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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시장에 들렀다면 꼼장어를 안 먹고 갈수는 없다
자갈치시장에 들렀다면 꼼장어를 안 먹고 갈수는 없다 ⓒ 맛객

“꼼장어 자실라고에?”
“그럼 또 뭐가 있어요?”

“꼼장어 이거 한개(한가지) 뿐이라.”
“혼잔데…. 혼자 먹을 건데.”

“혼자도 2인분.”
“2인분? 2인분 얼만데?”

“2만원!”
“다른데 갈라요.”

“응?”
“다른데 갈라요.”
“이런데 다 1인분씩은 안 팔아요. 소주 한 병 해 가꼬 2인분….”


소주 한 병 껴서 2인분 가격에 먹으라는 얘기다. 술도 좋지만 혼자 와서 2인분을 먹어야 한다니. 일단 다른 집으로 가 보기로 하자. 할머니 말씀대로 다른 집도 1인분씩 팔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장 연세가 있어 보이는 할머니를 선택해서 들어갔는데도 절대 1인분은 팔지 않는다고 하는데 다른 집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렇다고 다시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어디로 들어갈까 고민하면서 걷다보니 고래고기를 파는 곳이 보인다.

고래고기 한 접시에 2만원이지만 맛만 볼 요량으로 1만원어치만 주문했다
고래고기 한 접시에 2만원이지만 맛만 볼 요량으로 1만원어치만 주문했다 ⓒ 맛객

고래고기는 젓갈이나 소금에 찍어먹는다
고래고기는 젓갈이나 소금에 찍어먹는다 ⓒ 맛객

꼼장어(먹장어지만 맛을 살리기 위해 실생활 용어인 꼼장어라 한다)에 마음 상해 있던 차 잘됐다. 고래고기나 먹자. 한 접시에 2만원, 1만원 어치만 달라고 했다. 표정은 안 준다고 말하면서도 행동으로는 1만 원어치를 내오고 있다. 맛을 보니 실망스럽다. 남기고 일어났다. 고래고기가 맛이 아니다 보니 다시 꼼장어에 대한 미련이 다시 생긴다. 원조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자갈치시장에서 선택한 원조집

“술 자실 겁니까?”
“술은 맥주 마실려구요.”
“술 한 병 하고 껴서 2만원에 드이소.”


내가 잠시 망설이자 이어서 말한다.

“거 만원 어치씩 일인분 이렇게 안 팔거든예. 이게 비싸나서.”

일인분씩 안 판다는 거야 식당 영업 방침이니 뭐라 할 순 없지만 꼼장어가 비싸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다음날 시장 길거리에서 생꼼장어를 봉지에 담아 팔고 있었는데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선택의 폭은 좁혀졌다. 포기하고 가든가 술 한 병 껴서 2만원에 먹던가. 에이 먹자! 먹자고 왔는데.

부산의 자갈치시장 신관 밖에는 꼼장어와 고래고기를 파는 식당이 바닷가 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부산의 자갈치시장 신관 밖에는 꼼장어와 고래고기를 파는 식당이 바닷가 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 맛객

꼼장어는 포장마차 대표 안주로 서민들과 함께 해 온 음식이다. 요즘은 냉동 상태로 동남아산도 많이 들어온다. 꼼장어 체인점 같은 데에서 주로 수입되어 온 꼼장어를 사용한다.

최근에는 산꼼장어도 유통되고 있지만 꼼장어는 역시 포장마차에서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고 주문해 먹는 맛이 최고인 듯하다. 몇 해 전엔 완도에 가서 산 꼼장어를 껍질도 벗기지 않는 채 통째로 구워 내장 째 토막 썰기 해서 먹기도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꼼장어는 당연히 껍질을 벗기고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알았다.

그런데 다른 장어와 달리 왜 꼼장어만 껍질을 벗기고 유통되는 걸까? 그 이유를 달포 전에 알았다. 인천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한 사장님의 증언에 따르면 꼼장어 껍질은 가죽제품용으로 팔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껍질을 벗긴 꼼장어는 부속물인 셈이다. 그걸 요리로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꼼장어는 1인분에 1만원이지만 2인분부터 판다
꼼장어는 1인분에 1만원이지만 2인분부터 판다 ⓒ 맛객

깻잎에 싸서도 먹는다
깻잎에 싸서도 먹는다 ⓒ 맛객

빨간 양념과 채소가 어울린 꼼장어볶음이 나왔다. 꼼장어를 입에 넣고 씹자 매콤하면서 쫄깃하게 씹힌다. 이런 맛이니 식감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전국 맛 기행 길에 들른 부산. 집 떠난 지 일주일여가 넘어가고 있다. 아는 이 없는 이곳에서 꼼장어에 맥주 한 잔 마시다 보니 울컥 감정이 복받친다.

난 무엇을 위해 여기 와 있는 걸까? 이 순간이 과연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 나를 깨운 건 노래였다. 각설이 분장의 남자가 노래방 반주기를 가지고 길거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일본의 가라오케 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온 지역답다. 거하게 술을 마신 취객은 몇 천원을 주고 한 곡 뽑는다.

자옥아~ 자옥아~ 내가 정말 사랑한 자옥아~
내 어깨 위엔… 자옥아~ 자옥아~ 내가 내가 못 잊을 사람아~~~


흥겨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는 있지만 그들의 뒷모습에서는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취객의 흥을 살리기 위해 신난 몸짓으로 장단을 맞추는 각설이도 슬퍼 보인다. 인간은 슬픔을 보일 때 보다 숨기려 할 때 더욱 슬프게 보여진다.

외로운 나그네는 그들의 노랫가락이라도 있어 좋다. 혼자라는 느낌이 덜하다. 밤이 깊어지자 인적도 드물어진다. 부산의 밤바다에서는 비릿한 바닷내음이 풍겨온다. 여기가 부산 자갈치시장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했다. 다시 꼼장어 맛이 산다. 그래 한 잔 마시자. 오늘은 외로운 밤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 정보는 http://blog.daum.net/cartoonist/10736203 에 실렸습니다.


#자갈치시장#고래고기#꼼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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