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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생, 2002학번을 상징하는 '이해찬 1세대' 이후 '혼란'은 더욱 가중된 듯하다.
1983년생, 2002학번을 상징하는 '이해찬 1세대' 이후 '혼란'은 더욱 가중된 듯하다. ⓒ 동영상 <죽음의 트라이앵글> 캡쳐
나는 말 많고 탈 많던 '이해찬 1세대'였다. 1983년에 태어난 02학번이다. 중학생 무렵부터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 간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을 정도로 교육정책은 혼란을 거듭했고,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의 여파는 그 혼란에 불을 붙였다.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2001년 겨울은 학교 공부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나조차도 당황했던 시기였다고 기억한다.

그러니, '수능'에 '올인'했던 많은 친구들은 어땠을까? 누구나 자신이 겪은 시절이 가장 힘들게 마련이지만, 02학번은 그야말로 교육부의 무성의한 입시정책 혼란의 여파를 그대로 뒤집어쓴 '저주받은 세대'였다.

하지만 그 이후 '입시정책'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자주 바뀐 탓에 지난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2001년 이후로 수험생이 아닌 나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최근 들리는 소식은 '내신등급제'를 놓고 교육부와, 서울대 및 주요사립대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난데없는 '통합논술 비중 강화' 소식에 고3 학생들이 더더욱 당황했다는 내용이다.

교육부는 '내신등급제'를 강하게 추진할 생각이지만, '내신'의 변별력을 믿지 못한다던 주요 대학들은 '수능 비중'을 높이다가 다시 '내신등급제'를 채택할 분위기인 듯하다.

교육부와 주요 대학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피해를 뒤집어쓰는 이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수험생일 뿐이다.

잊혀진 '죽음의 트라이앵글'

내신, 수능, 논술. 하나라도 처지면 그 학생의 '입시'와 '인생'은 죽는 것이다.
내신, 수능, 논술. 하나라도 처지면 그 학생의 '입시'와 '인생'은 죽는 것이다. ⓒ 동영상 <죽음의 트라이앵글> 캡쳐
2006년 3월, 전국을 경악시킨 '죽음의 트라이앵글' 동영상은 잊혀진 현실이 됐다. 나는 그 동영상을 보면서, 2003년에 '강남 학원가 세무조사'를 주목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품었던 의혹과 의문점을 이 동영상도 그대로 제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교육비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고, 학교 교사들의 반발로 수능 비중을 낮추고 내신 비중을 높였다.

그러나 '우린 뭘 먹고 살란 말이냐'라고 반발하는 학원들 때문에 수능은 유지됐고 대학들도 자기 목소리를 높여 논술 등의 대학별 고사를 치르길 원했다. 결국 완벽한 집단간의 균형을 이루는 삼각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균형은 누구를 위함인가?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동영상 <죽음의 트라이앵글>에서-


그 당시, 이 동영상을 지켜봤던 일부 기성세대는 "너희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특유의 반응만을 보여 아쉬웠다. 본인이 고생했던 시절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은 어른의 안좋은 버릇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들 스스로도 오락가락한 입시정책 속에서 자녀들을 위한 막대한 사교육비에 힘겨워하면서도 문제의 본질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교육비 증가는 입시정책의 혼란과 비례한다. 수능, 내신, 논술 등에서 저마다의 기득권과 이권을 뚜렷하게 거머쥔 정부, 학교, 대학, 학원, 언론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 혼란은 앞으로도 더 하면 더 했지 완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기성세대는 "너희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상황이 아니다. 이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 사회 특유의 '대학병'에 힘겨워하는 학생들 못지않게, 본인들도 피해자라는 점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일터에서 힘들게 번 돈은, 혼란스러운 입시정책 속에서 만져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출산율 저하? 입시정책의 영향도 있다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는 이 난맥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저마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입시제도를 이용하려는 이들의 목소리만 보일 뿐이며, <한겨레신문> 기사에도 나왔듯이 그 틈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챙기는 '학원가'만이 눈에 보일 뿐이었다.

'대학 만능 사회' 대한민국이라지만, "너도 나도 대학생"인 이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것이 갖는 매력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하급 인생'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기에 '대학'은 필히 가야만 하는 것이다. '대학'은 대한민국 사회의 '빅 브라더'다.

첨예한 입장과 '기득권 충돌'이야말로 입시정책의 혼란, 나아가 '출산율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첨예한 입장과 '기득권 충돌'이야말로 입시정책의 혼란, 나아가 '출산율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 동영상 <죽음의 트라이앵글> 캡쳐
한편으로, 정부는 '출산율 저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하다. 많은 아이들을 낳은 부부를 집중적으로 홍보하기도 하며, 세제 혜택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출산율 저하'의 결정적인 이유는 '교육비'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졸업까지 아이에게 들여야 할 돈, 부자가 아닌 이상 신혼부부로서는 그저 두렵고 막막한 것이다.

이미 결혼해 아이를 둔 부부 중, 해외로 갈 능력과 기회가 있는 부부들은 주저없이 이민을 가고 있으며, 오늘도 이 '입시지옥'을 피해 해외에서 공부하는 아이와 뒷바라지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는 '기러기 아빠'는 외로움에 눈물짓고 있다.

이 눈물은, '내신'을 이용해 대학가에 목소리를 세우려는 정부, '수능'과 '논술'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대학, 대학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대학을 무조건 옹호하는 일부 족벌 언론, 그리고 여러번 이야기했듯이 그 틈을 타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학원가, 학원을 옹호하는 경제 전문 언론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눈물'과 '죽음'을 유도하는 입시정책과 그 이면에 숨은 진짜 이유인 '대학병', 대한민국 사회는 이들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변화될 수 없다.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공부하는 수험생과 그 부모님에게 안타까움과 경의를 동시에 표하고 싶을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능#내신#입시#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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