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캔버스에 유화 53×72.2cm 2003. 작가의 정체성 찾기와 여성적 나르시시즘이 혼합된 느낌을 준다
'나는' 캔버스에 유화 53×72.2cm 2003. 작가의 정체성 찾기와 여성적 나르시시즘이 혼합된 느낌을 준다 ⓒ 김형순
'강혜경, 나는 화가다'전이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2층에서 6월 19일까지 열린다. 작가 강혜경은,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10여년 넘게 수없이 묻다가 드디어 나는 화가다, 라고 선언하며 개인전을 처음 열었다.

'혼란'에서 보면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그런 대답을 나올 때까지 고민과 방황이 많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는 미술전공자가 아니었기에.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회는 특별하다. 작품의 품격은 높고 작품의 내용은 독특하다.

작가는 처음 그림 그릴 때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한다.

'혼란' 캔버스에 유화 38×45.5cm 2001. 작가의 혼란한 정체성을 묻고 있다
'혼란' 캔버스에 유화 38×45.5cm 2001. 작가의 혼란한 정체성을 묻고 있다 ⓒ 김형순
"초기엔 극사실주의 그림을 그렸지만 내 마음에 차지 않았어요. 아무리 그려도 나를 위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그리는 것 같아 1년간 구토가 났죠. 그래서 날 즐겁게 하는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고 노력하다 보니 그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어요. 나중에는 답답한 마음이 풀어지고 드디어 내 그림이 보였죠"

강혜경은 미술전공자가 아니기에 그림에 대한 열망이 더 강렬하고 특별한 것 같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그런 심정이라고 할까.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눈물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치르고 나서 얻어낸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느리거나 빠르게 그린 그림

'나는 화가다' 캔버스에 유화 72.7×90.9cm 2006
'나는 화가다' 캔버스에 유화 72.7×90.9cm 2006 ⓒ 김형순
그녀는 그림을 아주 느리게 아니면 아주 빠르게 그린다. 이번 전시회 부제인 '나는 화가다'는 느리게 그린 그림의 대표작이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4~6개월이 걸린다고 하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그림은 정성스럽게 공들인 만큼의 빛을 발한다.

반면 아래 '새봄이 왔어요'은 아주 빠르게 그린 그림이다. 작가는 순간의 감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빠르게 그렸다고 한다. 작가는 말을 잇는다. "야외스케치를 가서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거의 쉬지 않고 그려요. 풍경이 있어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끌려서 거기서 피어나는 풍경을 그린 거죠."

작가는 이것을 "내 가슴 사진으로 찍은 실시간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순간의 사무치는 감정을 뒤로 미루면 사라지기 쉬우므로 그런 상태를 그림에 바로 담기 위한 방안이다. 일종의 즉흥시나 즉흥연주와 같은 것으로 비오는 듯한 붓질은 마치 춤추는 것 같다.

'새 봄이 왔어요' 캔버스에 유화 72.7×90.9cm 2007. 매우 빠른 붓질로 그린 연작 중 하나
'새 봄이 왔어요' 캔버스에 유화 72.7×90.9cm 2007. 매우 빠른 붓질로 그린 연작 중 하나 ⓒ 김형순
사랑의 황홀경과 슬픈 사연

사람 마음속에 일어나는 각가지 감정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작가마다 다를 것이다. 강혜경은 노랑, 빨강, 파랑, 까망 바탕에 새, 뱀, 꽃, 나무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아이콘을 사용하고 이야기소재를 넣어 그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색채와 형태는 야수파나 표현주의를 연상시킨다.

그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사랑이 주는 설렘과 그 감정의 격한 파장을 그리고 있다. 동시에 여성적 관능미도 깔려있다. 사랑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듯 봉곳하게 부풀어 오른 여성의 젖가슴이 애교스럽다.

'사랑 사랑 사랑이여' 캔버스에 유화 130.3×162.2cm 2005. 사랑의 황홀경에 빠진 여자 그러나 남자는 손에 다른 꽃을 쥐고 있다
'사랑 사랑 사랑이여' 캔버스에 유화 130.3×162.2cm 2005. 사랑의 황홀경에 빠진 여자 그러나 남자는 손에 다른 꽃을 쥐고 있다 ⓒ 김형순
이런 건 여성의 사랑받고 싶은 욕망의 간접적 표징이기도 하리라. 작가의 설명으로는 젖꼭지와 입술의 분홍색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것을 상징하는 색이란다.

그의 그림은 여성적 나르시시즘의 발로인지 사랑으로 인한 남녀갈등을 다룬 작품이 많다. 그런 와중에서 발생하는 슬픔과 아픔을 희화적으로 그렸다.

그러나 위의 '사랑 사랑 사랑이여'를 보면 여자는 사랑에 도취하여 황홀경에 빠졌으나 남자는 너무도 행복해하는 그 여자 앞에서 다른 꽃을 쥐고 있다. 남녀의 사랑이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상징한다.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도 어느새 등을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집 앞' 캔버스에 유화 72.7×90.9cm 2005. 여자의 연인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데 그들의 사랑도 역시 불안하다
'그 집 앞' 캔버스에 유화 72.7×90.9cm 2005. 여자의 연인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데 그들의 사랑도 역시 불안하다 ⓒ 김형순
또한 '그 집 앞'도 역시 사랑의 빗나감을 풍자하고 있다. 작품에서 보듯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갔으나 그 남자에게는 또 다른 여자가 있지만 그들 역시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처지다. 여성적 입장에서 느끼는 사랑에 대한 연민과 동정, 환상과 실망을 그림에 담았다.

작가는 이런 오랜 방황 끝에 잉태한 작품을 보며 자신의 작은 소망을 피력한다. "제 작품이 상처를 입었거나 미움을 샀거나 또는 시험 등에 실패하는 등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치유제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삶에 대한 고마움을 그림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새삼 즐겁다고 말한다.

'세상 속으로' 캔버스에 유화 72.7×90.9cm 2004.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승리의 표시를 하며 세상으로 나간다
'세상 속으로' 캔버스에 유화 72.7×90.9cm 2004.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승리의 표시를 하며 세상으로 나간다 ⓒ 김형순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화가로서 정체성을 되찾고 삶의 역정에서 분명한 자화상을 그리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세상 속으로'에서 보듯 '비(V)자'는 승리와 희망과 용기를 뜻할 것이다. 분열된 자아를 접고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내며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보려는 염원을 품고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 한다.

작가는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전시실에는 작가가 유난히 좋아하는 개나리꽃들이 그림 속에 환히 피고 있다. 그동안 고단한 일과도 여유롭고 따뜻한 품으로 껴안으며 화폭에 아름다운 노래를 수놓았다.

덧붙이는 글 | <전시장 소개> 
가나아트스페이스 2007년 6월 13일~19일 
전화 02-734-1333.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19 

<작가소개> 
강혜경 1961년생 kangkyung777@hanmail.net 
개인전 2007 가나아트스페이스.  단체전 한국미술평론지 선정작가전 외 다수 
수상 1999 경기미술대전 입선 1995 미술의 해 관악현대미술대전 대상


#강혜경#나는 화가다#가나아트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