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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의 ‘장애인·노약자·임산부 보호석’ 표지판.
지하철 3호선의 ‘장애인·노약자·임산부 보호석’ 표지판. ⓒ 오마이뉴스 황승민
지하철마다 마련되어 있는 '장애인·노약자·임산부 보호석'이라는 이름의 좌석들. 두 여인의 다툼을 지켜보면서 과연 저 곳에는 누가 앉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자리가 비어 있었기에 앉았다는 젊은 여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비교적 판단 기준이 애매한 노약자의 경우, '○○세 이상만 앉으시오'라는 지시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다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보호석의 본래 취지는 역시 '보호'가 아니겠는가?

나이를 왈가왈부하며 '내가 몇 살 더 많으니 앉아야 한다'고 싸우는 두 여인을 지켜보던 나. '저기... 여기는 노약자 보호석이지 나이가 많다고 앉는 자리가 아니거든요?'라고 말하는 상상의 구름을 띄어본다.

지팡이를 쥐고 건너편 의자에 앉아 지켜보시던 할아버지께서는 두 여인의 싸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참 궁금했다.

보호석은 무조건 비워놓는 것이 미덕?

임신 경험이 없는 젊은 비장애인으로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장애인·노약자·임산부 보호석'이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고려했을 때, 그것이 필요한 사람이 없다면 그 자리를 무작정 비워두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을까? 앉을 곳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결코 보호석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으면서도 융통성 있는 처우가 아닐까 싶다.

지하철 이용인구가 많은 출퇴근시간, 졸음이 쏟아져 당장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을 때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비어 있는 장애인·노약자·임산부 보호석으로 가곤 한다. 당장이라도 저 자리에 앉아 잠을 청하고 싶지만 그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뿐 얼굴에 철판을 깔고 용기를 내어 보기엔 사람들의 시선이 걸린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역사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학기 다리에 깁스를 했던 내 친구 A는 계단을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쓰여 있는 '장애인·노약자용 엘리베이터' 사인은 할머니 할아버지나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들과 함께 타게 되었을 때 마치 자신이 잘못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고 한다.

지하철 역사에 설치되어 있는 '장애인·노약자용' 엘리베이터
지하철 역사에 설치되어 있는 '장애인·노약자용' 엘리베이터 ⓒ 오마이뉴스 황승민
사회적 약자의 '보호'라는 이름하에 만들어진 시설물들. 본래의 취지를 잃지 않으면서 좀 더 유연하게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노약자 보호석#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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