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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구, 민무질은 지나치게 성은을 입어 일가형제 모두 존영을 누리니 마땅히 조심하고 삼가여 그 직책을 정성껏 지켜 교만하고 방자함이 있어서는 아니 되고 성은 갚기를 하늘같이 하여야 할 터인데 도리어 분수를 돌보지 않고 권병(權柄)을 전천(專擅)하여 속으로 금장(今將)의 마음을 품고 발호(跋扈)할 뜻을 펴보려 하였습니다.

지난해 전하께서 내선(內禪)을 행하려 할 때 온 나라 신민(臣民)이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민무구 형제는 스스로 다행하게 여겨 기뻐하는 빛을 얼굴에 나타냈으며 전하께서 신민의 여망에 따라 복위하신 뒤에 이르러서도 온 나라 신민이 기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민무구 형제는 도리어 슬프게 여겼습니다.

이는 어린아이를 끼고 위복(威福)을 마음대로 하고자 한 것이니 불충한 자취가 소연히 나타난 것입니다. 듣건대 민무구가 주상께 아뢰기를 '세자(世子) 이외에는 왕자(王子) 가운데 영기(英氣)가 있는 자는 없어도 좋습니다' 하였다 하니 이는 금장(今將)의 마음을 품은 것이 명백합니다.

또 신극례를 부추겨서 친남(親男)의 먹장난(墨戲)한 종이를 취하여 찢게 하고 말하기를 '제왕의 아들에 영기 있는 자가 많으면 난을 일으킨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종지(宗支)를 삭제하고자 한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대의로 결단하시고 민무구, 민무질, 신극례를 국문하게 하여 난의 근원을 막으시면 심히 다행하겠습니다."-<태종실록>


피바람을 예고하는 상소다. 민무질, 민무구 형제는 태종 이방원의 장인 민제의 아들이며 왕비 원경왕후의 동생들이다. 그러니까 태종 이방원의 처남인 셈이다. 이방원이 정도전과 방석을 도모하던 왕자의 난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순화동 3인방이다. 헌데 그들이 국문의 대상이 되었다. 죄목은 '표정관리'를 잘못했다는 것이다.

표정관리를 잘못한 죄

태종 이방원이 세자 양녕에게 전위하고자 했을 때 기뻐하는 낯빛이었으며 전위를 거두어 들였을 때 슬픈 얼굴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실에 불과하고 궁극적인 죄목은 금장(今將)에 있었다. 금장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나오는 말로서 '임금의 친척에게 금장이 있으면 벤다'는 말에서 유래한다.

춘추전국시대 공양고가 쓰기 시작하여 가학(家學)으로 전승 집필된 춘추공양전은 공자가 '춘추'에서 '난세를 다스려 바른 세상으로 돌아가게 한다' 라는 부분을 혁명으로 해석하는데서 출발하고 있다. 인(仁)을 설파한 공자도 혁명을 용인했다는 것이다. 청나라 시대에는 공양학파(公羊學派)가 생겨 신해혁명을 일으킨 쑨원(孫文)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소장(疏章)에 '어린아이를 끼고 위복(威福)을 마음대로 하고자 한 것이니 불충한 자취가 소연히 나타난 것입니다' 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이른바 협유집권(挾幼執權)을 꾀했다는 혐의다.

민씨가(家)의 참화를 불러온 민씨 형제의 옥사는 원경왕후와 갈등을 빚은 태종 이방원이 외척을 척결하기 위하여 협유집권 획책 혐의를 내세웠다고 대부분의 역사서는 기술하고 있다. 부분적인 이유에서는 틀리지 않으나 정확한 맥에서는 비켜간 듯하다.

여자를 좋아하는 이방원은 비빈제도를 고치고 잉첩을 두면서 정비를 끊임없이 자극했고 기가 센 정비 역시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허나 이는 지엽적인 이유에 불과하고 핵심은 금장이었다. 태종 이방원으로서 금장은 역심(逆心)이다. 자신은 '맹자'에 심취하여 혁명했지만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근거한 그 어떤 모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한 '세자(世子) 이외에는 왕자(王子) 가운데 영기(英氣)가 있는 자는 없어도 좋습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이방원이 민씨가(家)와 인연을 맺은 혼인 당시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상황을 살펴봐야 이해가 빠르다.

혐의를 받고 있는 민무구 형제의 누나가 낳은 태종 이방원의 아들은 양녕을 비롯하여 효령, 충녕, 성녕, 네 명이었다. 모두 조카로서 누가 왕이 되어도 상관없을 텐데 왜 양녕에 집착했다는 혐의를 받았을까?

임금의 핏줄과 자연인의 혈연은 다르다

야인 이방원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가정을 돌보지 못할 때 양녕 이제가 태어났다. 이방원이 장인 민제의 보살핌을 받으며 처가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할 때다. 외갓집에서 태어난 양녕은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외삼촌들과 장난하며 성장했다. 다시 말하면 이방원의 안정기에 태어난 조카들보다 더 외가와 친밀하고 외가 지향적이라는 얘기다. 양녕의 둘째 아우 세종만 하더라도 한양 순화방에서 태어났으며 외가와는 별로였다.

태종 이방원이 경계하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왕권은 시간, 공간, 인간 즉 삼간(三間)을 하늘과 연결하는 매개자 즉, 천간(天間)이라 보고 있었다. 임금이 내리는 왕명은 자연인 인간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소망을 하늘에 전하여 그 가르침을 시간과 공간에 맞게 인간들에게 베푸는 것이 임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존엄한 왕권에 인간관계 즉, 외삼촌과 조카 관계가 끼어들면 하늘의 뜻을 전하는 매개자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왕이라도 외삼촌 앞에 약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터득한 정치철학이다. 태종 이방원은 '군주는 만인지상이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임금이다. 이러한 자리에 있는 자신이 비록 태상왕이라 하지만 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아버지의 부당한 처신에 끌려가는 것은 '천간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없었다'는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도 이율배반이 존재한다. 자신의 그러한 폐해를 왜 살아생전 세자에게 전위하여 차기에 답습하려 하냐는 것이다. 이 숙제를 태종 이방원은 '핏줄'이라 풀어냈다. 임금도 임금 이전에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승하하실 때가지 폐해를 마음깊이 새겨두고 '만인지상'을 보류하자는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또 하나, 핏줄에도 색깔이 있었다. 부계혈통으로 이어지는 권좌는 온 신민이 힘을 합쳐 종묘사직으로 수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왕권이지만 외척과 처족은 천간의 하등 단계인 인간관계에서 형성된 혈연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훗날 세종의 장인 심온을 처단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용상은 하늘과 삼간을 연결하는 자리다

▲ 대명률
ⓒ 이정근
'우매한 중생도 깨달으면 곧 부처다'라는 말이 있다. 심오한 말이다. 이방원이 야인시절 정도전이 전해준 맹자(孟子)를 책장이 헤지도록 읽으며 '덕을 잃은 군주는 폐하여도 된다'라는 말에 심취하여 혁명에 뜻을 품었고 하륜이 전해준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독파하며 군주의 덕을 깨달았다. 대학연의는 제왕학(帝王學) 교과서다.

태조 이성계는 무골(武骨)이다. 이 때문에 가방끈이 짧다. 이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유학을 깨우친 군졸을 군막에 불러들여 성리학을 공부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이방원은 다르다. 어려서 스승 원천석으로부터 혹독한 인성교육과 함께 성리학을 공부했고 과거에 급제한 문인(文人)이다.

이 때문에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태종 조의 학자 조준, 권근, 하륜 등 당대의 성리학자는 학문적으로 이방원에게 범접하려 들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잘 알고 있는 태종 이방원은 세자 양녕에게 공부하라 독려한 것이다.

상소에서 "신극례를 부추겨서 친남(親男)의 먹장난(墨戲)한 종이를 취하여 찢게 하고 말하기를 '제왕의 아들이 영기 있는 자가 많으면 난을 일으킨다'고 하였다"는 대목에서 나오는 먹장난을 한 친남은 충녕 즉 세종대왕을 지칭하는 말이다. 세종은 어려서부터 먹과 가깝게 놀았고 총기가 있었다. 이 때 충녕은 10세였다.

영의정 이화의 상소가 있자 민무질이 억울하다며 대질을 요청했다. 상소에 적시한 혐의가 사실로 인정되면 대명률에 따라 참형에 처해질 중죄인의 운명이다. 죽음의 계곡을 빠져나가기 위한 안간힘이다.

태그:#태종, #이방원, #양녕대군, #권좌,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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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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