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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날씨가 더워지면서 한의사의 말대로 하루하루가 힘이 듭니다. 한의사의 말씀인 즉은 소양인은 여름에 암세포가 자란다네요. 그리고 겨울엔 성장이 더디거나 치료 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폐로 전이된 저의 암세포도 컸다 줄었다 하며 제 맘을 흐렸다 밝혔다 합니다.

요즘은 서울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일주일에 세 번 기공 운동을 하러 다닙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얼굴이 붓고 가슴이 조여 숨쉬기가 불편합니다. 이런 와중에 2주전부터 생긴 목의 염증이 항생제 치료로도 잘 낫질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성대 한 쪽이 마비되어 말하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한 동네에 가까이 살고 있는 사촌 시누이는 내가 이 정도 인지 잘 모르고 며칠 전부터 보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사실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며칠 만 있으면 이사를 가니까요. 하지만 몸 때문에 차일피일 하는 중이었지요.

내게는 참 특별한 시누이입니다. 시누이에게 신세를 아주 많이 졌어요. 5년 전 내가 수술 하는 날부터 시누이는 늘 내 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시누이의 신세를 지는 것이 편치 않았습니다. 시누이의 도움을 받을 때마다 내가 중환자라는 사실을 거듭거듭 확인받는 기분이었거든요.

내 속내가 어쨌거나 시누이는 힘내라고 비싼 회도 자주 사주고 바람 쐬러 가자며 3박 4일 남해안을 돌기도 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함께 여행을 하면서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들과 힘들었던 결혼 생활을 이야기 하며 씁쓸한 웃음을 웃곤 했지요.

하지만 나는 시누이만큼 솔직하지 못했어요. 늘 마음에 부담이 있었거든요. 불편한 마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까 좋은 곳에 있어도, 비싼 음식을 먹어도 별로 즐겁질 않았습니다.
더구나 예쁘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시누이에 대한 시샘도 있었죠.

지난 5월, 석가탄신일 연휴에 시누이 내외랑 우리 부부가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지난해부터 가자고 했고 호의도 고맙고 해서 시누이네 땅도 구경할 겸 겸사겸사 나들이를 했습니다.

시누이는 내 건강을 생각해서 자연 휴양림에 숙소를 잡아두었습니다. 3박 4일을 시누이와 한 방에 살며 나는 비로소 시누이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언니, 가만있어. 내가 다 할게."

시누이는 하루 종일 운전을 하며 지친 몸으로 돌아 와서도 혼자 부엌일을 다 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도 나는 도움이 못되는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운 얼굴과 화사한 옷에 가려 보지 못했던 시누이의 손을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죠.

"언니, 내 손 머슴 손 같지?"

시누이의 손을 보는 순간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한결 같았던 시누이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내 곁에 참 사람이 있음에 훈훈하고 든든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몸이 괜찮으면 오늘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한의원에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남편이 불쑥 말을 꺼냈습니다. 낮에 시누이 전화를 받았다며 저녁을 먹고 들어가잡니다. 많이 피곤했지만 우리는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언니, 우리 아들이 철 났나봐. 장학금에 기숙사비까지 받아 왔네. 얼마나 기분이 좋던 지 오늘 양복 한 벌 사 입혔어. 그리구 말이유~ 내친 김에 통장 보여주면서 살~ 살 꼬셨지~. 너 4년 간 장학금 받아 오면 장학금은 너 다 주고 엄마가 집 한 채 사 주마했지."

시누이 남편이 시누이를 보며 혀를 끌끌 차건 말건 시누이는 마냥 행복합니다. 고등학교 3년 군대 2년 동안 시누이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아들이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잠자리에 누워서도 환하게 웃던 시누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나도 덩달아 가슴이 싸하며 행복해집니다. '아~ 좋다. 참~ 좋다. 그래. 이거야. 너와 내가 하나 되는 삶. 이게 진짜야. 사촌이 땅을 사면 같이 축하해 줄 수 있는 마음. 정말 이런 마음으로 살고 싶었어.'

마음의 문이 열려가는 체험, 하루를 살아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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