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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 살리민(Pak Salimin) 대장간. 자급자족하는 빈탄 섬의 필수적인 대장간이다.
팩 살리민(Pak Salimin) 대장간. 자급자족하는 빈탄 섬의 필수적인 대장간이다. ⓒ 노 시경
빈탄의 투어 중에는 특이한 투어 프로그램인 일명 '대장간 투어'가 있다. 인도네시아 시골의 낙후성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쇠를 달구어 각종 연장을 만들던 인도네시아 철기시대의 대장간을 그대로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인도네시아에도 마을별로 대장간이 있었고, 자급자족하는 빈탄 섬에서 대장간은 필수적인 곳이었다. 여행자들을 위해 최근에 보수를 했다는 대장간 건물은 숲속의 외딴 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대장간은 빈탄 섬에 유일하게 남은 세쿠닝(Sekuning) 마을의 팩 살리민(Pak Salimin) 대장간이다. 그들은 여행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파는 제품의 제작과정을 실연하고 있었다.

이 대장간에서는 낫, 칼, 도끼, 논바닥을 고르는 써레, 고무 절단용 칼 등 지역의 농업 사회에 필요한 모든 기구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 다양한 기구들은 손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풀무와 철기 단련용 받침인 모루 등의 고유한 기구들을 통해 아직도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빈탄 섬 주변 리아우(Riau) 군도의 주민들도 이 유명한 대장간에서 농기구와 벌채에 쓰이는 칼 등을 구입해 간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이 대장간은 도로변이나 마을 상가 사이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야자수 가득한 숲 속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아무래도 빈탄 섬이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 지역이 아닌 지방의 시골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더운 지역에서 사방이 막힌 작업장은 불 작업을 하는 데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래서 이 작업장은 그늘지고 바람이 불어 전혀 더위를 느낄 수 없도록 사방이 모두 트여 있다.

그 곳의 대장 기술은 여러 세대를 걸쳐서 전해 내려온 가업이라고 한다. 우리가 궁금한 것들은 현지 가이드를 통해 영어 통역으로 전달되었다.

"원래 빈탄 섬이 고향이신가요?"
"원래 조상들은 빈탄 섬 아래의 큰 섬 수마트라(Sumatra)에 살았고 제가 이곳으로 이주했지요. 제 일은 지금 아들과 사위가 도와주면서 함께 하고 있지요."

다행스럽게도 이 집안의 가업은 아들을 통해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현대화된 사회에서 이 가업이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빈탄 섬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빈탄의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관광 아이템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투어의 일행인 프랑스 아저씨는 이 작은 대장간이 매우 흥미로운 모양이다. 그의 집안이 원래는 독일에서 살다가 프랑스로 이민 온 집안인데, 원래 독일의 제철소에서 근무하던 집안이었다고 한다.

이곳의 철 제련 방식은 우리나라 전통의 대장 기술과 거의 같지만, 조금씩 다른 부분도 있다. 빈탄의 대장간에서 쓰이는 철의 원재료는 빈탄에서 사용되던 트럭이나 다른 교통수단에서 버려진 철 부품들을 해체하여 재활용된 것들이다.

팩 살리민(Pak Salimin) 가족의 대장간에는 손풀무와 모루, 그리고 달구어진 철을 담금질할 노(爐)가 배치되어 있었다. 원하는 기구를 만들기 위한 기본 패턴의 모양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팩 살리민은 우리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계속 작업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손풀무질. 가열된 숯에 공기를 공급한다.
손풀무질. 가열된 숯에 공기를 공급한다. ⓒ 노 시경
벌겋게 달궈진 숯은 빈탄 해안가의 바닷물에 잠겨서 사는 맹그로브(mangrove)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숯은 손풀무를 통해서 공기를 공급받아 가열되고 그 열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기본 패턴의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던 철기구 재료는 맹그로브 숯으로 가열된 노(爐)에 넣어진다. 빨갛게 데워진 철기 재료는 노에서 뺀 다음에 완성된 모양을 만들기 위해 모루 위에 올려지고, 해머를 기다린다.

해머질. 철기구의 강도를 강하게 하고 철기구의 모습을 완성한다.
해머질. 철기구의 강도를 강하게 하고 철기구의 모습을 완성한다. ⓒ 노 시경
가이드 아주머니가 대장간의 작업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사람은 나와 보라고 한다. 몸이 엄청나게 비만형인 프랑스 아저씨는 체험하기를 사양했고, 내가 작업장에 있던 해머를 들고 모루 앞에 섰다. 그런데 대장장이 살리민씨가 손사래를 치면서 나의 해머질을 말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웃어버렸다.

대장간 체험을 하는 여행자에게는 중요한 해머 질을 맡기는 것이 아니고, 손풀무를 손으로 움직여서 숯에 공기를 불어넣어주는 일이 맡겨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손풀무질을 하는 자리에 올라가 양손을 번갈아 움직이면서 맹그로브 숯에 공기를 공급해줬다. 아주 손쉬운 작업이지만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힘이 소진될 것 같았다.

해머질을 당하던 철기구가 열이 식자 열을 더 공급받기 위해 노 속에 다시 넣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철 기구는 강도가 높아지고 철기구의 모습이 완성되어간다. 몇 번의 가열 과정과 해머질, 식힘 과정을 거친 새로운 철기구는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얼른 물속에 넣어져서 담금질된다. 그리고 철기구를 다룰 목제 손잡이를 만들고 철기에 광택을 내면 제품이 완성된다.

대장장이 살리먼 씨는 그의 구리 빛 얼굴만큼이나 오래된 숙련의 세월을 통해 쇠의 성질과 강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이 대장장이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사위는 하루에 3개 정도의 철기구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완성된 철기구들이 여러 개 진열되어 있는 걸로 봐서 이들의 철기구는 잘 팔려 나가는 것 같다.

이 더위 속에 불을 이용하여 제품을 만들어내는 그들은 모두들 웃으면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살리먼 씨는 그의 직업이 즐거운 듯 표정이 계속 밝았고, 아버지이자 장인으로서 가족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워보였다. 그의 가족들도 웃으면서 일을 돕고 있었다.

나는 이곳을 떠나면서 가이드 아주머니가 건네준 튀김 빵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기름기가 너무 많은 빵이 팍팍해 보였다. 샬리먼 가족이 다시 길을 떠나는 우리에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생업수단인 대장간에 와서 그들의 작업현장을 잠깐 둘러보고 가는 것이었지만, 가식도 없고 참으로 자연스러운 자리였다. 나는 웃음을 잃지 않는 이 가족이 참으로 행복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6년 8월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빈탄#대장간#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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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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