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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우라늄탄은 없애야한다는 조문식씨
열화우라늄탄은 없애야한다는 조문식씨 ⓒ 김삼석

가게 탁자에서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전쟁을 연습하는 전투기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하루에만도 50회에서 120회 전투기 소음이 시민들의 귀를 찢는다. 이제는 너무나 많이 들어 이런 소리에 적응이 되었을까. 조 사장이 우스갯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비행장에서 축하비행(?) 해준다?

"가게에 손님이 오면 '사장님 오셨다고 비행장에서 축하비행해주는 데요'라고 말하면서 웃곤 해요"라며 비행소리를 들으며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현실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요즘 같이 날도 더운데 가게 문들 닫고 전화기 들고 안에서 받아야 하는 심정 아세요"라며 전투기소음이 얼마나 일상생활을 짓누르는 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조 사장은 전투기가 뜨는 세류동에서 살면서 전투기 소리가 제일 심한 서둔동 직장으로 출근해 사실상 24시간 전투기소리와 함께 하고 있는 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대생활(1988년)도 수원비행장(공군10전투비행단)에서 했다. 아주 대단한 인연인 셈이다.

최옥순 수원비행장 이전을 바라는 시민연대 대표(왼쪽)와 조문씨.
최옥순 수원비행장 이전을 바라는 시민연대 대표(왼쪽)와 조문씨. ⓒ 김삼석

서둔동에서는 전투기의 굉음이 세류동보다도 4배나 심하다며 자리를 같이 한 최옥순 수원비행장 이전을 바라는 시민연대 대표가 한마디 거들었다. 세류동에서의 전투기 소음은 멀리서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로 들리는 정도. 그러나 서호초등학교 인근도 항공측정 97웨클(웨클은 항공측정 단위 데시벨(소음측정 단위)보다 -5정도 낮음)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누군가는 해야죠."
그는 지난 달 25일 수원비행장 이전을 바라는 시민연대(대표 최옥순)가 수원비행장 앞에서 개최한 '수원비행장 이전을 위한 수원시민 1만인 서명운동' 기자회견에도 참여하는 등 바쁘게 시민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사실 회견하는 날에도 굉장히 바빴는데 잠깐 시간을 내어 모래알이 모이듯이 도움이 된다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거죠. 바쁘지 않을 때 한번 모아주고 뜻이 있으면 한 번 더 모이고…."

"보상이 먼저가 아니라 비행장 이전이 먼저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지역에 돌아오자마자 지역사람들이 소음보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고 묻지만 조 사장은 보상관계는 잘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보상이 될 거 같냐고. 보상이 먼저가 아니라 비행장 이전이 먼저"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이제 수원 개발은 서수원 하나만 남았어요, 수원 개발을 위해서라도 비행장은 빨리 떠나야 해요. 얼마 전에 매향리 미군 폭격장도 미군들의 낙원이나 마찬가지 아니였나요. 비록 이전을 시키기는 했지만 이런 일도 솔직하게 남의 일이 아닌 심각한 거죠"라며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해야한다는 의식을 보여 주었다.

훈련기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전투기 소리가 나고, 훈련기간이 아닌 때는 오후 6시까지라는 게 그의 직장 생활 속에서 소음을 측정한 시간이다.

최 대표가 옆자리에서 수원비행장의 방사능무기인 130만발의 열화우라늄탄 문제를 지적하자 조 사장은 자신의 군복무시절에도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본 적이 있다며 최첨단 무기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열화우라늄탄 없어져야 한다"

"열화우라늄탄이 유쾌하지는 않다. 어제도 러시아가 미국과 군비경쟁을 한다는 뉴스를 봤는 데...무기를 줄여서 평화로 가야한다."

"열화우라늄탄. 이게 우리가 갖기 싫다고 이전하는 게 아니라 (열화우라늄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시민들이 어떤 게 위험한지 모르고 있다는 거다."

당시 수원비행장 복무생활시 미군들이 타일 위에서 생활했다면 한국군은 아스팔트위에서 생활할 정도로 비교되었다고 전했다. 미군들의 지대에 발을 들여 놓으면 '주한미군지역을 침투했다'며 어김없이 딱지가 발부되었다는 것.

"제가 군생활을 할 때는 에프(F)-5라는 제공호가 있었는데 비가 오면 뜨지를 않아요. 지금은 업그레이드 되어 전천후로 뜨지만…."

그 당시 군복무생활 할 때 보다 조 사장 자신이 개인적으로 더 성숙해 있고, 지금 시민들도 많은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또 시민들이 많이 호응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2002년 효선이 미선이 사건 때 시민들이 단합되기는 했지만 월드컵에 묻혔다. 정부를 움직이게 많은 시민들이 공감대를 가했으면 좋겠다."

인터뷰한다며 빵집사장을 1시간 이상 붙잡고 있은 죄로 최 대표는 빵을 1봉지 산 뒤 총총히 빵집을 나섰다. 빵집 탁자에는 '평화 참 좋다'라는 수원의 일본군 성노예(정신대)할머니 문제와 전투기 소음문제를 다룬 평화신문이 놓여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4일 수원비행장 앞에서 열린 한미일 국제 반전평화 연대집회에서 조 사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www.urisu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문식#수원 권선 서둔동#수원비행장 이전 시민연대#비행기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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