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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씨
김성수씨 ⓒ 강일두
오늘 아침은 벤치를 손질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의암호 쪽에 위치한 벤치의 옆 부분에 잔가시들이 튀어나와 있어 계속 신경이 쓰이던 터였다.

"사람들이 앉으면 분명 찔릴 겁니다."

성수씨는 튀어나온 나무 부분을 톱질한 후 사포로 정성껏 문지른다. 그렇게 하기를 10여분, 어느덧 표면은 매끄럽게 단장됐다. 하지만, 정작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섬에 있는 벤치의 수는 모두 50여개. 일일이 손질하고 나니 결국 한나절이 후딱 가버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벤치가 썩은 나무를 이용해 탄생한 작품이라는 점.

"섬에 있는 어떤 것들도 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었죠."

아버지 김덕김씨가 춘천시 서면에 위치한 고슴도치 섬을 매입한 것은 지난 1970년. 당시만 해도 강원도의 유명 관광지는 단연 설악산이었다. 오랫동안 서울에서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는 출장차 춘천에 내려왔다가 우연히 고슴도치 섬을 발견했다. 그리곤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해 10억이란 거금을 들여 섬을 매입했다. 의암댐 건설로 의암호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섬. 불모지나 다름없던 섬을 매입한 아버지의 행적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후, 여름휴가의 행선지는 자연스레 위도가 됐다. 부모님을 비롯, 성수씨를 포함한 7남매는 그렇게 매년 섬으로 향했다.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갈로를 비롯한 야외수영장 그리고 넓게 형성된 잔디밭은 어린 성수에겐 가장 좋은 놀이터였다.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탈 때마다 어린 성수는 신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나만의 놀이터. "섬이 우리집이었으면 좋겠어"라고 중얼거렸다. 평생을 짊어지고 갈 짐이 될 줄은 까맣게 모른 채.

26살, 14만평 고슴도치섬 주인 됐지만...

섬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방학을 맞으면 언제나 섬으로 내려왔다. 아버지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섬 일을 도왔다. 제초작업은 물론, 산책로에 말뚝을 박는 일까지. 하지만, 아르바이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행이 닥쳤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간경화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28일만에 숨을 거뒀다. 너무나 급작스런 사망. 유언조차 없었다. "멋진 관광지로 만들고 싶구나"라며 되뇌던 아버지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주인 없는 섬은 관리인이 도맡기로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성수씨는 졸업 후 무역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관리인의 손에 맡겨진 고슴도치 섬은 서서히 아름다움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무성한 잔디가 숲을 이뤘고 나무들은 하나 둘씩 습기에 차 썩어 들어갔다. 마치 개발을 처음 시작할 당시의 불모지로 변모하는 듯했다. 결국, 사회 초년병인 성수씨가 6남매를 대신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로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춘천으로 내려온 것이다.

섬 주인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26살. 긍정적이고 당찬 성격의 성수씨였지만 아무런 경험 없이 젊은 나이에 14만평의 섬을 지켜나가는 일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타지인을 꺼려하는 지역 특유의 배타심 때문에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다. 젊은 나이에 사장 노릇을 하는 것도 주변인들을 거슬렸다. 그럴 때마다 성수씨는 특유의 털털한 성격으로 하나 둘씩 난관을 헤쳐 나갔다. 쓰레기 줍기, 제초작업 등 모든 일에 팔 걷고 나서면서 직원들과 동고동락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97년 여름, 순식간에 물에 잠겨버린 섬

다리 위에서 바라본 고슴도치섬
다리 위에서 바라본 고슴도치섬 ⓒ 강일두
의암호가 생기면서 고슴도치 섬과 함께 생겨난 중도 섬이 문제였다. 80년대 후반 들어 유원지로 본격 개발되면서 고슴도치 섬은 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그리곤 마(魔)의 97년 여름이 왔다. 3개월 내내 주말에만 비가 왔다. 섬으로 놀러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발 내리지 말아줘. 제발."

하느님은 끝내 성수씨의 기도를 저버렸다. 억수처럼 비 내리던 8월 1일, 결국 일이 터졌다. 불어나는 저수 용량을 감당하다 못해 춘천댐이 수문을 연 것이다. 댐에서 세차게 흘러나온 물은 순식간에 섬을 집어 삼켰다. 최악의 순간이었다.

방갈로 사무실 수영장은 물론 섬의 가장 높은 곳에까지 물줄기가 들이닥쳤다. 춘천댐 수문이 다시 닫힌 것은 그로부터 10여분 뒤. 하지만, 섬은 이미 예전의 고슴도치 섬이 아니었다. 방갈로를 포함한 섬 전체가 진흙투성이로 변해버렸다. 물이 빠져나가면서 도로가 유실되기도 했다. 물비린내만이 진동하는 섬.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었다. 물에 쓸려 망가진 벤치에 홀로 앉아 마지막 담배를 피며 마음 속으로 울부짖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

대학 시절, 중국어를 공부했던 전공을 살려 중국에서 철강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성수씨는 더욱더 어두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매일매일 떠오르는 섬 생각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유언도 없이 홀연히 떠난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기고 간 섬. 어쩌면 '섬'이 아버지의 소리 없는 유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밤을 울고 또 울었다. "아! 섬 없이는 살 수 없어." 결국 다시 돌아왔다.

1년만에 다시 찾은 섬.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돈 되는 사업으로만 여기며 주판알을 굴렸던 마음부터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래, 중요한 것은 애정이야. 그리고 그 애정으로 풀 냄새 가득한, 자연 본연의 고슴도치 섬을 만드는 거야."

중국에서의 방황 끝내고, 다시 섬을 찾다

고슴도치섬
고슴도치섬 ⓒ 강일두
성수씨가 다시 섬을 찾았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이충은(46)씨였다. 성수씨가 1년이란 시간 동안 중국에서 방황하는 사이, 최선을 다해 섬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후, 성수씨와 아내 그리고 새로 구성된 20명의 직원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섬을 가꿔나가기 시작했다. 밤샘 작업에 휴일도 반납하고 오로지 '섬' 하나만을 생각하며 일하고 또 일했다. 그러자, 섬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아담한 산책로와 넓은 잔디밭, 우거진 숲으로 관광객들을 서서히 불러 모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입소문으로 단골손님까지 생기기 시작하던 무렵, 섬 위를 지나는 다리가 들어섰다. 당시, 고슴도치 섬은 춘천시와 서면의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춘천시가 고슴도치 섬에 교각을 세우면서 의암호를 지나는 다리를 건설한 것이었다.

"다리 한 가운데에서 빠져나와 다리 밑에 위치한 고슴도치 섬으로 연결하는 도로를 만드는 거야."

이전에는 주변 선착장에서 일일이 배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던 터였다.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섬은 사유지지만, 도로는 공공 시설물이다보니 둘 사이를 연결하는데 행정상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다리를 만들면 접근성이 좋아져 춘천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얼마나 달라붙어 설명했는지, '인간 진드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결국, "진짜 독하다"며 성수씨의 집념에 모두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리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다리가 놓였다. 그날 밤, 성수씨는 참 많이도 울었다. 기뻐서, 마냥 행복해서... 2000년의 일이었다.

다리가 놓이자 섬을 찾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연이어 겹경사가 따라 들었다. 각종 콘서트의 단골 행사지로 선정된 것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춘천마임축제가 열리게 된 것이다.

'아버지, 이젠 편안히 잠드세요'

노을빛이 강가에 퍼질 무렵, 그는 숲 속 깊숙이 들어갔다. 그곳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복사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비할 데 없는 청초함과 생명력 앞에 감격하고 또 감격했다. 그래. 섬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처음 고슴도치 섬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난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돈으로 대하며 주판알을 퉁기던 때를. 그렇게 떠나버린 섬을 다시 되찾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섬을 돌아다닌 성수씨가 사무실 소파에 앉는다. 창 너머로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보인다. 바비큐파티를 하는 사람들, 의암호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 어느 해보다 더위가 이른 올해는 섬을 찾는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돗자리를 펼쳐놓고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며, 성수씨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어릴적 나의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길.' 항상 어린 성수씨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어느 누구보다 아들의 방황을 안타까워했을 아버지.

'이젠 편안히 잠드세요.'

'고슴도치 섬' 찾아가기

▲자동차: 춘천역에서 5번 국도를 타고 화천 방면으로 가다 춘천 인형 극장 사거리에서 좌회전한 후, 신매대교를 타면 된다.

▲버스: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 후 택시 이용. (약 10여분 소요)

▲기차: 청량리역 승차, 남춘천역 하차. (1시간 50분 소요) 한 시간 간격으로 하루 19번 운행.

▲현지교통: 시내버스- 남춘천역에서 나와 오른편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 31, 32, 33, 39, 77, 90번 중 하나를 골라 타면 된다. 운행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며 번호에 상관없이 배차 간격은 약 15분, 운행 소요시간은 20분 정도이다(문의: 춘천시내버스 033-254-6925)

고슴도치 섬에선 춘천 마임 축제, 춘천벚꽃축제, 오토캠핑 등이 열리고 있다. 부대시설로는 수영장, 방갈로, 승마 체험장, 수상보트장, 도자기공예체험 등이 있다. 방갈로는 최대 300여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현재는 연간 27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춘천의 대표적인 명소다(문의: 033-254-7650·252-2168, 홈페이지:http://www.iwido.com).

#고슴도치섬#춘천마임축제#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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