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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것이다. 용두산은 슬플 것이다. 일제시대와 6·25를 거쳐 용두산과 용미산을 거쳐 간 수많은 조선 민중의 비원을 담고 있기에 용두산은 슬플 것이다. 그리고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을 안고 있을 곳이다.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용두산에 얽힌 추억 하나 쯤은 다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용두산 공원은 부산 사람들의 영원한 노스탤지어니까.
오래된 흑백 사진 하나를 본다. 부산 타워와 꽃시계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까까머리 중학생 머슴애와 초등학생 가시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 옆에는 너무나 촌스러운 선글라스를 낀 총각 하나가 한껏 멋을 낸 채 서 있다.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 추억의 뒤안길에서 용두산 공원의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간다. 계단은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힘들게 올라갔는데, 이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편하게 올라간다. 그래서 낭만은 별로 없다. 어릴 적 느꼈던 계단의 모습이 아니라서 너무 실망스럽다.
어허, 이럴수가. 아직도 저것이 존재하다니.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눈물까지 글썽인다. ‘새점’이란 커다랗게 쓰여 있는 표지판이 눈에 아리도록 반갑다. 어쩜 저렇게 하나도 안 변했는지. 대학생 때,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저 새점을 보고 난 후 얼마나 민망했는지. 그때 저 새점은 우리들의 이별을 예고했었다. 그녀와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 후 거짓말처럼 우리는 헤어지고 말았지. 아아, 그 시절의 향수여!
꽃시계도 여전하고, 공원 한쪽에서 바둑 두는 노인들도 여전히 그대로구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그대로인데, 지나가는 세인들의 얼굴은 참 많이도 변했구나. 세태가 변하고, 시절이 하수상하고, 사람들의 인상도 스러지고.
아이들. 그리고 광장의 비둘기들.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는 저 아이의 표정은 35년 전의 내 표정이었다. 어쩜 저리도 똑같은지. 잠시 착각이 생긴다. 내가 과거로 온 것은 아닌가. 어쩜 이리도 모든 것이 그대로인지. 이곳은 세월마저 붙들어 매는 빙설의 계곡인가.
용두산에서 용미산을 바라본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용미산. 용의 대가리가 있으면 용의 꼬리가 당연히 있는 법. 간악한 일제는 용의 꼬리가 힘을 쓴다 하여 용미산을 발파하고 말았지. 그 자리에 부산부라는 관청을 만들었지. 부끄러운 역사,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들. 그래도 용두산은 아직도 부산 시민에겐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지위를 누릴 것이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