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7일, 57년 전 노근리가 다시 재현됐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과 철로 주변에서 400여명의 피난민이 미군에 의해 학살되었던 사건은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가해자인 미국이 완전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으며, 유해발굴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쌍굴 들머리에는 '이곳은 노근리사건 현장입니다(This is Nogeun-Ri Incident Point)'라는 펼침막과 간판이 걸려 있다.
철로 위로는 여전히 기차가 무심코 달리고 있었지만 쌍굴 들머리 양측 날개에는 흉측스럽게 탄흔이 즐비했다. 굴 안의 탄흔은 무슨 까닭인지, 누구에 의해선지 지워졌다. 그렇다고 그 날이 학살이 지워질 것인가? 무자비하게 쏟아졌던 기관총 사격에 피해자들은 극도의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이날은 처음으로 유해발굴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합동위령제가 끝난 다음 사람들은 쌍굴 위 언덕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 유해 발굴은 6·25전쟁 기간의 양민학살사건 중 최초로 법에 의해 희생자의 유해를 확인하고, 한자리에 모아 명에를 회복함과 제대로 된 추모를 하기에 다른 양민 학살사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날 위령제에는 당시 미군기의 폭격에 의해 한 쪽 눈알이 빠져 실명한 채로 살아가는 양해숙 할머니도 참석했다. 할머니는 아물 수 없는 상처와 당시의 참상을 잊지 못하는 듯 침통한 얼굴로 희생자들의 위패에 헌화를 했다.
할머니는 죽은 자에 견주면 그래도 나은 것이라며 위안을 하지만, 아직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은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산자들은 진혼무를 추어보지만 그것은 작은 노력이었다.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 구천을 맴돌고 있는 원혼들이 제대로 눈을 감도록 하는 것만이 산자들이 마지막으로 할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