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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톈안먼) 광장에 걸린 모택동 사진.
천안문(톈안먼) 광장에 걸린 모택동 사진. ⓒ 김종성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지식인들 중에는 모택동(마오저뚱)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또 많은 중국학자들이 중국 영토 안에서 모택동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최근 어떤 중국학자는 "많은 학자들이 모택동을 비판하고 있지만, 나처럼 강렬하게 비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모택동 비판이 대단한 자랑거리인양 말하기도 했다. 문화혁명 시절, 모택동 정권에게 박해를 받은 상당수 지식인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분위기다.

또 현 중국 지도부 안에는 후진타오(호금도) 국가주석처럼 모택동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많다. 후진타오 주석은 문화혁명 시절 지방으로 하방(좌천)되었다가 개인적 노력과 후야오방의 도움 등에 힘입어 중앙으로 진입한 인물이다.

그런 분위기만 접하다 보면, '중국에서 모택동의 인기는 이제 한 물 갔나 보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넓은 데로 시선을 돌리게 되면, 상황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중국 지식인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모택동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중국 지식인들은 겉으로 명확하게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모택동에 대해 분명히 존경심을 갖고 있다. 모택동을 비판하는 동료들을 의식해서 표현을 제대로 못할 뿐이다.

모주석 기념관. 지금은 2008년 올림픽에 대비해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모주석 기념관. 지금은 2008년 올림픽에 대비해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 김종성

모택동의 영향력이 어떠한가 하는 점은,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천안문(톈안먼) 광장에 그를 기념하는 모주석 기념관이 있다는 점에서도 단적으로 잘 드러날 것이다. 모택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없었다면, 개혁·개방 이후 모택동이 비판받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건물이 남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리장성이 지나는 파다링. 이곳에서도 모택동은 인기 상품이다. 사진은 모택동을 상품으로 장사를 하는 상점의 모습,
만리장성이 지나는 파다링. 이곳에서도 모택동은 인기 상품이다. 사진은 모택동을 상품으로 장사를 하는 상점의 모습, ⓒ 김종성

왕푸징 거리의 상점에 전시된 모택동 형상. 부처님 형상보다 모택동 형상이 더 크다.
왕푸징 거리의 상점에 전시된 모택동 형상. 부처님 형상보다 모택동 형상이 더 크다. ⓒ 김종성

왕푸징의 어느 상점에 걸린 모택동 초상화.
왕푸징의 어느 상점에 걸린 모택동 초상화. ⓒ 김종성

그리고 중국 길거리나 관광지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모택동 초상화다. 만리장성이 지나는 파다링 입구의 상점가에서도 그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베이징의 최대 번화가인 왕푸징 거리에서 그는 부처님보다도 더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모택동 어록도 마찬가지다. 핸드폰 크기도 안 되는 모택동 어록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최고 60위엔(약 7800원)에서 최저 10위엔(약 1300원)에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물론 주로 관광객들에게 판매되는 것이지만, 모택동의 어록이 중국에서 계속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은 그를 반대하는 정치세력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동을 걸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도박물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모택동 동영상.
수도박물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모택동 동영상. ⓒ 김종성

신문을 읽고 있는 모택동. 수도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을 찍은 사진이다.
신문을 읽고 있는 모택동. 수도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을 찍은 사진이다. ⓒ 김종성

그리고 중국의 야심작인 수도박물관(서우두박물관)에서는 아예 공간 하나를 할애해서 그에 관한 동영상 및 사진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신문을 읽고 있는 모택동의 모습이 편안하기만 하다. 수도박물관에 전시된 사진 자료다.

모택동 사진으로 도배된 중국 위엔화. 이 그림에서는 50위엔짜리가 빠져 있다.
모택동 사진으로 도배된 중국 위엔화. 이 그림에서는 50위엔짜리가 빠져 있다. ⓒ 김종성

또 모택동이 중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위엔화의 문양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위엔화에는 100위엔·50위엔·20위엔·10위엔·5위엔·1위엔짜리가 있다. 이 모든 돈에 하나같이 모택동 사진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지폐 하나씩을 '맡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오로지 모택동만이 위안화를 장식하고 있다. 모택동이 중국 화폐에서 '절대 지존'의 위상을 점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위안화보다 아래 단위인 쟈오화 단위에서는 다른 인물들의 사진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돈은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고 있다. 으뜸(위안, 元 )이 아닌 모퉁이(쟈오, 角)에 '모 주석님'을 모시는 것은 결례가 아닐까.

그리고 모택동이 현대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아직까지도 그가 그 위상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안에 있다. 현행 중국 헌법에는 "모택동 주석을 영수로 하는 중국공산당이 중국 각족(各族) 인민을 영도"하여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었다는 지난날의 역사가 장황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헌법에서는 국가의 지도이념 중 하나로서 '모택동 사상'을 천명하고 있다.

모택동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는 중국의 현 지도부도 결국에는 모택동 사상을 이념으로 하는 헌법 하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일종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중국 내 분위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지식인·정치인 그룹에서 나타나는 반(反)모택동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모택동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아직도 여전히 최강의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물론 중국 지식인들이 모택동을 대놓고 비판하고 또 중국 정치인들이 모택동을 은근히 깎아내리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흐르게 되면 대중들도 이 같은 지도층의 분위기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지속적인 모택동 비판이 언젠가는 옷을 흠뻑 적실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의 분위기로 볼 때에는 중국에서 그 누구도 모택동의 아성을 건드릴 수 없다. 중국 같은 정치체제 하에서 현 지도부가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모택동에 대해 중국 인민들이 변치 않는 사랑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현대 중국에서 모택동이 어느 정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그럼, 죽은 뒤에도 그가 여전히 이 같은 사랑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든지 자신을 깎아내리려는 '살아 있는 정적'들 사이에서 '죽은 모택동'이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젊은 시절에 모택동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이 있는 '살아 있는 후진타오'도 '죽은 모택동'을 어찌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두 가지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모택동이 이룩한 것들이 아직은 현재형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모택동은 중국 인민과 함께 근대 중국의 위기로부터 현대 중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을 구해낼 때에 중국을 지도한 인물이라는 점이 기본적인 인기 비결일 것이다.

둘째, 모택동은 중국 인민과 함께 토지균분을 실현한 인물이다. 개혁·개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중국 인민들이 토지균분의 은덕을 입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인기 비결일 것이다.

이처럼 모택동 시절에 이룩된 성과들이 아직 그대로 유효하다는 점이 모택동의 인기를 유지하는 본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모택동의 인기가 앞으로 천년만년 지속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모택동이 영도하는 공산당의 지배 하에서 중국인들이 토지를 분배받긴 했지만, 향후 중국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계속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 같은 토지 균분이 와해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에는 '모택동과 함께 이룩한 토지균분'이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완료형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모택동에 대한 '지지'는 모택동에 대한 '향수'로 바뀌고 말 것이며, 이렇게 되면 모택동은 추억 속의 인물로 희미해져 갈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의 모택동 지지는 중국 지도부가 개혁·개방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느냐에 의해 그 향방이 좌우될 것이다. 모택동에 대해 비판적인 중국 지도부가 중국 인민들을 '모택동과 무관한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면, 중국의 헌법·화폐·거리 등에서 모택동은 점차 빛바랜 인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처럼 모택동 없어도 잘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중국인들은 '죽은 배우자'를 추억의 페이지로 넘기고 '새로운 배우자'를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중국에서 '죽은 모택동'이 '살아 있는 정적'들을 압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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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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