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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상당히 치열하다. 서로가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잃어버린 10년' '민주세력 무능론'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언어도단"이라고 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중상모략"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은 정반대다. 두 전·현직 대통령의 이런 주장이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이왕 시작된 논쟁이라면 논점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평가기준이 잡힌다.

한나라당의 나경원 대변인이 정리한 게 있다. 몇 개의 묶음이다. ▲저조한 경제성장률과 민생고 ▲북핵으로 인한 남북관계 불안과 대선 이벤트로 변질된 남북정상회담 ▲부동산과 교육문제 ▲일부 민주화세력의 부패 ▲노 대통령의 헌법 무시태도 등이다.

'자승자박'이란 생각이 퍼뜩 든다. 한나라당이 제시한 논점이 한나라당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인식을 감출 수 없다.

'대선 이벤트로 변질된 남북정상회담'은 아직 가정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논외로 하자. '북핵으로 인한 남북관계 불안의 원인'은 따로 짚어야 한다. 이 문제의 근원을 북미 대립관계가 아니라 남한 내부요인에서 찾을 것이라면 시원을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잃어버린 10년' 논쟁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이 집권 여당이던 94년에 조성된 북핵 위기가 원조다. 불안 정도를 갖고 따지면 그 때가 더 했다. 미국이 북폭 일보직전까지 갔었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일부 민주화세력의 부패'는 '도진개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슬하에 '홍삼 트리오'가 있었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밑에는 차남 현철씨가 있었다.

'부동산과 교육문제'도 그렇다. 노태우 정권과 김대중 정권, 그리고 노무현 정권을 관통하는 게 부동산 문제다. '급성'이 아니라 '만성'이라는 얘기다. 교육의 핵심문제로 '하향평준화'를 꼽는다면 그 조치를 단행한 시점이 언제인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논쟁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 원인과 결과를 나누지 않고, 본질과 현상을 가르지 않고,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논쟁은 '우격다짐'이 된다. '훈육'이 아니라 '매타작'으로 가는 법이다.

나누고 갈라서 봐야 할 대표적인 사안이 '저조한 경제성장률과 민생고'일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민주세력 무능론'을 결정적으로 유포시킨 게 바로 이것이다.

<중앙일보>의 '진단'에 따르면...

지난 2005년 1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식료품점을 30여년간 운영해온 이종순씨가 TV 생중계화면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 기자회견을 지켜보다 걸려온 주문전화를 받고 있다. 이날 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를 강조했지만 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
지난 2005년 1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식료품점을 30여년간 운영해온 이종순씨가 TV 생중계화면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 기자회견을 지켜보다 걸려온 주문전화를 받고 있다. 이날 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를 강조했지만 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나라당 외에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한 데가 한 곳 더 있다. <중앙일보>다.

수치를 내세운다. 1987~96년의 10년 동안 연평균 실질경제성장률이 8.37%였던 반면 97~2006년 동안은 4.36%로 반토막났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처분가능소득은 15%였다가 5%로 세 배 줄었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이 수치를 근거로 정리한다. 1987~96년의 시대정신은 "성장과 효율"이었으며, 이 기간의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사례"였다고 평한다. 반면 97년 이후는 "한국 경제 특유의 역동성에 큰 단절이 생긴 시기"라고 한다.

<중앙일보>의 '안내'를 따르다보니 의문이 생긴다. '풍성한 10년'과 '빈곤의 10년'을 나누는 기준점이 된 97년은 민주세력이 집권에 성공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외환위기가 발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어떻게 평가하는 걸까?

이렇게 대답한다. "외환위기가 큰 몫을 한 게 사실"이며 "세계화가 양극화를 부채질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건 "외부 여건"일 뿐이다. "우리 내부에서 연유한 바가 더 크다"고 한다. "10년간 경제가 지속적으로 주저앉는 것을 외부 여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저성장이)너무 심각하고 너무 오래가고 있다"고 한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의 진단에 따르면 상수는 '무능한 민주세력'이다. 외환위기는 변수, 외부 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진단은?

노무현 대통령의 진단은 정반대다. 노 대통령 자신의 '지표경제'와 국민의 '체감경제'가 확연히 다르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따로 떼어내 검토할 사항이다. 여기서 집중할 것은 '과정'이다. 노 대통령의 진단에 따르면 외환위기는 외부 여건이 아니라 내부 요인이다.

"관치경제·관치금융·법치가 아닌 자의적 통치라는 독재시대의 낡은 체제를 신속히 개혁하고 정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지난 10년은 이런 "개발독재체제"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극복"하는 과정이었고, 그 주체가 바로 "완전한 민주정부"였다고 한다.

논점이 제대로 잡혔다. 두 진단이 상극을 이룬다. 원인과 결과,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이 확연히 갈린다. 논쟁은 피해갈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논쟁이 더 격화될 게 뻔하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외환위기 10주년을 맞는다. 대선 쟁점이 될 건 불문가지다.

서울역 앞 남대문로 쪽방촌에는 700가구 800여명이 1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서울역 앞 남대문로 쪽방촌에는 700가구 800여명이 1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궁금한 건 전선이다. '잃어버린 10년'의 논쟁구도가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구도로 짜여질까?

속단할 수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제기한 사람이 범여권 안에도 있다. 김근태 의원이다.

그가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민주개혁세력이 지난 10년간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뤄냈을지 모르겠으나 국민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무능했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10년, 활력을 못 찾은 10년이었다"고 했다.

'잃어버린 10년'의 주창자가 범여권 안에 있으니 논쟁구도를 짜기 이전에 논쟁진영부터 정리해야 할 판이다. 범여권 대통합의 명분 가운데 하나로 '번영'을 꼽고 있으니 대통합의 근거 마련을 위해서도 교통정리는 필수다.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이건 정치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비전의 문제이며, 대통합의 이유를 확인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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