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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농부의 입구다.
ⓒ 정다영
"감자 더 드릴까요?"

수원 팔달문에서 삼익영창피아노 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벽에 '시인과 농부'라는 글자가 보인다. 집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라 여느 카페와는 색다른 느낌이다. 들어서면 따스한 온기가 차가웠던 마음을 녹인다.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은 20대에서 40대까지 폭넓다. 이런 이유는 오래된 이 카페와 연관이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옛날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또 사장님의 푸근한 말들. "감자 더 드릴까요?"

차를 한 잔씩 시키면 작고 짭짤한 감자를 같이 내어준다. 그 맛이 일품이다. 거기에 구수한 우리의 전통 차가 어울린다.

▲ 시인과 농부를 들어서는 입구 문과 내부.
ⓒ 정다영
혼자와도 절대 외롭지 않은 곳이다. 마치 미술관 같다. 정겨운 사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을 느낄 수 있다. 오래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숨을 쉰다. 시간여행을 온 것만 같은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곳.

욕심 없이 사시는 사장님. 이런 많은 것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 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왠지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다.

▲ 책장과 오래된 시계.
ⓒ 정다영
누구나 글이 쓰고 싶어지게 된다

카페의 이름처럼 그야말로 '시인과 농부'. 책장에 박힌 많은 책들 중 가장 눈에 띄던 <소유냐 존재냐>. 메뉴판 역시 특이하다.

A4용지를 묶어놓은 낙서장. 그래서 누구나 글이 쓰고 싶어지게 된다. 표지에는 시와 글이 한 편 적혀있고 다음 장이 메뉴다. 여기 메뉴가 특이한 점은 일반 카페에서 파는 종류의 차가 아니라는 것. 손님들이 좋아하는 파르페, 커피는 찾아볼 수도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녹차, 허브, 감주, 수정과, 복분자, 자스민, 홍차, 오미자, 산수유, 모과, 유자까지는 알았다. 하지만 동방미인, 백년해로, 보이, 오룡차, 장미, 석죽차 등 처음 보는 차의 이름이 있다. 그 뒷장에는 이런 차들이 건강에 어떻게 좋은지 설명이 되어 있다. 어떤 차를 먹을지 고민이 된다면 세 번째 장을 들춰서 입맛에 맞는 차를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시기별로 묶인 낙서장들.
ⓒ 정다영
한구석에는 빽빽한 레코드판들이 꽂혀있고, 그 앞으로는 CD들이 쌓여 있다. 저쪽으로는 예전 우리가 오래전 쓰던 공중전화기도 보인다. 구석구석 주인장의 솜씨가 안 베인 곳이 없다.

다른 한구석에서는 종이들이 빽빽이 쌓인 더미가 보인다. 이것은 지금까지 다녀간 손님들의 낙서장을 시기별로 묶어놓은 것이다. 가게 안에는 예술적인 작품들이 즐비하다. 아기자기한 찻잔들. 예술적인 조형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화장실도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서 좁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사장님께 보내는 손님들의 편지로 가득했다.

▲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화장실과 벽에 붙어있는 글.
ⓒ 정다영
웃기다. 인연이라는 거

벽에는 다녀간 사람들의 쪽지들이 셀 수 없이 붙어있다. 그것이 인위적이건 장식용이건 그 모든 쪽지들이 이 카페와 자연스럽다. 온통 글이 많으니 오는 사람도 글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남아있는 글들을 몇 개 모아봤다.

"9년 전 오늘은 설악산으로의 수학여행. 환선굴을 올랐었나. 정동진에서 있었으려나. 환선굴 가는 길에 이 아이를 만났었지. 웃기다. 인연이라는 거. 2007.5.9 WY"

"처음 와본 곳, 분위기도 좋구....2006.11.5."

"저희 지금 여기서 사귀었어여. 단골될 것 같아여. 2007.6.9 HC♡HJ"


사장님이 예술을 사랑해서 인지 가게 안에는 온통 미술품이 가득하다. 그 중에서 쓰여 있던 시 한 자락.

흰색은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다.
그것은 젊음이 있는 無이다.
정확히 말하면
시작하기 전부터 無요.
태어나기 전부터 無인 것이다.


▲ 감자와 식혜.잔잔한 초 뒤의 쪽지들.
ⓒ 정다영
나를 돌아보는 시간의 소중함을...

빠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 우리를 돌이켜볼 여유가 없었을까? 70∼80년대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시인과 농부'로 가보라. 감자와 식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자, 이제 당신도 타임머신을 타고 날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인과 농부, #멋진카페, #수원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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