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여성신문
취약계층에게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고 안정된 일자리도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 투자자와 소비자 등 시장의 관심을 끌면서 새로운 대안 경영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이달부터 사회적 기업에 대해 인건비와 사회보험료 등을 폭넓게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되면서 기업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기존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확대해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거나 새로이 창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SK텔레콤(사장 김신배)은 오는 9월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센터'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간다. 지난해부터 운영해온 행복도시락센터는 밥을 굶는 아동과 거동이 불편한 재가노인들에게 무료로 도시락을 지원하는 SK텔레콤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 하루 평균 7500명에게 도시락을 제공하고, 조리사·배달원 등 450개의 일자리도 창출했다. 이들 일자리 인력의 94%(423명)가 여성이며, 50.5%(227명)는 여성가장이다.

교보생명(대표이사 신창재)은 이보다 앞서 2003년부터 '교보다솜이 케어서비스'를 통해 여성가장에게는 일자리를, 저소득층 환자들에게는 무료 간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6월 현재 7000여명의 환자가 서비스를 받았고, 총 238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오는 2010년까지 간병인 550명 규모의 간병서비스 전문 사회적 기업으로 육성할 예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저소득층과 고령자, 장애인, 성매매 피해여성 등에게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상적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업훈련과 일할 기회를 주는 대신에 이를 통해 기업 이미지 및 기업 가치를 높이고 실질적으로 투자유치, 주가상승 등의 경제적 이익까지 얻을 수 있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기관인 골드만삭스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윤리적인 기업으로 선정된 곳의 72%가 동종업계의 다른 기업보다 주가 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미 지난 2003년 삼성·SK텔레콤·현대기아자동차 등 26개 그룹 및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로 구성된 사회공헌실무위원회를 운영하며 공동대응에 나서고 있다.

고용 규모는 미미하지만 NGO단체를 중심으로 여성·청소년 등 특정 취약계층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실례로 한국YMCA 전국연맹은 지난달 28일 서울 북아현동에 부모의 사업실패 등으로 거주할 곳이 없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직업훈련과 일할 공간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형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카페 티모르'를 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대전여성민우회 등도 여성친화적인 사회적 기업모델을 적극 발굴해나갈 계획이다.

조영복 사회적기업연구원 원장(부산대 교수)은 "사회적 기업은 사회서비스 향상과 고용창출이라는 '복지'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사회제도"라며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경영적 과제를 잘 해결해간다면 '착한기업'의 성공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사회적 기업' 성공전략은 경영 전문성·수익모델 다양화
사회적 가치 높지만 소득은 '제로'…아직은 참여 미미


"지난해에 도시락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비웃더라고요. 위생 사고라도 나면 단칼에 무너진다, 그냥 돈을 주고 말지 왜 그런 걸 운영하느냐, 계속하면 발목 잡힌다 등등 말도 많았어요. 하지만 1년6개월이 지난 요즘에는 오히려 그들이 벤치마킹하려고 찾아와요. 우리가 만든 도시락 사업이 기업의 새로운 사회공헌 모델이자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 모델로 자리 잡히고 있는 거죠."

SK텔레콤 사회공헌팀에서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센터' 사업을 맡고 있는 서진섭 매니저의 말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 2년도 채 안된 지금 하루 평균 7500명에게 도시락을 무료로 지원하고, 취약계층 45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오는 9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되면 일자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행복도시락센터의 성공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철저한 위생시스템 및 체계적인 급식 배달시스템 구축 ▲영양사·조리사·배달원 등 종사자에 대한 전문교육 실시 ▲이 두 가지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 등이다.

최근에는 지원 없이도 자립이 가능하도록 센터장에게 '사회적 기업가 아카데미' 등 경영교육을 지원하고, 출장뷔페·식당 운영 등 수익모델을 개발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행복도시락센터가 사회적 일자리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모범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장으로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기업 후원을 받는 몇몇 곳을 제외하면 정부 지원금이 끊기는 날이 문을 닫는 날인 사업장이 수두룩하다. 사회적 일자리 자체가 공공근로의 성격이 강해 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대부분 비영리를 추구하는 NGO단체가 운영하다보니 경영 역량이나 자본이 열악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에 경영·기술·세무·노무·회계 등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적 기업에 기부하는 활동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가 출범하고, 낮은 금리로 경영자금을 대출해주는 휴먼예금관리재단이나 사회투자재단 등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책 <한국의 사회적 기업> 저자인 정선희 기부정보가이드 대표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대부분이 서비스의 사회적 가치는 높지만 수익성은 낮다"며 "인건비 위주의 지원보다는 사회적 기업의 목적에 맞는 경영전략과 마케팅 기법 등을 정책적으로 개발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업극복국민재단 사회적기업지원팀 김태인 대리도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을 적극 양성하는 등 물적·인적 인프라를 늘리는 방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사회적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영역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부터 경력단절 여성으로 구성된 '역사문화체험사업단'과 고령 여성 위주의 '원예관리사업단'을 운영 중인 사단법인 여성이 만드는 일과 미래(여성미래)는 최근 사회적 기업으로의 법적 전환을 포기했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르면 취약계층에게 서비스의 절반을 무상제공하거나 고용인원의 절반이 취약계층이어야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의 절반을 내어주면 자립이 불가능하고, 취약계층을 고용하자니 애초에 의도했던 경력단절 여성의 고용이 유명무실해진다. 고령 여성은 요건이 되지만 기업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수익모델이 현재로선 없는 상태다.

김인선 여성미래 대표는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업 취약계층인 경력단절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라며 "협소한 범위에서 벗어나 외국처럼 사회적 기업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이뤄질 때 한국에서도 성공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기업 모델 제시하는 10대 자활공간 '카페 티모르'
'강제귀가' 조치 보다 경제·사회적 '자립' 필요

▲ 왼쪽부터 최은영, 위은영, 조혜민.
ⓒ여성신문
"아무런 꿈도 없이 친구들과 모여 살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제 모습이 참 좋아요. 어떻게 하면 손님에게 더 맛있는 커피를 제공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갈 곳 없는 10대들이 음악을 들으며 만화책도 보고 차도 마실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도 생겼거든요."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위은영(20)양은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 일주일에 6일, 하루 12시간씩 커피전문점에서 일을 하고 있어 몸은 피곤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일터가 마련됐고 꿈도 생겼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불화로 집을 나와 거리를 방황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그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골목 한편에 있는 '카페 티모르 1호점'을 또래인 최은영(18), 조혜민(19)양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문을 연 '카페 티모르'는 한국YMCA전국연맹(사무총장 이학영)이 SK텔레콤과 KT, 스포츠토토의 후원을 받아 설립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다. 가정해체와 빈곤 등 사각지대에 있는 10대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형 자활공간으로, 동티모르에서 수입한 커피를 팔아 공정무역에 일조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카페 티모르는 이들 3인의 명의로 되어 있다. 카페의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대신 이익금의 일부로 40만원의 월세와 보증금 1000만원을 갚아 나가야 한다. 거리의 아이들을 무조건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단발적인 일자리 교육을 제공했던 기존의 청소년 자활 프로그램에 비해 보다 현실적인 도움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멘토 언니가 큰 힘이 되어줬어요. 끝까지 저를 믿어줬거든요."

최은영양은 YMCA에서 진행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대화 스킬을 비롯한 사회적응 기술도 배웠다고 말한다. 세상에 적응하기까지 엄마이며 언니이자 친구 같은 존재로 힘이 되어준 것. 그래서인지 이들의 꿈 역시 "최고의 바리스타가 되는 것임과 동시에 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이끌어주는 또 한명의 멘토가 되는 것"이다.

이혜정 YMCA 간사는 "거리에서 방황하는 10대 청소년의 60% 이상이 가정해체 등으로 돌아갈 곳이 없다"며 "그들이 생존이라는 기본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경제적·사회적 자립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은 청소년들이 자립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과 기업들의 후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벨기에·프랑스 사회적 기업에 배운다
"삶과 복지 '리모델링' 해드립니다"

▲ 벨기에의 사회적 기업인 ‘크레아솔’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의류.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은 일반적으로 '취약계층에게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우리보다 앞서 사회적 기업이 도입된 유럽도 별반 다르지 않다.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수준을 넘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최대 1년6개월 동안 '유급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가정폭력 피해여성에게는 이혼 절차, 주거 독립, 통장 관리법까지 지원하는 등 삶 자체를 '리모델링'해준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은 지난 6일 덕성여대에서 '유럽의 사회적 경제현장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여성 풀뿌리운동가 6명이 지난 5월19일부터 6월4일까지 15일간 보고 듣고 느낀 벨기에와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 현장 견학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곳은 벨기에의 사회적 기업인 '크레아솔(Creasol)'이다.

일을 해본 경험이 없거나 빚이 있거나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만을 고용 대상으로 하고, 9개월에서 최대 18개월 동안 봉제·서빙(레스토랑)·청소·집수리 등의 직무능력을 가르친다. 고용 대상 범위가 '취업이 절실히 필요한 여성'으로 비교적 넓고, 직업훈련 기간도 우리의 6개월보다 3배가량 길다.

이뿐 아니라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 직장생활에 필요한 대인관계 능력도 훈련시킨다. 안정적인 주거공간 확보와 재정관리 방법, 가족계획과 출산, 자녀보육과 교육방법 등도 지원프로그램 중 하나다. 크레아솔은 이를 위해 3명의 사회복지사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날 대표로 발표를 맡은 민양운 대전여성민우회 정책기획국장은 "인생 실패의 경험으로 자신감을 잃은 여성들을 위해 직무능력은 물론 제2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개인별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었다"면서 "유럽에서 사회적 기업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삶과 복지를 재설계해주는 대안정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등하교 안전지도나 건물청소, 꽃심기 등 공공근로를 이주민과 빈민지역 주민에게 일자리로 제공해 사회통합을 유도하는 프랑스 마콩시의 '지역관리기업'과 버려진 옷을 수선해 되팔고 재활용 종이를 가공해 외국으로 수출까지 하는 벨기에의 재활용 사회적 기업 '테흐(Terre)'의 사례도 소개됐다.

이구경숙 여성연합 지역여성운동센터 국장은 "유럽의 경험을 발판삼아 올 하반기 동안 지역과 연계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기업 모델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댓글

(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