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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권 애들만 살라고? 나머지는 지방대에서 찌그러져 살라고?'

내신혼란을 보는 '아.. 정말 이상하네... 일반학생들 생각은 안하나?'라는 제목의 'lch3249'라는 네티즌의 주장이다.

내신반란이란 '우수학생'을 서로 뽑아가겠다는 주요대학의 학생 쟁탈전이다. 이들은 우수학생이 몰려 있는 특목고 학생들을 독식하기 위해 학교 교사들이 평가한 내신 성적을 믿지 못하겠다며 양질의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내신 성적 1∼4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는 것은 본고사를 불허하는 교육부에 대한 반발이요, 학교교육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파렴치한 요구다.

말이 좋아 '내신 1∼4등급 만점처리'지, 이들 대학에 내신 4등급 이하의 학생이 지원할 리가 없을 터이니 결국은 학교에서 평가한 성적인 내신점수는 고려치 않고 수능이나 논술 점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우수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대학의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여입학제와 본고사 그리고 고교 등급제를 실시하자는 요구가 거부당하자 논술이나 면접이라는 편법을 동원하다 이제는 내신 반영비율을 낮춰 본고사를 치르겠다는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본고사 반대라는 교육부정책에 저항하는 사립대학의 집단행동이 '내신 1∼4등급 만점'이라는 카드다.

교육부도 신자유주의 논리에 바탕을 둔 대학과 같은 입장이면서 유독 본고사와 내신 반영비율 '1∼4등급 만점'을 왜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교육부는 지금까지 앞장서서 수월성 교육이니 수요자 중심 교육이니 하며 교육과정을 경쟁과 효율에 근거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본고사나 내신 반영비율을 축소한다는 대학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이유는 뭘까?

1980년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강탈한 후 민심을 얻기 위해 시행한 제도가 본고사 폐지였다. 본고사가 시행되는 상황에서는 학생들은 불필요한 암기 교육과 지나친 학습 부담에 시달려야 하고 학부모들은 허리를 휘는 과외비 부담으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서민들에게 인심을 얻어야 하는 다급한 전두환이 내놓은 카드가 본고사 폐지였을 정도로 대학의 본고사는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본고사를 부활한다면 지난 악몽이 되살아나 정권의 위기를 맞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본고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는 정치형태를 독재라 한다. 카르텔이나 트러스트 같이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의 무리를 재벌이라 한다. 독재나 재벌은 청산되어야 할 전근대사회의 유산이다.

민주주의란 이렇게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리나 사상이나 부를 다수에게 나누어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자는 제도다. 다수결이 최선이 아닌 차선이면서도 이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다수의 이익이 소수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원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본고사를 시행하거나 내신 반영비율을 낮추면 다수가 아닌 소수에게 유리하다. 서울의 사립대학의 '내신반영비율 1∼4등급 만점' 안은 소수의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전형요강이다. 우수한 인재를 키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특수목적고를 설립한 이유가 바로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특수목적고는 설립목적과 다르게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관문으로 바뀌어 공교육을 경쟁교육의 장으로 만드는 주범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의 요구대로 본고사를 시행하거나 내신 반영비율을 낮추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부담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교육의 공공성이 무너지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공공성을 주장하면 '빨갱이들이 하는 짓이 아니냐?'고 반발할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라고 해서 공원이나 도로까지 사적 소유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학이 고집하는 논술이란 변형된 본고사로 부잣집 아이들을 골라가려는 의도가 숨겨 있다. 공교육이 아니라 상품화된 교육인 사교육은 투자액수에 따라 양질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논술점수가 좋은 학생이란 양질의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수구언론이나 유명대학이 주장하는 '우수한 학생'이란 '학력'이 아니라 '점수가 좋은 학생'이다. '학력'과 '점수가 좋은 학생'은 어떻게 다른가? '학력'이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결과요, 공교육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치다. 그러나 '점수가 좋은 학생'이란 특정 교과목, 예를 들면 예체능교과목을 포함한 전 교과목이 아니라 수능점수 비중이 높은 '국영수' 중심의 성적이다.

교육부는 더 이상 '양다리 걸치기'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한 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면서 대학이 요구하는 시장화정책은 안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교육의 시장화 정책은 결과적으로 공교육 붕괴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대학의 집단행동에 또 적당히 타협해 절충점을 찾는 선에서 봉합해서는 안 된다. '내신 1∼4등급' 만점은 안 되고, '1∼2등급은 허용'한다든지 하는 타협은 또 다른 불씨를 만들 뿐이다.

교육은 없고 문제풀이만 있는 교실. 언제까지 학생들을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서열을 매길 것인가? 교육부는 알아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원칙을 고수하지 않는 어떤 타협도 교육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 포트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내신#주요 대학#특목고#우수학생#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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