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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와 함께 깃발이 힘차게 오르며 고려군이 함성을 지르며 서서히 진군해 왔지만 거란군들의 응전태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앞서 거란군의 패전소식을 들었는지 뜻밖에 공격해 오는 고려군의 수가 적은 것을 보고 그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고려군도 앞서 싸움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가자!”

고려군의 측면에서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기병이 뛰쳐나갔다. 이것은 거란군은 물론 고려군으로서도 뜻밖의 일이었다.

“갑자기 기병부터 뛰쳐나가다니 저 년이 제정신인가?”

구귀가 도끼를 허공에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자 유도거가 조용히 읊조렸다.

“이랑이 저리 뛰쳐나가는 것은 장군의 계책일 것이오. 진군을 멈추라는 깃발이 올랐으니 우리는 여기서 일단 지켜나 봅시다.”

백여명의 고려 기병이 달려 나가며 거란군에게 화살을 날리며 어지럽히자 족히 그 다섯 배는 되는 거란의 기병이 방어진에서 이탈해 이를 쫓아 나갔다. 이랑은 이를 상대하지 않고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달려나기 시작했다. 독이 바짝 오른 거란 기병은 이를 뒤쫓아 달려갔다.

“쏴라!”

수풀 속에는 김달치가 이끄는 오백 명의 노궁수가 숨어있었다. 화살은 일제히 날아올라 거란기병의 측면을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던 고려군이 북과 징을 울리고 화살을 쏘아대며 거란군의 진영으로 밀고 들어갔다. 비록 고려군의 변화무쌍한 전술에 타격을 입긴 했지만 거란군도 지지 않고 창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요란하게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에 이어 처절한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야 이놈들아! 얼마든지 덤벼라!”

육박전에서 특히 사귀들의 활약은 고려군의 사기를 크게 올리고 있었다. 도끼가 한번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거란군은 이마가 쪼개지며 땅에 널브러져갔다. 유도거도 칼을 휘두르며 거란군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와아!”

잠시 동안 고려군과 팽팽히 맞서던 거란군은 후미부터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거란 기병을 전멸시킨 이랑의 고려기병과 김달치의 궁노병이 가세해 거란군의 뒤를 후려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거란군은 창칼을 내던진 채 살길을 찾아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고려군은 이를 그만 두지 않고 도망가는 거란군을 잡아다가 땅에 쓰러트린 후 창칼로 찍어 대었다.

“고려군이 왔다! 만세! 만만세”

거란군의 후미에서 묶인 채 꿇어 앉아 있던 고려 포로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번 싸움에서 고려군은 삼천 명의 거란군을 죽이고 천 여명의 포로를 구해내는 전과를 올렸다. 부장들은 즉시 양규 앞으로 달려가 엎드렸다.

“모두들 수고 했네. 아군의 피해 상황은 어떤가?”

“아룁니다. 소인 수하의 병사인 덕치가 창을 맞아 위급하며 다섯 명이 가벼운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룁니다. 병사 둘이 심하게 상처를 입었고 세 명이 가벼이 다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도거가 보고를 할 차례였지만 그는 엎드린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이상히 여긴 부장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그 순간 유도거의 가슴팍 엄심갑(掩心甲 : 가슴을 가리는 갑옷)에서 핏방울이 툭 하고 땅에 떨어졌다. 놀란 김달치와 이랑이 허리를 못 펴고 비틀거리는 유도거를 급히 부축했다.

“유부장을 그 자리에 눕히고 안정을 취하게 하라.”

양규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유도거의 안위도 살피지 않고 말을 던진 후 물러날 뿐이었다. 유도거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창을 좀 세게 맞았나봐.”

김달치가 유도거의 엄심갑과 윗옷을 벗기며 그를 타박했다.

“이 미련한 놈아. 어찌 창을 맞은 것도 모르누! 이 미련한 놈아!”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결전, #연재소설, #최항기, #흥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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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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