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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의 모습은 마치 보석을 보는 듯했다. 방울토마토, 피망, 고추, 호박
비온 뒤의 모습은 마치 보석을 보는 듯했다. 방울토마토, 피망, 고추, 호박 ⓒ 정현순
"자 이거 먹어봐. 저녁에 당신이 따가지고 온 가지로 무친 거야. 싱싱하고 깊은 맛이 나네. 밥맛이 없더니 가지나물이 밥을 먹게 하는데."
"그럼 이 나물하고 고추장, 참기를 넣고 비벼 먹어봐."
"그래 볼까."

여름을 조금 타는 나는 이맘때가 되면 밥맛을 잃곤 한다. 남편은 2~3일에 한 번씩 퇴근길에 주말농장에서 못 생긴 호박, 등이 굽은 가지, 오이, 토마토 등을 따가지고 온다. 그중에 가지를 얼른 씻어서 나물로 무쳐서 저녁밥을 먹었다. 반 공기쯤 맛있게 먹고 나니 기운이 나는 듯했다. 그런 나도 처음에는 남편이 가지고 오는 농약을 치지 않은 채소를 먹지 못했었다.

오이, 파, 옥수수, 들깨(농약을 주지 않은 들깨 잎은 무슨이유인지 모르지만 모두 죽어 다시 심었다)
오이, 파, 옥수수, 들깨(농약을 주지 않은 들깨 잎은 무슨이유인지 모르지만 모두 죽어 다시 심었다) ⓒ 정현순

초록과 적당히 익어가는 토마토, 그중에 제일 잘익은 토마토를 실례를 하기도 했다
초록과 적당히 익어가는 토마토, 그중에 제일 잘익은 토마토를 실례를 하기도 했다 ⓒ 정현순

보라색꽃이 예쁜 가지가 주렁주렁
보라색꽃이 예쁜 가지가 주렁주렁 ⓒ 정현순

2년 전 주말농장을 시작하고 첫 수확으로 열무김치를 하라고 하면서 열무를 뽑아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른 보기에도 억세고 구멍은 숭숭 나 있어서 도저히 김치를 담가 먹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없는 시간 쪼개어서 농사를 짓는 남편 앞에서 "이거 못 먹겠다. 버려야 할 것 같은데"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생각 끝에 끓는 물에 데쳐서 된장국을 끓였다. 된장국을 끓였지만 먹기가 힘든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억센 열무로 끓인 된장국을 한 번 정도 먹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물었다. "이거 먹을 만해?" "그렇게 먹기 힘들면 버려" 한다.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버려야만 했다. 그때 상황에서는. 아무리 몸에 좋은 유기농, 무공해라 해도 입맛에 맞지 않으니 먹지 못할 수밖에.

그 후로 남편은 고추, 상추 등을 가끔씩 가지고 들어왔다. 그 많은 고추를, 자주 따오는 상추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새로운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웃하고 나누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풋고추를 날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거나, 상추, 치커리 등을 즐겨먹지 않는 나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을 안 먹어서 늘 몸이 무거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으면서 "야 이거 내가 농사지은 거라 그런지 정말 맛있다" 또 상추에 밥을 듬뿍 담아 먹음직스럽게 먹는다.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나도 고추를 하나 먹어봤다. 처음에는 풋고추의 맛을 잘 몰랐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먹다보니 어느새 나도 풋 고추를 즐겨먹게 되었고 상추쌈도 즐기게 되었다. 요즘은 밥상에 풋고추가 항상 올라가고있다.

흐린날에도 계속되는 벌의 활동
흐린날에도 계속되는 벌의 활동 ⓒ 정현순

그래서인가. 내 몸은 나도 모르게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특별한 병은 없었지만 항상 만성피로에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만성피로에 젖어 있으니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기도 하고 외출도 잘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먹으면서 조금씩 활기찬 모습으로 찾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내 변화에 난 남편의 주말농장이 보고 싶어졌다. 주말농장에 처음 가서 온통 진초록의 채소는 쳐다 보고만 있어도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주말농장에 가자고 해도 안 가던 내가 언제 갈 거냐고 먼저 준비하고 나설 지경이 되었다. 도시락 싸가지고 주말농장에 가서 그것들을 보고 수확하는 재미, 또 직접 따온 채소를 먹는 즐거움은 내 생활에서 빼놓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 가끔씩 마트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먹곤 했었다. 어쩌다 먹던 그 맛을 난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꾸준히 직접 지은 채소를 먹다보니 그 맛을 느끼게 된 것이다. 6개월 이상 꾸준히 먹고 나니 내 몸은 나도 모르는 사이 편안하게 변해 있었다.

인스턴트식품을 즐겨 먹진 않았지만, 육식을 즐겨 먹진 않았지만 내 몸은 어느새 많은 공해식품에 노출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풋고추 100g에는 비타민C가 사과보다 50배, 귤보다 2~3배가 많다고 한다. 그 외에도 단백질, 당질, 무기질, 칼슘 등이 골고루 있다고 한다. 상추에는 특히 칼슘과 비타민A가 많고 피를 맑게 해주는 정혈제로 좋다고 한다. 고추와 상추에 대해서 알고 나니 내 몸이 가벼워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등이굽은 오이
등이굽은 오이 ⓒ 정현순

그 외에도 고구마, 호박, 가지 등 남편이 농사 지은 농작물을 내 몸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작년에는 시기를 놓쳐서 주말농장을 하지 못했다. 그때 시중에서 파는 채소를 사 먹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하는 무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도 똑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하여 올해는 작은 땅이지만 남편은 주말농장을 다시 시작했다. 주말농장이라기보다는 작은 텃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같다. 어제(20일) 저녁 식탁의 식단은 잡곡밥에 오이지, 호박전, 가지무침, 풋고추, 물김치,멸치고추조림 등으로 이루어졌다.

딸 줄 못 생긴 채소들, 하지만 맛은 끝내주지
딸 줄 못 생긴 채소들, 하지만 맛은 끝내주지 ⓒ 정현순

그 덕에 요즘은 잠시 잊었던 밥상의 평화를 다시 찾게 된 것같다. 밥상에서 찾은 평화는 내 몸과 마음 모두에게 진정 평화를 주고 있다. 며칠 전 딸아이 집에 갔었다. 그때 딸아이가 "엄마 고추 집에 있어?" "있는데" "우진이 아빠가 고추 맛있다면서 하루에 5개씩 꼭꼭 먹어. 나도 먹어보니깐 정말 맛있더라" "알았다. 니네는 잘 안 먹는 줄 알았지. 다음에 가지고 올게" 입맛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지난 일요일 남편의 주말농장에서 토마토를 내가 직접 따먹었다. 토마토를 한 입 깨물었다. 물이 가득 고이고 살이 꽉 찬 밭에서 바로 따먹는 그 맛이라니!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남편은 풀을 뽑느라 바쁘기만 하다. 그런 남편에게 "고구마는 좀 더 있어야지?" "그럼 9월이나 돼야지" 한다.

2년 전 고구마밭에서 만난 지렁이들
2년 전 고구마밭에서 만난 지렁이들 ⓒ 정현순

2년 전 고구마밭에서 만났던 지렁이들이 생각난다. 남편은 "지렁이는 아무 곳에서나 있는 것이 아니야. 이렇게 농약을 치지 않는 좋은 땅에서 살 수 있어" 했다. 그 고구마를 동생과 손자놀이방 등 이웃과 나누어 먹던 일도 생각난다. 그들은 그런 고구마를 먹고 "야 고구마 진짜 맛있다" 했었다. 가을에 수확할 고구마의 맛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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