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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대량해고를 계기로 비정규직 사태가 우리 사회 큰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1일 비정규직 법 시행을 전후로 기업과 노동자들의 갈등이 더 커지면서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해법도 입장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말 대안은 없는지 등을 3차례에 걸쳐 고민해 봅니다. <편집자주>
현대증권 영등포지점의 모습.
현대증권 영등포지점의 모습. ⓒ 오마이뉴스 선대식

"오고 싶었던 부서에서 일하게 돼서 너무 행복하죠."

지난 9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현대증권 업무개발부에서 만난 강희경(39·여)씨. 그의 얼굴은 매우 환했다. 그는 "신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보였다. 실제로 강씨는 지난해 업무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며 "앞으로 승진해서 꿈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강씨는 한때 업무평가를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왜냐면 비정규직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99년에 입사한 후 그는 줄곧 고객센터에서 온라인 상담을 맡아왔다.

강씨는 "2001년에 회사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 심각한 고용불안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어 "고객 만족도 순위에서 1위를 했던 동료가 계약만료 후 회사에 안 나오는 걸 보고 마음이 심난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2002년 12월 정규직으로 바뀌었다. 당시 현대증권 노사는 비정규직 대부분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전격 합의했다. 강씨는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면서 "비정규직이었을 때의 동료들을 만나면 '열심히 해서 승진하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전체 사원 2300명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고 비정규직이 거의 없는 현대증권. 비정규직 법이 시행되기 5년전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룬 현대증권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있는 걸까.

비정규직, 1년 6개월 후엔 모두 정규직으로

김시종 현대증권 영등포지점 영업팀 과장은 올해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김시종 현대증권 영등포지점 영업팀 과장은 올해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현대증권도 비정규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매년 50명 정도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뽑는다. 이들 모두는 창구나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자진퇴사하거나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1년 6개월 후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노동자들의 고용 환경은 여느 비정규직과 다르다. 지난 2005년 11월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올해 5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김숙현(25)씨는 "(1년 6개월 동안) 고용불안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노조 위원장이기도 한 민경윤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 위원장은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 신입사원 뿐 아니라 경력직 사원에게도 해당된다"고 밝혔다. 증권업계에서 경력직 사원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입사한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등락을 예측할 수 없는 증시로 인해 신속히 구조조정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증권에서는 6개월 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지난해 8월 경력직으로 입사한 김시종 현대증권 영등포지점 영업팀 과장은 올해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한국투자증권에서 3년간 비정규직으로 있다가 이곳으로 옮긴 김 과장은 "이곳에 왔을 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사실 금융분야에서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해주는 곳은 다른 곳도 많다. 특히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 '분리직군제'를 도입해 3100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해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분리직군제'는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비정규직 해법의 실질적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차별의 고착화'라는 의견도 많았다. '분리직군제'는 정년 보장을 제외하면 임금, 승진 기회, 복리후생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증권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전환 노동자를 가르는 기준은 직급뿐이다. 직급에 따라 임금의 차이는 있지만 이 또한 승진을 통해 해소될 수 있는 구조다. 김씨는 "계약직으로 입사해 보통 3~4년이 지나면 정규직 신입사원과 같은 직급으로 승진 된다"고 말했다. 또한 "승진하는 데 비정규직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정규직화의 해법, 승진 기회와 임금격차 해소

그렇다고 현대증권의 이 같은 정규직화가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지난 2001년 현대증권 노조쪽에선 비정규직 직원들의 고용불안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당시만 해도 매각설이 흘러나오는 등 회사 경영상황도 좋지 못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해 온 노조 입장에 회사쪽은 당연히 부정적이었다. 인건비 상승에 대한 비용부담이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당시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도 없었다. 하지만 이 회사 노사는 2002년 12월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전격 합의했다.

이들이 찾은 해법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비정규직에게 승진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어 비교적 연봉이 높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영업쪽 업무에 전진 배치했다. 물론 이들 업무는 그동안 정규직 직원들이 해왔었다.

현대증권 인사팀 관계자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창구업무를 많이 한 직원들은 영업에서도 큰 실수가 없었고, 오히려 뛰어난 사람도 많았다"고 밝혔다.

정규직 전환으로 가는 길은 한 고비가 더 남아있었다. 임금 차이였다. 정규직으로 입사한 직원과 정규직으로 전환한 직원과의 임금 차이가 줄지 않는다면 '무늬만 정규직'이 양산되기 때문이다. 노사는 2005년 11월 임단협에서 직급이 낮은 순서대로 임금을 크게 올리기로 합의했다.

민 위원장은 "과장은 3.5%, 대리는 4.8% 상승한 데 반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의 경우 임금이 16.9% 상승했다"고 말했다. 당시 직원 평균 임금상승률은 4.8%였다. 민 위원장은 "완벽하게 차이가 해소 된 것은 아니지만 기존 정규직의 양보로 성과로 거둔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불안 해소에 따른 서비스 질 향상, 기업 경영에 큰 보탬

김숙현씨는 "계약직으로 지원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면서도 "정규직 대졸 신입 사원과 계약직 창구 직원간의 학력 차이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숙현씨는 "계약직으로 지원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면서도 "정규직 대졸 신입 사원과 계약직 창구 직원간의 학력 차이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회사 경영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현재 현대증권은 증권업계 선두권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6월 발표한 '2006 회계연도 증권회사 영업실적'에 따르면 현대증권의 2006회계연도 당기순이익은 1145억원으로 전체 증권사 54곳 중 7번째로 많았다.

노사 모두 '정규직화'가 회사에 큰 보탬이 됐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대증권 인사팀 관계자는 "회사가 좋아지는 데 보탬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민 위원장 역시 "비용부담이 예상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면서 "비정규직 직원들이 고용불안에 떨지 않아 전체적으로 서비스의 질이 향상됐다"고 덧붙였다.

물론 현대증권의 비정규직 대책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계약직 창구 직원의 경우 최소 3~4년은 되어야 정규직 신입사원과 같은 직급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인사팀 관계자는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아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현대증권의 사례는 노동계에서도 기업의 비정규직 대책 중에서 우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선곤 민주노총 노사대책위원장은 "비정규직 대책이 가장 나은 곳은 현대증권이다"고 말했다.

노사간의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와 희생으로 선 현대증권 사례가 비정규직 해법의 모델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홈에버#이랜드#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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