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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의 부대는 흥화진으로 개선해 짧은 휴식을 가졌다. 흥화진에 남아 있던 네 명의 부장들도 마냥 쉬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흥화진 인근에 있던 거란의 소부대를 깡그리 쓸어버린 전과를 양규에게 보고했다.

네 명의 부장은 각기 오귀, 작귀, 하귀, 구귀 라고 불렸는데 뭉텅 그려 사귀라고 병사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그들은 모두들 자루 긴 도끼를 잘 썼으며 힘이 장사였다.

“수고들 했네. 그리고 새로운 부장을 소개하지. 랑이는 이리로 오거라.”

이랑이 앞으로 나서자 사귀중 오귀의 눈이 번쩍였다.

“이랑이라고 합니다.”

“혹시 화진에서 날 본적이 없소?”

오귀의 질문에 이랑은 자연스럽게 답했다.

“처음 뵙습니다.”

오귀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양규는 곽주성에서 가지고 온 양식을 풀어 병사들을 배불리 먹인 후 부장들을 불러 모아 거란군을 공격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적이 곽주와 통주를 지나면 일제히 봉화가 오를 것이네. 하지만 그 많은 대군이 일거에 뭉쳐서 강동 6주를 통과할 수 없을 것이야. 특히 포로들은 도망가는 이들을 되잡을 수 있도록 앞에 두고 압송해 가는 것이 보통이니 거란군의 선두를 쳐서 포로들을 구해낸다면 능히 해볼만 하네.”

부장들은 그 말에 수긍했지만 이랑이 이에 주의를 주었다.

“몇 번은 그렇게 싸워 이길 수 있으나 곧바로 흥화진으로 철군해야 합니다.”

“그건 왜 그런가?”

양규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지만 짐짓 이랑에게 되물었다.

“거란군은 기병이 대다수 입니다. 앞서 간 부대가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빠르게 대군을 동원해 앞뒤로 포위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 되면…….”

“맞는 말이긴 하나 거란놈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방심할 터이니 그 허를 찌르면서 계속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네만.”

유도거가 이랑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자 이랑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양규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진에서도 병사를 내어 거란군을 괴롭히겠지만 이랑의 말대로 거란의 기병에 포위당할 것이 염려되어 지속적으로 출병하기는 어려울 걸세. 허나 우리는 다르네. 끝까지 싸워 통주에서 당한 참패의 수모를 되갚아 주어야 하네.”

양규의 말에 다시 이랑이 입을 열었다.

“적은 군사로 끝까지 싸우기 보다는 포로를 구출한 다음에 몸을 사렸다가 거란군의 뒤를 급습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거란군도 다시 군사를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거 장군님 말씀에 왜 그리 토를 계속 다는겐가? 자네가 지휘라도 할텐가?”

사귀 중 작귀가 눈을 부릅뜨고 이랑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랑은 그게 기죽지 않고 맞섰다.

“그 무슨 소리요. 난 장군에게 진언을 하는 것이외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도 없는 계집년이 갑자기 부장자리 꿰어 찼다고 뵈는 것도 없는 게로군!”

이번에는 하귀가 거친 말을 내뱉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김달치가 벌떡 일어섰다.

“네 이놈! 말이 심하지 않느냐!”

“뭐 이놈? 허… 요 녀석 봐라.”

하귀도 벌떡 일어서 당장 김달치에게 달려가려는 찰나 양규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리에 앉지 못할까!”

그 목소리에 기가 눌린 하귀는 단번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고 김달치 역시 오금이 저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이었지만 양규의 모습은 야차(夜叉)와도 같았다.

“앞으로 장수 간에 서로 멸시하고 조롱하는 말을 내뱉는 자는 내가 직접 목을 벨 터이네! 이랑의 말이 틀린 게 없으니 내 긴히 참고할 것인즉 병사들의 상태를 잘 점검해 어느 때라도 출병할 수 있도록 하게나!”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결전, #연재소설, #최항기, #흥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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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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