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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a Tree
Someday a Tree ⓒ Clarion Books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무와 숲, 초록색 자연이 가져다 주는 말할 수 없는 평온과 풍요를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풀벌레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귀에 들어오고,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아이를 키우면서 얻게 된, 생각지 못했던 갚진 선물이다.

미국에 건너와 시골에 살게 되면서 드넓고 푸르디 푸른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사치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야 잠시 머물며 누리는 한시적인 호강이지만 이네들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특별할 것 없이 이렇게 누리고 산다 생각하면 가끔 질투가 나기도 한다. 이렇게 풍요로운 자연을 누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이란 나라는 이미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을 잔뜩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언젠가는 나무가 될...>(Someday a tree)은 인간에게 더없이 소중한 가치들을 말없이 베푸는 자연과 그 속에 어울려 살며 그 자연을 가슴으로 품고 사랑하고 보살피는 따뜻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또 아무 생각없이 순간적이고 이기적인 행동들로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끊임없이 자연을 훼손해가고 있는 우리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날마다 화창한 오후가 되면 주인공 소녀 앨리스는 엄마와 커다란 개 싱코를 데리고 집 근처 초원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랗고 오래된 떡갈나무 아래로 나가곤 한다. 나무 아래 누워 엄마 아빠의 옛 이야기와 이웃들의 지난 이야기들을 엄마로부터 전해 듣기도 하고, 책도 읽거나, 깔깔대며 뒹굴거리다 낮잠을 자기도 하는데 그 중 앨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팔베개를 하고 누워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는 일이다.

앨리스가 태어나기 바로 전 어느 날, 이곳으로 나들이를 온 엄마와 아빠는 팔기 위해 내 놓은 목초지와 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마침 도시 생활에 지쳐가고 있던 엄마 아빠는 이곳에 옮겨와 살기로 마음을 먹게 되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커다랗고 오래된 이 나무는 앨리스와 앨리스의 가족에게 가장 좋은 친구인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버리고 간 알 수 없는 화학 물질 때문에 나무가 병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앨리스의 가족과 이웃들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소방차를 동원해 물을 뿌려 보기도 하고, 커다란 막을 쳐서 그늘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주문을 걸기라도 하듯 빨간 머플러를 나무 기둥에 둘러 매기도 한다.

간절한 소망과 여러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점점 죽어가는데, 어느 달 밤 앨리스는 문득 그동안 나무 주변에서 주워 모았던 도토리를 떠올린다. 그 중 가장 신선한 도토리 몇 알을 손 안에 고이 쥐고 다음 날 새벽 싱코와 함께 죽어가는 나무에게로 뛰어간 앨리스. 신선해 보이는 땅을 열심히 판 후 도토리를 한 알 한 알 땅에 곱게 묻는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이 도토리 중에 하나만이라도 자라난다면 그건 아주 커다란 나무가 될 거야. 지금 이 나무보다 훨씬 더 큰 나무 말야…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언젠가는 말야…."

내용이 다소 긴 편이라 우리집 4살 꼬마에겐 좀 지루했다. 그래도 나무가 병들고 죽어가는 장면에선 앨리스처럼 손을 모으며 얼굴 가득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집 밖으로 나가 보자. 운좋게 집 근처에 커다란 나무도 있고 주워 모을 도토리도 떨어져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작은 나무나 화단, 풀밭, 혹은 흙 바닥 정도를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을 듯 하다. 아이와 함께 도토리를 찾아 보자. 혹은 나뭇잎을 주워 보자. 아니면 작은 돌조각을 찾아 모아 보자.

바닥에 늘어 놓고 돌마다 나뭇잎마다 얼마나 다른지 관찰하면서 이름도 붙이고, 작은 병에 아이가 주운 것들을 모아 보게 한다. 나중에 만들기나 그리기 등을 할 때 좋은 재료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그저 사소한 것들을 주워 모으고 관찰하며 엄마랑 아빠랑 수다 떠는 시간 자체가 의미롭다. 아이는 그 작은 병에 추억을 담아 둔 듯, 마법의 힘을 숨겨 둔 듯, 그렇게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Someday a tree > / by Eve Bunting, illustrated by Ronald Himler / Clarion / 1993


#나무#영어그림책#도토리#환경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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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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