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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알 선생의 교실 풍경> 책표지
<타조알 선생의 교실 풍경> 책표지 ⓒ 나라말
내 어릴 때 교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타조알 선생의 교실 풍경>을 읽으며 내내 생각했다. 낡은 마루에 양초 문질러 반들반들 윤이 나게 닦아대던 날들, 그 반들반들한 교실이며 복도를 운동장인 양 뛰어다니던 기억, 그러다 걸려 교실에 꿇어앉아 손들고 벌서던 생각, 암전하게 앉아 공부한 기억보다 청소하고 뛰놀고 벌 받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세월은 흘러 마루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바뀌고 난로와 선풍기 대신 냉온풍기가 설치된 교실이 많아지고 있다. 교무실 가는 게 그냥 어렵기만 했던 날들도 지나 선생님 책상 앞에서 할 말 다하고 웃을 거 다 웃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변해가고 있다. 의견이 다를 때는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따지는 아이들 보는 것도 이젠 낯설지 않다.

그래도 아직은 멀었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많다. 여전히 두발이 단속 대상인 학교도 많고, 합리적 사고보다는 획일적 사고를 강요받는 일도 많다. 입시의 경쟁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한눈팔 겨를도 없이 공부에 짓눌려 사는 것도 여전하다. 민주화도 인권도 교문 앞에서 우뚝 멈추어버렸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수능단상
수능단상 ⓒ 이성수
<타조알 선생의 교실 풍경>은 요즘 교실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국어 교사가 글이 아닌 만화로 그려낸 풍경이다. 독자의 눈길을 순식간에 사로잡을만한 빼어난 만화가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장점이 듬뿍 담겨있다. 한 평범한 교사가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갖가지 사연들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타조알 선생의 진솔함은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서 출발한다. 야외 수업 시간에 매점으로 사라진 녀석들, 수업시간이면 졸기만 하는 녀석들, 야자 시간에 도망간 녀석들, 휴대폰과 만화에 빠진 녀석들….

교사의 입장에서 눈에 거슬리는 녀석들은 많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의 힘든 삶을 이해하려 애쓴다.

학교는 모두가 다닌 곳이고, 다니는 곳이건만 그 누구 하나 학교가 좋단 말을 않는다. 요즘 들어서는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것이 학생들을 덮친다 하면서 학교는 살 곳이 못 되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학교에서 하루 열 몇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이들은 용케, 잘 산다. 용케 학교에서의 삶을 견뎌 낸다.

아마 그들에게도 삶을 견뎌 낼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마치 내게 낙서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낙서이고, 만화이고, 노래이고, 음악이고, 춤이고, 그림이고, 축구이고, 농구이고, 연극이고 시일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바뀐다.

수능단상
수능단상 ⓒ 이성수
졸음을 참다못해 책상에 엎드려 잠든 아이 얼굴에 떠오른 환한 미소, 시들어가는 화분을 교실 창가에 옮겨 볕을 쬐어준 지 며칠 뒤 햇빛 반짝이며 돋아나던 새순, 달밤에야 겨우 운동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 성적표 때문에 울던 덩치가 산만한 아이….

타조알 선생의 진솔함은 과거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참 몹쓸 짓을 많이도 했다. 섣부른 욕심에 쉽게 매를 댔고, 어줍지 않은 신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기보다는 내 머릿속의 이상으로 아이들을 닦달하기도 했다. 이런 교사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줬던 제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타조알 선생은 만화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교실의 풍경을 과장하지도 왜곡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그 희망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희망이 햇빛 반짝이는 새순이 되어 돋아나는 날들을 기대해본다.

타조알 선생의 교실 풍경 1 -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성수 지음, 휴머니스트(2015)


#타조알 선생의 교실 풍경#수능단상#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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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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