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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와 쌀을 유기농으로 제공하고 있는 상지대 학생식당. 1600원에 유기농 식사를 할 수 있다.
ⓒ 함박은영
'벌레 먹고 못 생겨도 더 맛있고 안전해요!'

상지대 식당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문구다. 1600원짜리 백반을 주문하자 친환경 쌀로 지은 밥과 유기농 김치, 친환경 채소가 들어간 고기 반찬이 나온다. 막 도정을 끝낸 쌀로 지은 밥은 기름기 흐르는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싱싱한 김치는 또 어떤가. 이 김치만으로도 밥 한공기를 뚝딱 비울 수 있었다.

친환경 식단을 도입하고 있는 대학은 전국에서 상지대가 유일하다. 상지대 학생식당은 무농약 쌀과 유기농 배추로 만든 김치 등으로 식단을 선보이고 있다. 상지대의 이 같은 변화는 전 농림부 장관이던 김성훈 총장의 부임으로 가속화됐다.

김 총장은 취임 초부터 지역과 연대하는 학교·학생 중심으로 생각하는 '학생제일주의'를 주창하며 상지대 개혁에 앞장섰다. 그 시작이 바로 학생식당이었다.

"중앙대 부총장 시절 가장 하고 싶던 일이 '유기농 식당'이었다. 상지대 부임 후 인터넷에 올린 학생들 글을 보니 불평의 반 이상이 음식이더라. 질 떨어지고 맛도 없다고. 취임하며 '학생제일주의'를 표방했으니 실천을 해야하지 않나. 3월 9일 날 취임식 끝나고 4월 18일부터 친환경 식자재를 쓰자고 제안했다. 이왕이면이 지역인 원주권, 없는 것은 강원도, 그래도 없으면 전국에서 공급받아 싹 바꾸자고."

밑지고 팔아도, 뜻이 좋아 유기농김치 오케이

▲ 상지대 학생식당 메뉴.
ⓒ 함박은영
그러나 유기농 식당이 김 총장 바람대로 수월했던 건 아니었다. 첫 난관은 친환경 식자재의 비싼 단가. 적게는 40%에서 최대 두배에 이르는 가격차를 감수해야 했다. 특히 김치는 마늘부터 고추·젓갈까지 유기농을 쓰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높았다.

"장관 시절 인연으로 내가 (홍천군 남면) 명동리 이장 고문을 하고 있었는데, '뫼내뜰'에 가서 유기농 김치도 만들자고 했다. 우리가 전량 사주겠다고. 원가와의 차액은 학교 보조금으로 충당했다. '학생제일주의'라고 했으니 학생의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이렇게 해서 상지대는 현재 '영농조합법인 뫼내뜰'에서 유기농 김치를, 원주시 생활협동조합에서 쌀을 공급받고 있다. 생산자들은 시중가보다 싼 가격에 공급할 것을 약속했고, 상지대는 그들의 든든한 판매처가 됐다.

상지대에 유기농 김치를 제공하고 있는 '뫼내뜰'은 나즈막한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홍천군 명동리에 위치하고 있다. 직원 2명이 전부인 작은 규모였지만 사무실 양쪽 벽에는 농민들의 '생산계획표'가 붙어 있었다.

뫼내뜰의 연익흠 대표는 "사업성은 떨어져도 올바른 먹을거리를 제공하려는 상지대의 뜻이 좋았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상지대 총장이 누군지도 몰랐다(웃음). 1999년 6월에 내가 명동리 이장이었는데, 그 때 '친환경 농업 육성 시범마을' 사업을 규모있게 시작했다. 당시 농림부 장관이던 김성훈 총장님이 강의차 강원도에 오신 김에 유기농업 현장을 보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79차 이동장관실이 명동리에서 운영됐다. 그 때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거다. 지금 김 총장님이 명동리 이장 고문인데, 그걸 아주 자랑스러워하신다(웃음)."

장관 시절 맺은 김 총장과 뫼내뜰의 인연은 김 총장의 상지대 부임 후까지 이어졌다. 뫼내뜰 덕분에 상지대는 1600원 그대로 100% '유기농 김치'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김 총장님께서 상지대에 부임하셨을 때, 명동리 김치공장은 아직 준비 단계였다. 총장님이 오시더니 쌀부터 바꿨고, 김치를 바꾸려는데 비싸니까 1㎏당 3000원씩만 하자고 그러시더라(웃음). 뜻이 좋아 '그럽시다' 그랬다. 지금 상지대에는 맛김치, 포기김치 정도만 들어가고 있는데, 납품 규모가 1억이 좀 넘는다. 뫼내뜰의 연간 전체 수익 7억원 중 약 13% 정도. 어떨 때는 원가에 못 미칠 때도 많다(웃음). 그래도 학생들에게 올바른 먹을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자체가 좋았다. 총장님이나 학교나 큰 생각을 가졌지 않나."

심심한 유기농 밥상이 몸에는 좋다

▲ 상지대에 유기농 김치를 제공하고 있는 연익흠 뫼내뜰 대표.
ⓒ 함박은영
현재 상지대 식단에서 친환경 식자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40% 정도. 하지만 상지대의 목표는 100% 유기농 식자재를 사용하는 거다. 예상 단가는 한끼 당 4000원 정도. 저단가로 식사를 제공하는 대학 특성상 아직은 전품목으로 확대하는 것은 어렵다.

또 품목별 유동성이 커서 소수 농가와 직거래가 어렵다고. 대량 생산 후 저장해야 하는 뿌리채소의 경우, 수량 파악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는 관행 농법과 달리 유기농업은 몇 배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잡초는 일일이 손으로 제거하고 농약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과 '농심'이 없으면 유기농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소비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농군으로서의 자부심, 이것이 원동력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유기농을 선택하는 '소비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다.

"가격에 비해 괜찮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예전보다 식당이 많이 좋아지고 사람들도 많다. 학교의 친환경적인 이미지에 식당이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학교마다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지 않나? 그런 면에서 환경을 중시하는 우리 학교의 전망은 좋다고 생각한다." (이영훈, 관광학부 3학년)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에 좋다는 유기농 식사가 가능하니까 좋다. 단점이라면 메뉴가 그다지 다양하지는 않다는 것. 특별히 유기농이라는 생각을 하며 먹지는 않지만, 대체로 만족한다." (방선영, 바이오산업공학 4학년)


상지대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의 급식팀장 조형선(35)씨는 "특별히 맛있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식재료만 바꾼다고 해서 맛이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아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고, 맛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학생들이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건강을 생각해 100% 유기농 식자재가 목표다.

학교와 농촌이 함께 '콩콩' 뛴다

▲ 상지대 학생식당에 제공되고 있는 유기농쌀.
ⓒ 함박은영
현재 학생식당에 쓰이는 쌀은 100% 유기농이 아니라 무농약. 김치는 100% 유기농이지만 콩나물·잡곡류 등의 일부 품목만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고 있다. 유기농 식단을 위해 상지대가 생협에 지원하는 지원금은 2007년에만 약 1억원. 생협 자체에서도 유기농 콩나물과 친환경 채소류를 구입하고 있다.

앞으로는 학교의 지원을 줄이고 자생적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동시에 유기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학교 내의 국제친환경유기농센터와 원주지역 생협 등과 같이 '된장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근래 '콩'을 원료로 한 식재료가 유전자 조작 의심을 많이 받고 있다. 이에 친환경 콩을 이용해 직접 간장·된장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된장·간장 등은 한국의 상징적인 음식이지 않나. 아직은 준비 단계인데 2008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생협과 함께 '된장 프로젝트'를 꾸리고 있는 '국제 친환경 유기농 센터'는 지난 2005년 유기농업의 저변 확대와 전문가 인력 양성을 위해 세워진 부설 기관이다. 현재 유기농센터는 유기농업에 대한 교육과 함께 유기 농산물의 인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작년 1월에는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의 정식 회원이 되기도 했다.

현재 센터에는 20여개 친환경 농업단체, 20여명의 초빙 교수와 연구원들이 있다. 센터는 새로운 유기농 기술을 개발하고 국제학술심포지엄 개최, 일반 시민 대상 유기농 교육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출판사 '자연과 사람들'을 설립, 유기농 관련 책자도 펴내고 있다. 센터장을 맡고 있는 우영균 교수는 센터가 "지역과 학교를 있는 중계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국 모든 학생 식당에서 '자연과 친한' 1600원짜리 밥을 배불리 먹는 날이 올까.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상지대의 '건강한 식탁'에 학교 급식, 아니 한국 먹을거리의 미래를 건다.

"친환경쌀, 농부가 먹어도 맛있다"
원주시 호저면 광경리 농산부락 생산자 김영철

-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약을 못 치니까 모를 심으면 모보다 풀이 빨리 큰다. 그걸 다 손으로 매야 하니 어렵다. 우리 영산부락은 농활 나온 대학생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래도 몇 년 지나서도 힘드니까 그때 오리농업을 하기로 했다. 지금은 오리나 우렁이를 넣어 쌀농사를 짓는다. 힘들지만 땅이 살아나니까 좋다. 또 친환경이 그나마 판로가 괜찮으니까..."

- 관행농업이 아닌, 유기농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같은 쌀이지만 친환경으로 한 게 우리가 먹어도 밥맛이 괜찮다. 힘들어도 앞으로 장래를 보는 거다. 판로도 괜찮고 노력한 만큼 대가를 주니까.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 이 근방엔 없다. 또 나는 농사 오래하니까 으레 친환경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 소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농촌의 실정이 친환경을 선택하고 있다. FTA 등으로 친환경 유기농산물이 수입되면 더 어려워질 텐데. 소비자들은 친환경이 가격이 비싸니까 안 드신다. 판로가 가장 문제다. 내가 50가마 수매하면 30가마 밖에 못 판다. 농사는 월급제가 아니니까 영농자금이라도 빌려 쓰면 가을에 갚아야 하는데 판매를 못하니까 (어렵다). 요즘 5일제 근무하니까 직접 마을에 오셔서 농사 과정도 보고 소비를 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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