됐다. 또한 필요하다면 전력(戰力)을 동원해서라도 앞으로 10년 이내에 대만을 접수하여 통일을 완성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따라서 20세기가 중국에게 19세기에 이어 여러 면에서 힘들었던 시기였다면 21세기는 중국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지금 같은 속도로 군비증강을 지속한다면 향후 20년 내에 러시아를 추월하고 미국에 이어 2위의 군비 지출국으로 부상할 것이며 세계 일류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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