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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학규 전 지사는 25일 오전 서대문 캠프에서 '공개 지지'를 선언한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거리낌 없이 힘있게 뚜벅뚜벅 가겠다"며 사실상 범여권 대통합 논의에 조만간 합류할 뜻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대의통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 합류를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면 자질구레한 것 눈치 보지 말고 꿋꿋하게 가자"고 했다. "좀스럽게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고 뚜벅뚜벅 힘차게 나아가겠다"고도 했다.

결기가 단단해 보인다. "좀스럽게" "자질구레한 것"을 시비 거는 일을 예상한 듯한 태도도 보인다.

손학규 전 지사가 '우이'가 되기로 작정해버렸기에 김이 빠지지만 그래도 '독경'을 해보자.

경전은 '대의'다. 손학규 전 지사 스스로 언급한 것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범여권에 합류하는 대의명분이 뭔가?

내놓은 답이 있다. "대통합이란 미명 하에 단지 정치인들간, 정치세력간 야합이 되거나 우리 정치를 과거로 되돌리는 그런 것이 돼선 안 되겠다. 자칫 통합과정이 또 다른 실망과 좌절을 줘서는 안 되겠다"고 했다. 어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나 한 말이다.

지난 17일 자신의 지지조직인 '선진평화연대' 출범식에선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야 한다"고 했다.

종합정리하면 이렇다. 범여권 합류의 대의명분은 선진화를 위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탈당하면서 제 3지대에서 새 판을 짜겠다고 했는데...

대뜸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손학규 전 지사는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두 세력을 싸잡아 비난한 바 있다.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였다. 그래서 "범여권도 한나라당도 아닌 제3지대에서 새 판을 짜겠다"고 했다.

손학규 전 지사의 공언을 기준으로 삼으면 명백한 후퇴다. 범여권에 발을 담그기로 했으니 제3지대에서 제1지대로 돌아선 셈이다. 더불어 "무능한 좌파" 극복의지도 뒤로 물렸으니 좌회전한 셈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건 아니다. "무능한 좌파"가 참여정부 집권세력, 즉 친노세력을 지칭한 것이라고 하면 절반은 건진다. 이 논리를 디딤돌 삼아 "새로운 정치세력"의 최소요건은 확보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특정세력 배제론의 부담은 안게 되겠지만 말이다.

사실 뻔한 얘기다. 범여권의 최대 문제는 대안 부재다. 손학규 전 지사의 최대 문제는 세력 취약이다. 그래서 손을 잡는 것이다. 그것이 야합이든 결합이든 속사정은 이렇다. 대의보다 대수학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쯤 해두자. 원래 정치가 그런 것을, "좀스럽게" 거듭 확인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이 나올지 모른다.

▲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홀에서 열린 '선진평화연대 창립대회'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선진평화연대 상임고문)가 축사를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온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끌어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색을 하고 시비를 걸어야 할 건 따로 있다. 그의 대의명분을 실현할 능력이다.

손학규 전 지사는 한나라당 탈당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은 원래 민주화 세력과 근대화 세력이 30년 군정을 종식시키기 위해 만든 정당의 후신"이었는데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선진평화연대' 출범식에서 한 말, 즉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야 한다"는 말을 추가하자. 그러면 이런 논리가 성립된다. 한나라당은 민주화 세력과 근대화(산업화) 세력의 집합체였기 때문에 선진화를 추진할 주된 세력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손학규 전 지사는 탈당을 감행했다. 한나라당이 선진화 주도 세력이 되기는커녕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주인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나라당을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실패했음을 자인한다"고 했다.

손학규의 능력을 물어야 하는 이유

바로 이 지점에서 손학규 전 지사의 능력을 묻지 않을 수 없다. 20년 가깝게 몸담은 당이다. 일개 당원이 아니라 핵심 당원으로 중추적 지위를 점하던 당이다. 손학규 전 지사는 그런 당을 선진화 전진기지로 개조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또 다시 선진화 정치세력을 운위한다. 20년 가깝게 거리를 두던, 그래서 상대적으로 낯설 수밖에 없는 정치세력을 선진화 세력으로 바꾸겠다고 공언한다.

비약에 가깝다. 제 논의 벼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남의 논에 가서 모를 심겠다는 태도와 비슷하다. 손학규 전 지사의 정치행보를 문제 삼는 비토세력이 엄존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모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지조차 불투명하다. 그의 능력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근은 그의 첫마디에 있다. "한나라당은 원래 민주화 세력과 근대화 세력이 30년 군정을 종식시키기 위해 만든 정당의 후신"이라는 말이다.

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른바 운동권에서 한나라당 당원으로 방향을 튼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말이 두고두고 그를 옥죄게 돼 있다.

범여권 인사들은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반한나라당이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거의 맹목에 가깝다.

범여권이 왜 이런 주장을 펴는지 손학규 전 지사 스스로 되물을 필요가 있다. 이제 범여권 인사가 됐으니 그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한나라당은 원래 괜찮은 당이었는데 나중에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주인 자리를 꿰찼기 때문일까? 아니면 민주화 변절 세력과 근대화 세력이 야합해서 만든 정당의 후신이기 때문일까?

손학규 전 지사는 아직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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