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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효소는 여름철 음료로 아주 훌륭하다
매실효소는 여름철 음료로 아주 훌륭하다 ⓒ 오금숙
여름철이 돼 가면 아이들과 아이스크림, 청량음료를 놓고 전쟁을 치러야 하고 머리가 조금 큰 아이들은 부모 몰래 자신들의 욕구를 슬쩍 채우기 위해 구멍가게로 달려가기도 한다.

몇 년 전 친척분이 담근 매실음료를 처음 접했을 때 여름철 아이들의 욕구를 해결하는데 이만한 것은 없겠다고 판단되었다. 그때부터 유기농매장에서 판매하는 매실효소나 장아찌를 구입해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효소 한 병 사면 며칠을 가지 못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마셔대는 통에 말이다.

"아!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몸에는 좋지만 가격이 꽤 비싼 매실효소나 장아찌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없을까? 그때까지 나는 그러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특별한 노하우가 있거나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에서만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잘 씻어서 물기를 없앤 매실과 설탕을 켜켜히 담는다
잘 씻어서 물기를 없앤 매실과 설탕을 켜켜히 담는다 ⓒ 오금숙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나는 한 번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고층으로 올라 갈수록 발효음식이 안 된다는 소문을 듣고 있던 터라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시작했다. 우리집은 제주시 도심 한가운데 있고 아파트 7층에 위치해 있다.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라고 봤다.

우선 무농약매실 10kg을 구입해서 효소만 담가보기로 했다. 아는 분이 전라도 지리산 가까운 곳이 친정이고 거기서 매실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그분을 통해 구입했다. 거의 방치하다시피 농사지은 그 매실은 모양새도 좋지 않고 자잘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시장에 나와 있는 것보다 아주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5일장에 가서 자그마한 항아리를 하나 구입하여 깨끗이 씻어 말려두고 예전에 아이들이 썼던 기저귀천을 삶아 말려두었다.

맨위를 설탕으로 폭 덮는다
맨위를 설탕으로 폭 덮는다 ⓒ 오금숙
도착한 매실에서 썩은 것들을 골라내고 잘 씻어 건져 하룻밤 정도 물기가 잘 빠질 수 있도록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놔두었다. 다음날 항아리에 매실과 황설탕을 1:1 비율로 켜켜이 담았다(설탕이 조금 많아도 괜찮음). 무시무시하게 들어가는 설탕량에 놀라겠지만 절대 설탕을 적게 넣으면 안 된다. 잘못하면 알콜발효되어 술맛이 나기 때문이다. 설탕도 흰색, 검정, 황색 모두 다 써봤지만 효소 맛은 황색설탕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고 내 느낌으로는 그런 것 같다.

매실·설탕·매실·설탕 하는 식으로 차곡차곡 담은 다음 맨 마지막에는 설탕으로 덮어주는 것이 좋다.

아이들 기저귀로 썼던 천으로 항아리를 잘 봉한다.
아이들 기저귀로 썼던 천으로 항아리를 잘 봉한다. ⓒ 오금숙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매실효소를 담그고 난 이삼일 후부터 매일 항아리를 열어 잘 휘저어주어야 한다. 설탕을 빨리 녹여서 매실과 잘 어우러져야 효소 맛이 좋다. 약 열흘에서 보름 동안 설탕이 완전히 녹을 때까지 매일 항아리를 열어 두 손으로 휘저어 준다. 나중에 물이 많이 생기면 나무주걱을 이용해도 좋다. 설탕이 다 녹으면 뚜껑을 닫고 100일 정도가 될 때까지 그대로 둔다. 100일이 되면 매실씨에서 독성이 나온다고 하니 매실을 건져내고 효소액만을 숙성시킨다.

건져낸 매실은 그냥 버리지 말고 살이 붙어 있는 것은 떼어내어 장아찌를 담가 먹고 매실씨로는 베개를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다.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게 매실인 것 같다.

장아찌를 만들려면 씨를 발라내야 하는데 이 방망이가 아주 유용하다
장아찌를 만들려면 씨를 발라내야 하는데 이 방망이가 아주 유용하다 ⓒ 오금숙
싱싱하고 아삭한 장아찌를 만들고 싶으면 굵고 단단한 매실을 골라 살만을 발라낸다. 도마에 매실을 얹어놓고 방망이로 내리치면 살을 발라내는 작업이 아주 쉽다.

매실을 한손으로 잡고 방망이로 내리친다
매실을 한손으로 잡고 방망이로 내리친다 ⓒ 오금숙
그것을 역시 설탕에 1:1 비율로 절여 놓았다가 10일쯤 지나면 건져서 물기를 꼭 짜낸다. 건더기만 건져내고 나머지는 효소 항아리에 합치면 된다.

매실을 세워 방망이로 내리치면 2 ~4쪽으로 잘 쪼개진다.
매실을 세워 방망이로 내리치면 2 ~4쪽으로 잘 쪼개진다. ⓒ 오금숙
건더기를 고추장에 박아두었다가 먹어도 되고 냉동했다가 먹을 만큼씩 꺼내서 그때그때 버무려 먹어도 된다.

매실효소를 담근 지 100일이 지났다. 드디어 효소를 맛보기로 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컵에 적당히 원액을 넣고 생수를 타고 얼음을 한 개씩 띄웠다. 결과는 의외로 훌륭했다. 남편은 "사다먹은 매실효소보다 더 맛있다"며 감탄해주었고 아이들도 맛있다고 더 달라고 했다.

그 뒤로 나는 매년 매실효소를 담그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어떤 분이 담근 지 5년 된 매실효소를 맛보게 해 주었다. 아파트 5층에서 발효시킨 것이라고 했다. 이제까지 먹어본 그 어떤 매실효소보다 맛있고 오묘했다.

'아~! 오래 숙성시켜 먹어도 좋겠구나. 아파트라서 안 될 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많은 양의 매실을 구입해서 담그기로 했다.

효소 항아리로 가득한 우리집 베란다
효소 항아리로 가득한 우리집 베란다 ⓒ 오금숙
해마다 6월이면 우리집은 매실 향으로 진동한다. 이제는 이웃에도 소문이 날 대로 나서 아예 공동으로 매실을 구입한다. 그리고 효소를 담을 항아리들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아파트 공동체에서 이러한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우리집 베란다는 이제 효소 항아리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아직은 엄두가 안 나지만 된장·고추장·간장도 해볼 생각이다.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매실#효소#장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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