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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장 인간문화재 전시관...분위기가 따뜻한 작은 한옥이다
채상장 인간문화재 전시관...분위기가 따뜻한 작은 한옥이다 ⓒ 이현숙

담양에 있는 죽녹원 산책길을 걸어 생태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로 된 돔형 건물인데, 거창한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로 길 옆으로 한옥 한 채가 동그마니 앉아 있다. 자주 드나드는 이도 없고, 민가 같지도 않은 집이다. 궁금해서 얼른 아랫층으로 내려가 그 곳으로 가 보았다.

채상장 인간문화재 전시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전시관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은 집. 그러나 집안은 온통 아기자기한 공예품들로 꽉 차 있다. 열쇠고리나 효자손 같은 소품에서부터 장식용 벽걸이나 고릿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그런데 알록달록한 색이며 예쁘게 만들어진 문양이 예사롭지 않다.

대나무 쪼개는 데만 온힘을 다 하신다
대나무 쪼개는 데만 온힘을 다 하신다 ⓒ 이현숙


온몸으로 작품을 만드는 채상장 인간문화재 서한규옹...
온몸으로 작품을 만드는 채상장 인간문화재 서한규옹... ⓒ 이현숙

아무리 손끝을 거쳐 나온 작품이라지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곧은 품성을 말할 때 우린 주로 대쪽 같다고 한다. 그만큼 대나무는 쪽 곧게 올라가면서 큰다는 뜻이다. 그런데 키만 큰 대나무가 이렇게 다양한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나다니, 내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곱고 가늘게 손질해 놓은 대나무...
곱고 가늘게 손질해 놓은 대나무... ⓒ 이현숙

오른쪽 방을 보니 노인이 작품을 만드느라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채상장 서한규 옹이다. 198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 상을 수상했고 1987년 채상장 인간문화재가 되신 분이다. 방 책상 위에는 아직 손질이 끝나지 않은 바구니가 놓여 있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하시는 거예요?"
"시간이 모 따로 있나. 공무원두 아니고 밥만 먹으면 앉아 하는 게지."
"오래 이 일을 하셨어요."
"한 60년 했지."

나는 60년이라는 말에 한숨이 다 나온다. 그러나 노인은 대답은 건성으로 하면서 대나무 쪼개는 데에만 온힘을 다 한다. 양손에 대나무 골무를 끼고 입으로 또는 납짝한 칼을 이용 훑고 쪼갠다.

60년을 같은 일을 하셨다고 하니 그 성품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예전에는 찾는 사람도 많고 쓰임새도 많았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뜸해 이렇게 공예품으로 다시 태어 났다는 말을 잊지 않으신다.

장식품도 있고 채죽상자도 있고...
장식품도 있고 채죽상자도 있고... ⓒ 이현숙


이 예쁜 벽걸이는 어떤 집에 걸어야 어울릴까?
이 예쁜 벽걸이는 어떤 집에 걸어야 어울릴까? ⓒ 이현숙


작은 액자는 침실에 걸어도 좋고 서재에 걸어도 좋을 텐데...
작은 액자는 침실에 걸어도 좋고 서재에 걸어도 좋을 텐데... ⓒ 이현숙

마루로 나와 채상이야기라고 쓴 액자를 자세히 읽어본다. 아무 대나무나 되는 게 아닌 듯 대나무 채취 과정부터가 까다롭다. 키가 크고 곧게 자란 2~3년생 왕대나무여야 한다. 황토밭에서 식생한 것으로 동지무렵 채취한다. 대나무는 물에 담궈서 다듬고 쪼개고 훑는다. 두께는 0.1~0.2로 얇아지고 내피와 외피로 구분된다.

채상의 특징은 아름다운 색상과 문양이다. 우리나라 전통염색기법은 식물성염료인 치자, 쪽, 잇꽃, 갈매 등을 이용 노랑, 빨강, 검정, 파랑 등 네가지 색으로 했으나 요즘은 재료 부족으로 일부는 화학염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상자를 짜기 위해서는 찌대와 날대를 놓고 바닥잡기를 한 다음 문양에 맞춰 세오리 뜨기를 넣으면서 대오리를 넣고 문양의 짜임을 고려하여 작업한다. 어느 정도 짜이면 메대를 넣고 여러 번 접기를 하여 상자 짜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마무리 손질을 잘 하여 상품화한다.

채상이란 본래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여러 색깔로 물들여 짜 만드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보통 상자류 제품이 많아 '채죽상자'로 불리다가 줄여서 채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벽에는 채상에 쓰일 고운 색상의 대나무 가닥이 길게 늘어져 있다. 이 곱고 가는 가닥을 일일이 찌대와 날대를 놓고 문양을 맞춰가며 작품을 만들다니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정말 작품 하나 만드는데 거의 일주일이 걸린단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상자 하나에도 보통 몇 만원 씩이나 했다. 이름 있는 화가의 작품이나 도자기에 비한다면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상자는 그냥 놔 두기보다 쓰임새를 찾기 때문이리라.

구경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면서 작업하는 서한규옹의 딸 신정씨...
구경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면서 작업하는 서한규옹의 딸 신정씨... ⓒ 이현숙


소품 하나에도 정성을 들이는 전수자 신정님...
소품 하나에도 정성을 들이는 전수자 신정님... ⓒ 이현숙

눈으로 보기에도 아까운 작품들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장식품 벽걸이에서부터 받짇고리, 베개, 망침, 색실상자, 보석함 등. 무늬나 색상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방 중앙에 앉아 작업을 하면서 사람들의 물음에 일일이 답해주고 있는 분이 있었다.

알고보니 채상장 서한규님의 둘째 딸 신정님이란다. 누구에게든 전수해줄 마음이었는데, 워낙 품이 많이 들고 품에 비해 소득이 적다보니 전수하겠다는 사람이 오직 따님인 신정님 뿐이란다. 그래도 부녀가 정성스럽게 만든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새삼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화려한 곳에서 나와 다시 생태 전시관으로 들어가 보니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이런 때 사람들은 눈 버렸다고 하는가 보다. 나는 그 예쁜 작품들이 작품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의 집으로 모두 불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대나무숲 길로 들어섰다.
#죽녹원#채상장 서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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