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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을 읽는다. 서울 지하철을 각 호선별로 구분해 입체분석한 기획 기사가 있다. 1호선에서는 '사람냄새'가 나고 3호선은 '부자동네'들이 모여 있다고? 흥미롭게 읽고 있는 나는 1년에 한두 번 상경할 때마다 지하철 타기를 어려워하는 시골아이다. 대학에 가면 꼭 지하철을 타고 이 기사가 그리는 궤적을 따라가야지, 다짐하는 7년 전 촌스러운 고3 학생인 내가, 거기 있다.

2000년,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전학 간 낯선 학교였다. 외로웠던 나를 학교의 작은 도서관만이 달래주었다. 고3이란 '신분'을 잊고 책에 몰두했다. 그때 <시사저널>과 <한겨레21>을 접한 것은, 가치관이 아직 성립되지 않았던 당시의 내게 행운이었을까.

잡지대출은 불가능했기에 난 주로 식사시간과 쉬는 시간을 활용해 두 잡지를 읽었다. 무지한 당시의 내게 <시사저널>의 사회성 기사들은 버거웠기에, <한겨레21>에서 사회성 기사들을 읽은 후 <시사저널>의 문화면을 펼쳤다. 너무 재미있어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거르면서 읽은 적도 많았다.

6월,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TV를 보여준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그 후에 <시사저널>을 본다. '한쪽 눈으로만 울고 다른 눈으로는 이 비극이 일어난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는 글이 있다. 이산가족 상봉의 '호화로운 배경'을 안타까워하며 '앞으로는 훨씬 더 검박하게 통일의 길을 향해야 한다'는 글도 있다.

신선하고, 글이 너무 유려하다. 김훈을 알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시사저널>을 앞부분부터 펼친다. 김훈의 글을 읽는 행복은 그러나 오래가지 않는다. 파문이 일어난 후 대담을 주선한 <한겨레21>의 '해명 칼럼'을 읽으며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내가, 거기 있다.

▲ 금창태 사장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진이 서울 용산 서울문화사 앞에서 "시사저널을 독자 품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 다음해, 다시 <시사저널>을 읽는다. '고재열'이란 이름을 머리에 입력시킨다. 여러 언론들이 대학가의 '과격시위'를 비판할 때, 그는 이색적이고 기발한 여러 대학생들의 시위방법을 소개하며 '희망의 증거'라고 규정한다. 대학 학보사의 수습기자인 나는 <시사저널>의 이 기사를 보고 기성언론들에도 '희망'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다.

젊음이 끓어오르는 시기, <시사저널>은 종종 내 치기 어린 행동의 원인이 된다. '4·10 부평사태'를 크게 보도한 <시사저널>을 보고 분노해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채팅방에서 대우차 노조원들의 피투성이 사진을 올리며 열변을 토하다가 결국 '강퇴' 당하는 내가 '조중동'에게 날선 비판을 가하는 <시사저널>을 외우다시피 했지만 '안티조선' 1인 시위 중 한 할아버지의 비판을 받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던 내가, 거기 있다.

또다시 <시사저널>을 읽는다. 이문재 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인터뷰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2002년, 수강하고 있는 한 수업에서 강사가 '시월'이란 시를 추천해준다. 시인 이름이 낯설지 않다. 역시 '그 이문재'다. 그 후로 10월이 되면 난 항상 '시월'을 읽는다.

2002년의 <시사저널>에서는 내게 낯익은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청소년 투표권 운동을 벌이던 준표형(한국외대 박준표)도, 대학생 선거참여 홍보 포스터의 모델이 된 동기 혜진이(홍익대 전혜진)도 <시사저널>에 실린다. 알량한 나는, 입을 쭉 빼고 나도 <시사저널>에 실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대책 없는 명예욕을 부리는 나는 하지만 <시사저널>이 2002년 올해의 인물로 '행동하는 네티즌'을 선정했을 때 다시 고마워진다. 그래, 이 속에 나도 있었지. 같이 촛불을 들고 있었잖아. 기사를 읽으며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하는 내가, 거기 있다.

그리고 <시사저널>을 읽는다. '해운대 24시' 기사를 보고 그 발랄한 형식에 놀라워한다. 이 형식을 따라서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고즈넉해진다. '사정상' 휴학한 2003년의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일부러 문화면을 자주 본다. <시사저널>이 '선택한' 영화들을 따라서 본다. <붉은 돼지>와 <올드보이>의 영화평을 읽은 후에 그 치밀한 분석을 질투한다. 크레딧에는 '노순동'이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다. 이 아저씨(!)처럼만 영화를 보는 눈을 가지기를 소망하는 내가, 거기 있다.

그래서 <시사저널>을 읽는다.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온 집에서 고맙게도 <시사저널>을 정기구독하고 있다. 2004년 총선, 고종석의 칼럼을 읽은 후 민노당을 찍은 나는 집에서 <시사저널> 지난 호를 뒤적인다. 다음날이 입대일이다. 한숨을 쉬며 지난 잡지들을 뒤적이다 서명숙의 마지막 편집장 칼럼을 발견한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후배에게'. 읽고 또 읽고 또 읽는다. 당신과 같이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내가, 거기 있다.

몰아서 <시사저널>을 읽는다. 군대는 <시사저널>을 볼 여유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길지 않은 휴가 동안 적어도 하루는 집에 쌓여 있는 <시사저널>을 탐독한다. 문정우 편집장의 다분히 자기고백적인 칼럼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조갑제의 이적행위'를 비꼬는 칼럼을 읽고는 혼자 깔깔대는 내가, 거기 있다.

2006년의 나는 <시사저널>을 읽기보다 <시사저널>에 관한 기사를 더 많이 찾는다. '삼성기사 삭제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한겨레21>과 <미디어오늘>을 통해 전해들은 후부터다. 고종석의 말처럼, 나도 이윤삼 편집장의 편지를 다시 보기를 바란다. 여러 인터넷 언론을 돌아다니며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뉴스를 구한다.

기자들에게 무더기로 징계가 가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와중에 <시사저널> 경영진이 <중앙일보> 계열사와 콘텐츠 제휴를 체결했다는 뉴스도 보인다. 그나마 몇 되지 않는 '진짜 언론'인데, 어쩌려고 저러지? <시사저널>이 흔들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불안해하는 내가, 거기 있다.

▲ 시사저널 사장 주도로 일명 '짝퉁 시사저널'이 비상근 편집위원들에 의해 발행되고 있는 가운데 '시사저널 불법 제작 중단 촉구 기자회견'장에서 고재열 기자가 '짝퉁 시사저널'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7년의 나는 <시사저널>을 읽지 않는다. 읽을 수가 없다. '삼성기사 삭제사건'은 어제부로 1년이 지나버렸고, <시사저널> 기자들은 아직도 파업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이신문들은 일언반구도 없다.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입을 굳게 닫는다. 그 기묘한 침묵이 고종석과 몇몇 언론들을 더 빛나게 만들지만, '주류'가 침묵하므로 그 '주류'의 영향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사저널 사태'를 알지 못한다.

<시사저널>을 읽을 수 없는 나는 답답하다. 자취하는 집 앞에 있는 동국대 도서관을 찾는다. 편철돼있는 <시사저널>을 창간호부터 보기 시작한다. 91년도에 실린 많은 분신사진을 보고,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정원식 국무총리 폭행사건' 기사를 읽는다.

가끔씩 최근 나오는 '짝퉁' <시사저널>을 펼친다. 소설가, 언론인, 편집위원, 그리고 'JES' 라는 크레딧이 넘쳐난다. 맨 뒤로 넘기자 "FTA는 우리의 운명이다"라는 시론 제목이 보인다. 순간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는다. 애써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는 내가, 거기 있다.

<시사저널>을 읽으며 <시사저널>과 쌓아온 지난 7년의 세월은, 짧아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큰 의미가 담긴 '작은 역사'다. 계속 이어가고 싶은 나의 이 '작은 역사'를 도대체 누가, 어떤 권리로 망가뜨리고 있는가. 도대체 왜 이 역사를 일그러뜨리고 있는가.

"우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쉬운 방법으로 슬픔에 대처했던 셈이다"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시사저널>을 다시 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살아 숨 쉬는 <시사저널>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펜을 놓은 채 싸우고 있는 그들을 찾아가는 일일 터이다. 그렇게 나의 작지만 소중한 역사를 이어가기를 원하는, 다짐하는 내가, 그리하여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시사저널#한겨레21#시사저널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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