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겉표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겉표지 ⓒ 생각과느낌
194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문장이 법률이 된다. 즉, "백인이라 함은 겉모양으로 백인임이 분명한 자이거나 일반적으로 백인이라고 인정되는 자이다. 그러나 겉모양으로는 분명히 백인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혼혈인이라고 인정되는 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법률에 따라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정책이 진행된다. 백인이 최정상에 서고, 그 다음으로는 유럽 인과 아프리카 인 사이에서 나온 혼혈인 '컬러드', 다음으로는 '인도인', 마지막으로는 '아프리카 흑인'이 가장 낮은 서열을 지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그것이 얼마나 혹독하게 시행됐는지 그것을 묘사한 소설들을 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소설집의 두 번째 이야기 '올가미'는 백인들이 사는 곳에서 쫓겨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다.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정권을 잡은 보어 인들이 요하네스버그에 백인만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살던 곳에서 떠나야 했다.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반항을 해보기도 전에 조직적으로 쫓겨나야 했다. 어리둥절하던 사이, 세상이 그들을 차별한 것이다.

세 번째 소설 '언젠가는, 릴리, 언젠가는'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른들의 어처구니없는 횡포로 어린 아이들의 사이가 갈라지는 과정을 묘사했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려온다. 서로 친구였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적으로 변해야 했던 이유는 뭘까? 아이는 '언젠가는'이라고 중얼거린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바로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말이다. 물론 쉽게 오지 않을 그때까지, 아이는 세상의 차별을 견뎌야만 한다.

초반부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는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중반으로 가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백인들을 향해 항거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기득권 세력을 향해 항거했었다. 1976년 6월, 탱크 앞에서 총격을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싸우기를 결심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총'은 그것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백인들에게 잘 보여야 했던 아이가 총을 들고 저항군이 되는 이야기는 그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중반부에 싸우는 것과 달리, 편견을 넘어서고 화해하려는 그들의 마음을 묘사한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 운동장'과 '장벽을 넘어'다. 차별이 없어진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갑작스럽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백인은 물론이거니와 흑인들도 그렇다. 매일 차별받던 터에, 하루아침에 다른 취급을 받기가 두려워진다.

'학교 운동장'은 그것을 넘어서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이는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로 간다. 당연히, 사방에서 멸시의 눈초리가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는 버틴다. 곤경에 빠지지만, 다른 백인 아이의 도움을 받아, 그 거대한 세력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는다. 용기를 내는 것이다.

'장벽을 넘어'는 백인 입장에서 차별하던 사람들과 화해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백인 아이는 부모님이 언제나 조심하라고 하던, 다른 피부를 지닌 아이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로 인해 부모님이 없을 때, 아이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아이를 돕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일 아닌 일 같지만, 당시만 해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백인은 흑인에게 보복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던 터였고, 흑인은 백인이 언제 또 공격할지 몰라 적개심을 키우던 때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것을 넘어서 도움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래서인가. 소설 제목처럼 '장벽을 넘어' 우정을 키우는 그 이야기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보복이 아닌 화해의 메시지를 간절히 전해주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는 '차별'이 존재하던 그 시대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것만 해도 값어치가 충분할 텐데 시간이 지나며 나타나는 흐름을 몇 개의 소설을 통해 보여줬고 또한 그들이 화해하는 과정까지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소설로서 보기 드문 구성을 취했는데, 이것이 큰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가슴 아프게 시작하지만, 끝내는 가슴을 파고드는 이야기로 막을 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지만 누구나 읽어도 좋은 책이다. 남아공의 갈등과 화해를 이렇게 생생하게 알려주는 소설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무지개 나라를 꿈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 흥미진진 세계 여러 나라 이야기

장용규 지음, 장효주 그림, 아이세움(2010)


#남아공#흑인#백인#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