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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 3일째인 지난 22일 샘물교회 성도들이 피랍자 무사귀환을 바라는 주일예배뒤 교회를 나서고 있다.
아프간 피랍 3일째인 지난 22일 샘물교회 성도들이 피랍자 무사귀환을 바라는 주일예배뒤 교회를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국정부와 '직접 협상'을 갖자고 한 데 이어 '돈' 요구.

뭔가 읽혀지는 흐름이 있다. 탈레반 세력의 진짜 속셈이 조금씩 베일을 벗고 있는 것이다. 23명의 한국인 인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철군'에서 '수감자 석방'으로 바뀌더니 24일에는 '돈' 얘기가 추가됐다.

탈레반 측이 한국인 인질의 석방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이날 처음으로 돈 얘기가 나온 점을 정부 협상관계자들은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눈치다. 탈레반 측의 요구가 점점 '명분'에서 '실리'로 옮겨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 측의 '돈' 요구는 이날 일본 <교도통신>을 타고 전해졌다. 통신은 카불발 기사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측 협상단의 일원이 "탈레반 측이 한국 정부로 하여금 인질들과 직접 전화통화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10만 달러(약 9200만원)를 요구해왔다"고 전한 것으로 보도했다.

또 탈레반 측은 한국 정부대표단이 피랍 한국인들의 최근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기 원한다면 같은 액수의 돈을 더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 "돈 요구 전달된 바 없다" 또 부인

이같은 보도에 대해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앞서 외신을 타고 전해진 다른 요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쪽에 전달된 바 없다"고 부인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탈레반 측으로부터 어떠한 요구조건도 전달된 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인질 석방조건을 놓고 탈레반과 한국정부 사이에서 세계의 각종 미디어를 활용한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피랍 6일째, 정부가 납치단체와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힌 지 4일이 지났는데도 서로 '요구조건'을 주고받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구조건이 전달된 바 없다"는 외교통상부 당국자의 입장표명은 탈레반 측에 "변죽은 그만 울리고 빨리 진짜 요구조건을 꺼내보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탈레반 측은 이같은 심리전에 끌려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감자 석방' 카드를 상당히 이른 단계에서 꺼낸 데 이어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는 '돈' 요구가 이날 나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변화는 탈레반 측이 23명이나 되는 인질들을 장기간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과 결부돼 '초조감'의 발로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탈레반 측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아직 속단하기는 이른 감이 있다. <교도통신>이 전한 내용은 아직 석방조건으로 돈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탈레반 측이 '수감자 석방'에 어느 정도 집착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만약 '수감자 석방'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면 협상은 난항을 겪으면서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날 '돈' 얘기가 나온 것을 신호로 탈레반 측이 본격적으로 '흥정'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탈레반 일관된 지휘체계 갖고 있느냐가 또 하나의 변수

아프카니스탄 피랍자 가족 25명이 22일 밤 서울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 모여 침통한 표정으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아프카니스탄 피랍자 가족 25명이 22일 밤 서울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 모여 침통한 표정으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또 한가지 변수는 탈레반이 과연 얼마나 일관된 지휘체계를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탈레반 측의 행태를 보면 과연 전체를 통솔하는 리더십이 존재하는가 싶을 정도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의 말 자체도 일관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다른 탈레반 관계자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다른 요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24일 "여러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나 문제는 탈레반 측이 하나의 통일된 관점을 갖지 못한데다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결정권자가 없다는 데 있다"라는 아프간 현지 가즈니주 경찰책임자의 말을 전했다.

탈레반은 최근 들어 단일 지휘체계를 갖추지 못한 각종 '잡동사니' 반군세력의 집합체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 신문의 지적이다.

탈레반 측의 요구가 중구난방으로 제시되고 최종 순간에 의사결정이 순조롭지 못하다면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협상이 꼬이고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일산분란한 전략전술을 실행할 리더십이 없다면 탈레반 스스로 '수감자 석방'과 같은 높은 수준의 요구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 적당한 액수에서 인질석방과 타협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스런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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