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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천 삼일계곡에서
ⓒ 조명자
여름휴가와 피서라는 낱말과 담쌓고 산지도 어언 7년여가 되어간다. 피서도 아이들 어렸을 때 이야기지 자식들이 모두 어른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면 그때부턴 집 밖에 나갈 일이 없어진다.

"고속도로가 미어터지네, 유명 해수욕장이 물 반 사람반이네"라는 휴가 피크 철이면 어김없이 되풀이 되는 뉴스를 느긋이 바라보며 선풍기 앞에서 시원한 수박 쪼개 먹는 우리만의 피서 법에 길들여지다 보니 폭염이 지글대는 한여름 나들이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얼떨결에 피서철 나들이, 그것도 피서인파가 가장 많이 몰린다는 7월 28일~29일 1박 2일 강원도 여행을 할 일이 생기게 되었다. 중늙은이가 다 된 처지에 남우세스럽게 젊은이들 틈에 끼어 해수욕을 즐길 일도 아니고, 아직은 삭신 쑤시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뜨거운 모래찜질이 필요한 나이도 아닌데 염천 더위에 길을 나선 까닭은?

군에 간 아들 찾아나선 여행

그렇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냥 아들을 보기 위해서였다면 굳이 피서 인파가 몰리는 7월 말을 택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우리 아들 생일이 7월 29일이니 이왕 면회를 하려면 생일날을 맞추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29일이 일요일이라 외박도 가능한 터였으니 금상첨화지 않은가. 서둘러 펜션을 예약하고 아들 먹일 음식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떨다보니 갑자기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연로하신 부모님 생신엔 이핑계 저핑계 대며 외식으로 적당히 해결하면서 제 자식 생일엔 생김치를 담는다, 고기를 사서 재운다 법석을 떠니 이게 될 말인가?

어쨌든 승용차 트렁크에 온갖 반찬거리와 과일 등을 싣고 새벽 5시에 길을 나섰다. 명색이 강원도니 오죽 밀리겠냐는 생각에 마음이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길은 뻥 뚫려 있었다.

피서하면 적어도 유명 바닷가 정도는 돼야 명함을 내밀텐데 기껏해야 산과 계곡밖에 갈 곳이 없는 영서지방이라니 인기가 없을 만도 했다. 덕분에 평소 주말보다 더 한갓진 도로를 신나게 달려 아침도 안 먹은 아들을 데리고 펜션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지지고 볶고, 아주 한 상 잘 차려 네 식구가 마주 앉았다. 아들 잘 먹는 생김치, 깍두기에 소고기 장조림 그리고 아들 좋아하는 오이지무침과 고구마 줄거리 볶음도 빠지지 않고 챙겨 와 접시에 담아 놓으니 보기에도 푸짐한 밥상이 되었다.

주말에 비 예보가 있었지만 토요일은 날씨도 좋았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화천에는 좋은 계곡이 많다. 포천 쪽에서 보자면 백운계곡이지만 화천에서는 광덕계곡의 물이 좋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계곡보다 숨어있는 비경이 많은 곳이 또 화천의 자랑이다.

점심을 먹고 펜션에서 제일 가까운 삼일계곡을 찾았다. 그동안 내린 수량이 풍부했던지 넘실대는 계곡물이 장관이었다. 너럭바위와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굽이치는 계곡물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용틀임을 했다. 작은 폭포 밑에 형성된 무수한 소의 빛깔은 시린 옥색이었다.

동생 덕분에 취업준비생의 고달픈 일상에서 잠시 놓여난 딸도 대만족이었다. 저녁엔 담양에서부터 공수해 온 흑돼지 삼겹살(껍질이 붙은)로 숯불구이를 해먹고, 강원도 감자로 감자전을 부쳐서 아주 호화판 식단을 마련했다.

일요일 아침은 우리 아들 생일날이다. 아들 낳고 스물 세 해,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여 준 기억이 사실은 없다. 아들 태어나고 며칠 뒤 수배령이 떨어진 남편 덕분에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다시 직장엘 나갔기 때문에 아이들 생일상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아들 어려서는 직장 다니느라고, 커서 학교에 다닐 때는 또 방학 중이란 핑계로 친정 엄마에게 아이들 생일상을 맡겼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아들 좋아하는 잡채까지 만들며 정성을 다하는 마음. 맛있게 먹는 아들 모습을 상상만 해도 너무 즐거워 땀 뻘뻘 흘리며 가스불 앞에 있는 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어미 마음이구나 싶어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소리와 가뭄에 내 논 물대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라는데 정말 그랬다.

▲ 화천 만산동 계곡물
ⓒ 조명자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혼비백산

청정 자연을 만끽하며 맛있는 음식 즐기는 가족 여행. 아들 생일 축하 모임을 빙자한 깜짝 여름 휴가여행이었지만 이번처럼 알짜 여행도 없었다. 아침상을 물리고 느긋한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뇌성벽력을 동반한 폭우가 천지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굵은 빗줄기가 어찌나 거세게 내리던지 펜션 현관 앞이 금방 개울로 변했다. 낮 12시가 체크아웃이라 짐 꾸릴 준비를 하던 참이었는데 정전까지 되어 앞뒤를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까지 갔다.

"우르릉 꽝꽝~~"

천둥이 지축을 흔들고 섬광처럼 날카로운 번갯불이 창가로 꽂혔다. 졸지에 닥친 기상악화에 우리 네 식구는 혼비백산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자니 너무나 난감했다.

두꺼운 구름떼로 봐서 조만간 개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멍청하게 앉아 있자니 좀이 쑤셨다. 빗줄기는 거의 그대로였지만 천둥번개는 잦아진 것 같아 남편을 들볶기 시작했다.

"지금 얼른 주차장에 가서 차를 가져 와 짐을 싣고 나갑시다. 낮12시 체크아웃에 맞춰 비워줘야 하는데 잠시 소강상태 때 빨리 나서야지."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어딜 나가? 잠시만 기다리면 비가 갤 테니 그때 나갑시다."

마침 남편이 말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우르릉 꽝꽝~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했다.

"봐, 봐. 이게 어디 금방 지나갈 비야? 저 하늘 좀 봐? 저렇게 두꺼운 비구름이 언제 개이겠어?"

이번엔 신경질까지 내가며 박박 악을 쓰니까 남편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응원을 청한다.

"너네 엄마 또 우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갑작스런 기상변화는 오래 안 간다니까. 우리 내기할래? 자, 만 원 내기 하자. 비가 그치면 당신이 만 원 내는 거다."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비가 언젠가는 그치지 계속 내리겠냐?"

남편이 쉽게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자 갑자기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빨리 차 안 갖고 올 거냐?"고 신경질을 내는 마누라를 본 남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때는 남편 표정을 의식할 여유가 없었다.

단지 체크아웃 시간을 지켜야 된다는 이유로 이 폭우 속에 짐을 싣고 나가자는 엄마의 생떼가 어이없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신경질을 보다 못한 딸아이가 아빠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엄마, 아빠 말대로 조금만 기다려. 조금 지나면 비가 주춤해질 텐데 뭐가 급해?"

딸이 이러한 기상상태를 뭐라뭐라 학술적으로 설명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딸은 전공이 지리학이다) 어떻게 하든지 천둥번개를 피해 나가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을 정도로 극도의 불안상태에 돌입한 아줌마를 무슨 수로 말리겠는가.

▲ 비 갠 오후
ⓒ 조명자
발악의 근원, 어린 시절 겪은 번개의 공포

사실 나는 '번개 공포증'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여름 방학을 맞아 김포공항 근처에 사시는 큰 이모 댁에 놀러 갔을 때였다. 이모 댁에서 놀고 있다 하루는 옆 마을로 시집 간 이종사촌 언니 집에 심부름을 가게 되었는데 가는 도중에 소나기를 만난 것이다.

이모 댁과 언니네 동네 사이엔 드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는 평야지대였다. 그 논밭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할랑할랑 걷고 있을 때 쏟아진 소낙비. 옷이 젖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앞이 안 보이는 폭우 속에 내리 꽂히는 번개.

미친 듯이 뛰어가는 내 발 밑 바로 앞에서 "찌지직~" 소리를 내는 날카로운 불기둥이 팍팍 꽂히는데 너무 무서워 울 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 서면 그대로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진흙탕에 굴러 신발이 벗겨지고 무릎이 까지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달렸다.

내 눈 바로 밑에서 나를 향해 내리 꽂히던 불기둥. 어렸을 때 겪었던 번개 공포가 얼마나 극심했던지 어른이 되어서까지 강렬한 번갯불에 온 몸이 타들어가는 가위에 눌리곤 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번개 공포가 하필 우리 아들 생일 파티 축하 여행에서 도졌으니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릴 수 있나.

내 발작이 얼마나 심했는지 만 원 내기 정도로 적당히 넘어가려던 남편이 긴장을 해 우산을 받치고 밖으로 나갔다. 아들과 딸은 싸다 남은 짐을 마저 챙기고 철수할 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떨고, 그 빗속에 남편이 드디어 현관 문 앞에 차를 대기시켰다.

짐 보따리고 옷이고 온통 빗물로 적셨지만 폭우와 번개를 피한 대탈출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펜션을 빠져나오는 산길이 온통 물에 잠겨 우리 차가 졸지에 수륙 이동차가 되었다. 거센 물살을 살살 헤치고 간신히 큰 도로에 진입했을 때 심정은 토끼 용궁 갔다 온 심정이었다.

남편 말대로 한 두 시간 정도 지나니 하늘이 훤해져 다시 계곡 탐방을 나설 수 있었다. 군부대에서 쓰레기차 운전병인 아들이니 화천 지리는 웬만큼 꿰뚫고 있었다. 아들의 안내를 받아 찾은 만산동 계곡. 맑은 계곡 물도 물이지만 수십km에 달하는 계곡을 따라 이어진 비포장도로가 얼마나 좋은지 숲 향기를 만끽하며 네 식구가 트레킹을 즐길 수 있었다.

아들을 귀대시키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들은 9시 뉴스. 휴일 폭우에 속출한 사건사고 뉴스가 도배를 하고 있었다. 북한산과 수락산 등반에 나섰던 등산객들이 번개에 감전돼 사망했다는 뉴스를 듣고 놀란 남편이 그제야 오전에 겪었던 위험 순간을 이야기한다.

"아침에 정말 위험했어. 당신이 하도 난리를 쳐 나가기는 했지만 우산이 걸리더라구. 번개를 칠 땐 큰 나무도 위험하지만 우산 끝이나 골프채 같은 뾰족한 쇠붙이도 아주 위험하거든. 오늘 북한산에서 감전된 희생자들도 등산용 스틱이 문제였다지 않아? 차를 가지러 주차장까지 가는데 우산대를 잡은 손에 찌릿찌릿 전기가 오는 거야. 재수 없었으면 나도 감전사 할 뻔 했잖아. 앞으로 목숨을 담보하는 요구에는 아무리 마누라라고 해도 절대로 응하지 않을 거야. 알았지?"

덧붙이는 글 |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공모 기사입니다.


태그:#여름휴가, #강원도, #화천, #번개,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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