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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낙동강 둔치에서 뻘을 삽으로 떠서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수질오염 때문에 토양이 썩었다."

이명박 한나라당 예비후보는 시커먼 흙을 삽으로 떠 보이며 말했다. 지난 22일(금) 부산 강서구 낙동강 하구 염막 둔치에서다. 그는 수십 명의 지지자와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이 후보는 한 술 더 떴다.

"만일 부산시민들이 이 속이 다 썩은 흙을 보면 놀랄 것이다. 이래서 낙동강 물을 식수로 믿고 못 마시는 것"이라며, 오염된 하상을 준설하기 위해서라도 운하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삽 위에 놓인 소위 '썩은 흙'의 모습과 이명박 후보의 발언은 사실인양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이명박씨 삽 위에 있던 흙은…

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보여 준 염막 둔치의 '검은 흙'은 '수질 오염으로 썩은 흙'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도 검은 빛을 띤 개흙이었다. 염막둔치는 비록 낙동강 하구둑에 막혀 이제 바닷물과 만나지는 못하지만, 조수와 파도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갯벌이었다. 염막둔치가 낙동강 중상류의 모래둔덕 빛깔이 아니라 새만금의 갯벌이나 태안반도의 갯벌 색깔을 닮은 것은 이런 이유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는 이를 수질 오염으로 땅이 썩은 것이라고 했다. 썩은 흙과는 성분은 물론이고 냄새나 촉감도 비슷하지도 않고, 방문 현장에서 수백 미터 아래엔 아직도 파도가 일렁이는 남해인데, 어떻게 이런 황당한 사태가 발생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무도 당혹스러워서 환경연합 활동가들은 같은 곳을 다시 찾아봤다. 하지만 그곳에 오염된 물로 썩은 땅은 없었다.

그리고 염막둔치는 부산 시민들의 취수원과 관계가 없다. 부산 시민들의 취수원인 물금취수장과 매리취수장은 염막 둔치로부터 무려 30km나 상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낙동강 하구둑 인근의 수질 때문에 영향받는 일도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부산의 취수원이 염막둔치에 있는 것처럼, 부산 시민들이 이 물을 마시는 것처럼 발언했다. 사정을 모르는 분들이라면 까무러칠 일이고, 부산 수돗물은 절대로 못 먹을 물이라고 생각할텐데, 대통령 후보라는 분이 거침없이 그렇게 얘기했다. '이래서 낙동강 물은 먹을 수 없다'고….

준설하면 수질 좋아진다고?

또 염막둔치 인근의 수질이 낙동강의 다른 지역에 비해 나쁜 것은 낙동강 하구언이 생기면서 이곳의 강물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던 탓이다. 바닷물과 섞이지도 못하고, 강물로 흐르지도 못한 폐쇄된 수역의 강물이 상대적으로 심하게 오염된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후보가 보여준 것은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진실이지, '부산시민들이 나쁜 물을 먹고 있다'거나 '낙동강 하구가 수질오염으로 시커멓게 썩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현장은 운하가 어떻게 수질오염을 악화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교훈의 장소였을 뿐이다.

하천을 준설하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팔당호, 경안천 등의 준설 주장이 있었고, 그 때마다 환경부, 서울시, 경기도 등이 전문기관을 통해 검증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부정적이었다. 수질에 영향을 주는 호소의 저질층은 극히 일부(1㎝ 미만)에 불과하고, 이를 걷어내더라도 효과는 미미하다고 분석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후보는 부산을 찾을 것이 아니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을 찾았어야 했다. 하천준설이 별 소득이 없다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논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후보는 흘러간 얘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이 외에도 이 후보는 "수십 년간 하천을 준설을 하지 않아 하상이 매우 높아진 상태다", "하상에 퇴적된 오염물로 여름에 녹조 현상이 발생한다", "하천 오염의 근원은 수량 부족에 있다", "운하가 건설되면 갈수기와 홍수기에 물 조절이 가능하다", "하천이 준설되면 오염이 제거돼 수질 보호를 위한 정부예산이 절약된다", "운하가 건설되면 1년 내내 1급수의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다" 는 등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것들도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하상이 높아진 구간은 일부 지역일 뿐이고, 녹조 발생의 주요 원인은 높은 온도와 오염물질 유입 때문이고, 수질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염원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운하 건설은 수중댐(보) 인근의 홍수위를 상승시켜 홍수 위험을 증가시키고, 정부가 수질 개선을 위해 준설하지 않았으니 아껴질 예산도 없다. 그리고 공급되는 수돗물은 당연히 1급수인데, 도대체 1급수 수돗물을 공급하겠다는 건 또 뭔가.

▲ 낙동강 하구. 이명박 후보가 방문했던 지역은 물이 흐르지 않는 정체된 구역으로 수질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왼쪽) 을숙도 남단의 개흙. 전형적인 갯벌에서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아래 부분엔 저서생물의 이동 흔적도 보인다.(오른쪽)

과학과 상식을 조롱거리로 만드려는가

이명박 후보는 23일과 24일에도 창원, 밀양, 성주 등에서 운하를 홍보하기 위해 많은 주장을 했다. 압권은 "운하를 건설하면 대구 열섬 현상이 해소된다"는 것이었다. 경부운하만 만들면 국운이 융성한다더니, 이제 대구 옆을 흐르는 낙동강에 물이 좀 더 차 있기로서니 대구의 열섬도 해소된다는 것이다. 과학과 상식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이 후보의 행보가 부담스러울 뿐이다.

필자는 이명박 후보의 이런 황당한 실수와 무지한 발언이 반복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합리적이지 못한 발언들이 바로 잡아지지 않은 채 언론들에 중계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당일 행사에 동행한 사람만도 수십 명이고, 경부운하 계획은 10년 전부터 10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 후보의 참모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 이 후보가 참모들의 보고를 들을 겨를조차 없는지, 이 후보 앞에서 바른 말을 하는 참모들이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간단한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이 후보의 주장이 당혹스럽다.

제발 이명박 후보는 거대한 공약을 자랑하기에 앞서, 우리의 강산과 자연의 이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염형철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국토생태본부 처장입니다.


태그:#경부운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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