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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고심 끝에 만든 안내장. 잘 못 써도 괜찮으니 아버님 필체로 하라고 권했건만 아버님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셨나 보네요.
아버님이 고심 끝에 만든 안내장. 잘 못 써도 괜찮으니 아버님 필체로 하라고 권했건만 아버님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셨나 보네요. ⓒ 이승숙
의성 아버님이 전화를 하셨다.

"야들아, 와 전화가 마이 안 오제?"
"아버님, 안내 편지 다 보냈습니까?"
"그럼 다 보냈지. 작년에 마늘 산 사람들한테 일일이 안내 편지 다 발송했는데 주문 전화가 생각만큼 많이 안 오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좀 있으면 주문 전화 많이 올 거예요. 나중에 마늘이 없어서 더 팔고 싶어도 못 파실지 몰라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지금은 마늘 출하철, 전화가 많이 와야 하는데...

우리 시댁은 육쪽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이다. 의성은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이 쌀 농사를 많이 하지만 주생산물은 마늘과 고추다. 특히 의성 마늘은 토질의 영향 덕분인지 맛이 달고 매우며, 찧으면 즙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마늘을 아는 주부들이라면 의성 마늘을 최고라고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마늘은 정말로 일이 많은 농사다. 그리고 종잣값도 많이 들어간다. 육쪽마늘의 경우 마늘 한 통은 여섯 쪽이다. 한 쪽을 심으면 마늘 한 통이 나오는데, 그러니까 재료비 값이 무조건 육분의 일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마늘을 심기 위해서는 일일이 다 쪽을 내야 한다. 한두 접도 아니고 수십 접의 마늘을 쪽 내다 보면 손가락은 마늘 독이 올라서 쓰리고 맵다. 또 어떤 경우에는 엄지손톱 밑이 발갛게 퉁퉁 부어오르기도 한다.

늦가을 무렵이면 우리 시어머니 엄지손가락은 항상 노르스름하게 부어 있다. 마늘씨 하기 위해서 마늘을 하도 많이 쪽을 내다보니 그리된 것이다. 그런 일을 일평생 동안 하신 것이다. 이제는 인이 배어서 탈이 안 날 것도 같은데, 그런데도 해마다 우리 어머님은 엄지손톱에 탈이 난다. 마늘이 워낙 독하다 보니 손톱이 퉁퉁 붓는 것이다.

늦가을에 심은 마늘을 양력 6월 초순쯤이면 캐게 된다. 마늘을 캐낸 논엔 벼를 심는다. 그래서 그 무렵의 의성은 아주 바쁘다. 마늘 캐서 거두랴 모내기하랴 일손이 정말로 많이 필요하다.

마늘 직거래를 시작하면서부터 신이 난 아버님

예전에는 마늘을 캘 때 일일이 괭이나 호미로 캤다고 한다. 한두 접도 아니고 수백 접 마늘을 손으로 다 캤다니, 그 고충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지금은 기계가 나와서 마늘밭을 훑고 지나가면 마늘 뿌리가 땅 위로 뽑혀 나온다. 그러면 마늘 뿌리에 붙은 흙을 털어가며 마늘을 가지런히 주워서 단을 묶고 집으로 싣고 온다.

비가 안 닿는 처마 밑에는 마늘을 다는 대가 집을 빙 둘러가며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 마늘을 촘촘하게 달아둔다. 자연 상태에서 건조를 시키는 것이다.

마늘이 다 마르면 이제 출하를 해야 한다. 마늘을 캐기도 전에 밭떼기로 넘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직접 캐서 말린다. 그러면 장사꾼이 찾아와서 마늘을 도매금으로 사가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는 어른들은 흙과 함께 해서 그런지 장사에는 재주가 없다. 밀고 당기며 입씨름을 해보지만 결국에는 장사꾼의 의도대로 금은 매겨진다. 그래도 모처럼만에 목돈을 만지게 되므로 기분은 좋다.

우리 아버님은 마늘 농사에 있어서만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오래도록 마늘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알도 더 굵고 잘 안 썩는 마늘을 만들어 낸다고 스스로 평가를 하신다.

삼 년 전 일이다. 그때 남편이 그러는 거였다.

"아버지한테 일거리를 만들어 드려야겠어. 집중해서 할 일이 우리 아버지한테는 필요해. 안 그러면 아버지 늘 자식들 일에 간섭하고 신경 쓰실 텐데, 그러니 아버지 소일거리 만들어 드려야겠어."

남편이 생각해 낸 일은 바로 마늘 직거래였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바로 이어주는 직거래를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더니 아버님도 괜찮아 보이셨는지 응하셨다.

효자 남편은 오늘도 판로 개척 중

우리 시집은 시어른들도 평안하시고 형제간도 다 무탈한데, 그런데도 우리 시어버지는 늘 자식 걱정을 하신다. 그게 자식들에게는 부담 아닌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그걸 아버님은 모르신다.

아버님의 성정을 잘 아는 남편은 아버지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주자고 그랬다. 아버지가 일에 매달려서 정신없이 지내시면 자식들 간섭은 덜 하시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마늘 직거래 장터를 개설한 거였다.

그해 여름 내내 우리 아버님은 바쁘셨다. 날마다 걸려오는 주문 전화에 응대하고 또 마늘을 포장해서 택배로 부치는 그 재미에 다른 일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아버님께 전화를 해보면 아주 유쾌한 반응을 항상 하셨다. 남편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그 다음해에도 아버님은 작년에 거래했던 사람들에게 안내장을 발송했고 무난하게 마늘을 다 소비할 수 있었다.

올해도 또 마늘 판매 철이 돌아왔다. 조급해 하지 않아도 마늘이 다 팔릴 텐데 아버님은 조급증을 내신다. 주문전화가 자꾸 와야 하는데 생각만큼 많이 오지 않는지 매일 전화를 하신다.

아버님 전화를 받으면 남편은 마음이 편치가 않은가 보다. 자꾸 마음이 쓰이나 보다.

"여보, 당신도 좀 알아봐. 아버지 자꾸 전화하시잖아. 아버지가 편해야 우리도 편한데…."

오늘은 조용하다. 주문전화가 많이 왔나 보다. 부디 전화통이 불이 나도록 주문전화가 쇄도해서 우리 아버님이 정신없도록 바빠지셨으면 좋겠다.
#마늘#시아버지#남편#경북 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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