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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어머니가 새벽같이 내려놓고 가신 맨드라미 예닐곱 포기
친구 어머니가 새벽같이 내려놓고 가신 맨드라미 예닐곱 포기 ⓒ 산채원 촌장

어제 전주 처제 결혼식에 다녀온 뒤 동네 친구 어머니께 전 부쳐 먹는 토종 맨드라미가 없느냐고 여쭈었다. 있다고 하신다. 한두 포기는 줄 수 있다고 했다. 올 가을 씨를 받을 생각으로 딱 한 포기만 달라고 했다.

안도의 숨을 쉬었다. 불과 몇 십 년 전엔 남부지방 집집마다엔 살림집 치고 가죽나무 한두 그루와 초피나무 한 그루, 맨드라미는 기본이었다. 그 흔하던 작물이 이렇게 귀해지니 내가 안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몇 차례 수소문 끝에 얻은 희소식이었다.

친구네는 추석 때 해마다 예전 그 맨드라미로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년 11월 귀향 했을 때 분명히 큰댁에 있던 걸 보았던 터였다. 봄에 싹이 텄을 때 몇 개만 뽑아오면 양을 늘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달포나 지났을까, 막상 큰집 마당에 가보았다. 옆집사람들은 빈집 마당을 일곱 집이나 제 텃밭으로 만든 양심불량자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콩을 심는다며 제초제를 마구 뿌린 통에 한 개도 남지 않고 죄다 말라 비틀어 죽어 있다. 화가 치밀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두 달만에 승호네에 그게 아직 남아 있단 말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 5시쯤 일어나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자요?"
"아뇨, 아짐 저 화장실에 있어라우. 아침 일찍 웬일이세요?"
"어저께 말한 맨드라미 갖고 왔는디..."
"저, 못 나간께 거기다 두싰쇼. 고맙구만이라우."
"알았어라우. 여러 개인께 땅에다도 심고 화분에 몇 개 심어 놓더라고. 글고 밖에 화분이 여러 개 있더구만. 두 개만 주싯쇼."
"예, 가져가셔요. 살펴 가시구요. 감사합니다."

꽃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상용 꽃 맨드라미
꽃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상용 꽃 맨드라미 ⓒ 산채원 촌장
붉다 못해 선혈이 곧 터져 나올 듯한 찬란한 수탉 벼슬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자주색 꽃맨드라미는 그냥 보는 걸로 족하다. 내가 오늘 아침에 구한 잎이 얼룩덜룩한 식용 맨드라미는 이제 우리들 어머니, 할머니들에게도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마당에 시멘트를 깔아서 없어지고, 풀 매기 힘드니까 제초제를 뿌린 통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또 하나의 나물 종자를 얻었으니 이 아니 기쁠쏘냐. 한 뿌리도 좋고 열 뿌리도 좋다. 종자 한 알이어도 좋다. 수 백 수 천 년 약초로 나물로 먹어왔던 소중한 자산을 하나 더 추가한 아침이 무척이나 즐겁다. 이렇게 늘려가다 보면 곧 200가지에 도달하리라.

벌써 쌀쌀한 가을이 기다려지는 건 마당에 숯불 피우고 솥뚜껑 뒤집어 걸어서 돼지기름 둘러 화전(花煎) 부쳐 먹는 그 시절이 그립기 때문이다. 하여 난 행복한 하루를 맞았다. 흐릿한 여름날 아침 밭으로 나가봐야겠다.

무럭무럭 자라면 잎을 따서 화전을 부치리라. 봄엔 진달래 가을엔 맨드라미 화전이 좋더라,
무럭무럭 자라면 잎을 따서 화전을 부치리라. 봄엔 진달래 가을엔 맨드라미 화전이 좋더라, ⓒ 산채원 촌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 뉴스큐와 산채원 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규환 기자는 작년 11월 7년 여 동안 준비한 귀향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전남 화순군 북면 백아산 자락으로 귀농해 2만 여 평에 200여 가지 산나물 농사를 짓고 있다. 산채원(山菜園) 영농조합법인 결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맨드라미#화전#산나물#산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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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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