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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도문교회와 수녀원 벽에 한글로 새겨진 주기도문
ⓒ 이승철
폭풍이 몰아치던 가이샤라를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한 시간은 한밤중이었다. 우리들이 묵을 호텔은 예루살렘 시가지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구불구불 언덕길을 올라 도착한 호텔은 한때는 최고급 호텔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낡고 허술한 모습이었다.

저녁을 먹고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 보니 시설이 한 마디로 별로다. 어느 방은 난방가동이 시원찮아 추워서 잘 수 없다고 방을 바꿔달라는 일행들까지 생겼다. 출입문의 잠금장치도 허술해 보인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는 이 호텔에서 이틀 밤을 묵도록 예약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호텔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다는 걸 어쩌겠는가. 불평은 조금 있었지만 우선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예루살렘 지역 관광에 나섰다. 그 첫 번째로 찾은 곳은 감람산이었다. 감람산은 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나지막한 언덕이었다.

예루살렘성의 동쪽지역으로 기드온 골짜기 건너편에 해당되는 곳이다. 보기에는 나지막한 언덕이었지만 이 지역이 전체적으로 높은 지역이어서 제일 높은 봉우리는 해발 800m나 된다. 감람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에 올리브나무가 유난히 많았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감람산에 올라 첫 번째 둘러본 곳은 주기도문 교회였다. 주기도문 교회는 파테르 노스테르(Pater Noster)라는 주기도문이 시작되는 라틴어의 첫 번째 말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준 곳이라고 전해오는 곳이다.

교회내부의 벽에는 전 세계 62개국의 언어로 새겨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의 주기도문이 눈길을 끈다. 그 중에는 우리 한글로 새겨진 주기도문도 있어서 일행들이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이다.

이 교회는 4세기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 감람산 위에 처음 기념 교회를 세웠으나 614년 페르시아의 침공 때 파괴되었다. 그 후 12세기에 십자군에 의해 다시 세워진 교회 역시 후일 회교도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 예루살렘 하늘에 뜬 무지개
ⓒ 이승철

▲ 선지자들의 동굴무덤 입구
ⓒ 이승철
현재의 교회는 1875년에 프랑스에서 가톨릭의 카르멜 파 수녀들을 위한 수녀원과 함께 건립한 것이다. 세계 62개국의 언어로 새겨진 주기도문은 바로 이 수녀원건물 벽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우와! 저 무지개 좀 보세요?"

교회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누군가 저 멀리 앞쪽의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며 환성을 지른다. 정말 무지개였다. 밤사이에 비가 조금 내렸는데 아침에 무지개가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앞의 건물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으로 담으려고 소형 디지털카메라 줄을 오른 편 손목에 걸고 돌계단 바로 옆의 약간 높은 곳으로 껑충 뛰어 올라섰다. 그런데 그때 순간적으로 몸이 기우뚱거려 난간을 붙잡으려고 손을 내리는 순간 손목에 걸려 있던 디카가 손목을 벗어났다.

"어머나! 저를 어째."

가까이 있던 일행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어이쿠, 내 카메라."”

디카가 박살이 난 줄 알았다. 손목을 벗어난 디카는 순식간에 2~3m 높이에서 바로 밑의 돌계단으로 뚝! 떨어져 다시 계단 밑으로 툭 툭 굴러 내리고 있었다. 디카가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전부터 쓰던 300만 화소급 디카와 함께 가져온 최근에 구입한 최신형 소형 디카였다. 디카는 충격에 약하다는데 그만한 높이에서 그것도 돌계단 위로 뚝 떨어졌으니 절대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밑에 있던 다른 일행이 떨어져 내린 디카를 주워 내게 내밀었다.

▲ 기드온 골짜기 건너 예루살렘성과 황금사원
ⓒ 이승철

▲ 무덤으로 뒤덮인 감람산 지역 풍경
ⓒ 이승철
디카를 받아든 나는 우선 작동가능 여부부터 확인하기 위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일행들이 모두 "저 디카는 이제 끝났어" 하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정말 거짓말처럼 디카가 작동이 되는 것이 아닌가. 찍으려고 했던 무지개를 향하여 셔터를 눌렀다.

사진이 찍혔다. "어때요? 괜찮나요?" 일행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그 디카 대단하네요" 몇 사람이 박수를 짝짝 친다. 서울 용산전자상가 매점주인의 권유를 받고 산 이 디카는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품이었다.

아직도 아날로그 카메라의 명품 의식이 잠재하고 있었던 터라 매점주인이 권하는 제품을 순진하게 받아들여 구입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카메라는 렌즈의 성능이 우선이라는 그의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 전자기술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등 부속품의 성능도 중요했는데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약간 멍청한 이 카메라가 튼튼하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성능이나 배터리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긴 하지만 지금도 잘 쓰고 있으니까 말이다.

주기도문 교회를 나와 잠깐 내려오자 선지자들의 동굴무덤이다, 으슥한 동굴은 안에 들어서자 어두컴컴하여 정말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다시 밖으로 나와 앞을 바라보니 전망이 확 트이며 기드온 골짜기 건너 예루살렘시가지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이 감람산이 예루살렘성이 있는 지역보다 90m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골짜기 건너편에는 상당히 높다란 옛 성벽이 빙 둘러쳐져 있고 그 성안에 있는 둥그런 황금사원의 돔이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다. 건너편 성안을 바라보다가 다시 밑으로 조금 더 내려갔다. 그런데 이 언덕 한 자락이 온통 무덤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지역은 도시의 한 복판이었다.

▲ 언덕 위에서 바라본 막달라 마리아 교회
ⓒ 이승철

▲ 예수 승천 교회
ⓒ 이승철
"히야! 웬 무덤들이 이렇게 많아? 도시 한복판에 공동묘지를 만들어 놓았네."

믿기지 않는 풍경에 일행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감람산은 본래 올리브나무 숲이 울창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기 1세기경에 숲이 다 망가져 버렸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 산을 출발점으로 하여 일련의 봉화불을 밝혀두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동족들에게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 산이 온통 무덤으로 뒤덮인 이유는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이 언젠가는 이 감람산 위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 아래 황금색으로 빛나는 몇 개의 양파처럼 생긴 모습이 보이지요? 저 교회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 교횝니다."

가이드 서 선생이 가리키는 곳에는 정말 양파처럼 생긴 모습의 7개의 뾰족뾰족한 둥근 탑들이 바라보인다.

이 전형적인 러시아풍의 교회는 러시아정교회 건축물이다. 1888년 황제 알렉산더 3세가 그의 어머니를 기념하여 건축한 교회로서 내부에는 유명한 러시아 화가들의 성화들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골목길은 마치 옛 성벽 사이를 걷는 느낌이었다. 길 양쪽에 높다란 돌담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골목길을 내려와 들른 곳은 예수승천교회였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수 승천이 감람산 꼭대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져 서기 380년경에 예수의 승천을 상징하는 지붕 없는 8각형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 후 12세기에 십자군이 재 수축하였으나, 1187년 이슬람교도들에 의하여 사원 형태의 돔이 씌워져 기형적인 형태가 된 돔 모양의 교회로 변했다. 교회 안에는 예수가 승천할 때 밟아 남긴 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보존되어 있으나, 이것은 중세 이후에 만들어진 이야기로 역사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 모양이 독특한 눈물교회
ⓒ 이승철

▲ 천년이 넘었다는 올리브 고목
ⓒ 이승철
예수승천교회 부근에는 눈물교회가 서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교회의 모양이 아주 특이하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눈물 모양이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예수가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유대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 곳에 세워진 것으로, 1955년에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발루치가 눈물 방울을 형상화하여 건축한 교회다.

그러나 지금은 한 아랍인이 소유하고 있어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그의 승인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돌담길 성벽 같은 곳에 출입문이 있었다. 아랍인 주인이 외출을 했거나 그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문을 닫아걸고 입장을 시키지 않으면 그만인 곳이었지만, 다행히 우리들에게는 입장이 허용되었다.

"보세요? 저 모습, 예수님의 예언은 지금도 저렇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안으로 들어가 앞쪽을 바라보니 예루살렘성과 시가지가 정면에 펼쳐져 있는데 특히 그 유명한 황금사원의 황금빛 돔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다가온다. 문제의 황금사원은 지금도 여전히 이슬람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슬람사원이었다.

눈물교회를 나와 다음에 찾은 곳은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만국교회였다. 만국교회로 가는 길가의 한 곳에는 아주 늙은 고목이 된 올리브나무 수백 그루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 중의 어떤 것은 예수시절의 것도 있어서 그 시절의 역사를 지켜보았을 것이라는 말이었는데 실제로 수령 천년이 넘는 나무만 해도 8그루가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 제일 큰 나무는 둘레가 7.3m나 된다고 했다. 겟세마네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기름 짜다'라는 뜻인데 이 지역이 올리브나무가 많은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만국교회는 1919년에 16개 국가의 기독교도들이 헌금한 돈으로 6년간의 공사 끝에 세운 교회다. 특히 이 만국교회는 전면의 벽화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교회다. 실제로 이날 바라본 만국교회의 전면 윗부분에 그려져 있는 모자이크 벽화와 석상으로 만들어 놓은 4명의 사도들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만국교회를 둘러본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는 길에 동굴교회를 들렀다. 동굴교회로 가는 골목입구 왼편에는 마리아 무덤교회가 마당에서 밑으로 계단을 한참 내려간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 벽화가 아름다운 만국교회
ⓒ 이승철
골목 안으로 30여m 들어간 곳에 있는 동굴교회는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제자들이 잠들었던 곳에 세워진 작은 교회인데, 교회 제단 밑에는 잠자는 제자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감람산에서는 이렇게 몇 개의 교회와 동굴, 그리고 수많은 무덤들과 기드온 골짜기 건너편의 예루살렘성과 시가지를 바라보는 관광으로 한나절이 지났다. 우리 일행들이 다음 코스인 실로암 연못과 히스기야 터널지역으로 발길을 돌릴 때 쯤 하늘에서는 이 지역의 겨울비인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감람산, #막달라 마리아 교회, #예수 승천 교회, #눈물교회, #만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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