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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녘
요코야마 히데오의 <사라진 이틀>은 한가지 사건에 각자 다르게 반응하는 여러 가지 인간군상을 연출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전직 경찰 간부가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고 이 사건을 맡게 되어 고심하는 형사부 경찰, 경찰에서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분노하는 담당 검사, 아내를 살해한 후 자수하고도 맑은 눈빛을 지닌 범인을 변호하게 되는 변호사, 그리고 이 사건에서 어떻게든 특종을 터뜨리려고 하는 신문사 기자.

소설은 이 네 명을 축으로 하여 그들이 속한 집단의 이기성과 배타성 그리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이 어떻게 비열하게 변해가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아내를 살해한 후 이틀간 무엇을 했는지 밝히지 않는 범인. 관련자들의 관심사는 살해 후 이틀에 쏠리게 되지만 범인은 끝까지 이에 대해 함구한다. 결국 이 비밀을 놓고 각 조직들은 자신의 잇속에 맡게 사건을 왜곡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조직원들의 인생이 조금씩 드러난다.

한참을 읽다보면 결국 작가가 범인 찾기나 이틀 공백의 정체를 밝히는 것보다는 수사가 진행되어가는 상황 그 자체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욕망과 회한, 그 다채로움이라니!

스트레이트로 T대에 합격했다. 가슴은 활짝 갰다. 변호사를 목표로 한 것은 저명한 저널리스트가 쓴 '원죄사건 리포트'를 일고 감명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 하숙비, 생활비, 학원비. 아버지는 가지고 있는 논 대부분을 남의 손에 넘겨줘야만 했다.

2년 동안의 사법연수를 마쳤을 때 우에무라는 서른이 되어 있었다. 실무 수습 시절에 신세를 진 법률사무소에서 3년 동안 고용 변호사로 일하고, 국제사건을 다루는 사무소로 이적하여 2년째, 거기서 함께 일했던 형님격인 사람과 둘이서 독립하여 록본기 한가운데 민사전문 공동사무소를 차렸다.

아직 거품경제는 계속되고 있었다. 재미있을 정도로 일과 돈이 들어왔다. 우에무라는 열에 들뜬 느낌으로 정신없이 일했다. 되찾고 싶었다, 눅눅한 다다미 세 장(한 평 반)짜리 방에서 오로지 '육법전서'와 격투를 벌였던 막대한 시간을…. 아니, 더 멀리, 부모 곁을 떠나와 T대 합격을 유일의 절대 목표로 주입받은 열다섯 살의 하숙생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뒤늦게 사건에 합류하게 되는 우에무라는 소위 말하는 '개천에서 용 난' 격의 변호사다. 한참 상승 가도를 달리면서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한순간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던 우에무라.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유명세를 떨치겠다는 결심을 하고 야심 차게 사건에 뛰어들지만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라진 이틀'에 대해 입을 꾹 다물게 된다. 검사도, 변호사도 범인을 감싸주려는 공기가 감도는 이상한 살인사건.

작가의 초점이 상황전개에 따른 다양한 인간의 형상화에 있다는 걸 미리 눈치 채지 못한 독자라면 결말이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사건이 전개되면서 일어나는 관련인사들의 심리묘사에 있다.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정체에 대해 기대를 갖게 하는 '공백의 이틀'은 사실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그러므로 독자여, 결말을 너무 궁금해 하지 말고 사건 전개 자체를 흠뻑 즐기시라. 작가의 땀방울은 대부분 그쪽에 바쳐져 있으므로.

사라진 이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들녘(2004)


#추리#사건#기자#경찰#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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