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자친구와 난 서울의 한 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캠퍼스 커플이다. 우리 둘은 여행가는 것을 좋아해서 색다르고 멋진 곳을 찾아 다니고 아기자기한 추억을 만들며 1년 반 동안 예쁘게 사랑하고 있다.거의 매일 같이 붙어다니던 우린 올해 2월 5일부터 장거리 커플이 되었다. 남자친구는 군입대를 했고, 난 그 다음 날인 2월 6일에 두달 간 가족이 있는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2년 동안 면회도 가고, 휴가도 가고 편지와 전화도 주고 받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고 슬퍼져서 자꾸만 울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중견인차량 운전병으로 지원해 특기병으로 입대한 내 남자친구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대전 육군종합군수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았다. 4월 24일에는 자대로 옮기는 날이었는데 그 전날에도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화랑대 역에 도착한다고? "라쿤! 라쿤! 나 내일 자대로 가는데, 화랑대 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갈 것 같아.신기하지? 거기 라쿤이가 영어학원 선생님 했던 곳 이잖아. 우리 거기서 자주 만났었지?"('라쿤'은 내가 너구리를 닮았다고 남자친구가 지어준 애칭이다)"와아! 정말? 응? 근데 화랑대 역? 지하철 타고 오는 거야?' 그러자 남자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도 오늘 알게 된 사실인데, 화랑대 기차역도 있데. 정말 신기하지? 우리 정말 운명인가봐, 어떻게 또 이렇게 이어지지?"지난해 난 지하철 화랑대 역 근처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1년동안 일을 했었다. 밤 9시에 일을 마치면 늘 남자친구가 지하철 화랑대 역에서 날 기다리며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지치고 힘든 하루였지만 밝게 웃는 남자친구를 보며 조잘조잘 얘기를 하면 금세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아졌다. 화랑대 역은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 추억의 장소인데 우연치 않게 '또 다른' 화랑대 역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지하철 화랑대 역만 알고 있었는데, 화랑대 기차역이 근처에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정말? 너무 좋아! 보고싶어! 몇시쯤에 도착하는지 알려줘. 내가 가서 기다리고 있을께!""어? 오전 11시쯤 기차 탄다고는 하는데 도착시간은 모르겠네. 나도 라쿤 많이 보고 싶어. 못 볼 수도 있고, 보더라도 5분? 아니 1분 정도 밖에 못 볼거야. 바로 버스 타고 갈꺼거든. 그리고 나 마음대로 행동도 못 할거야. 너 울면서 돌아가는 모습 보면 걱정될 것 같아. 보고 싶어도 우리 참자.""나 자기 보러 갈래. 아니 못 봐도 괜찮아. 그래도 1초라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 아주 잠시만 봐도 괜찮아. 나 갈게."그날 저녁에는, 인터넷에 화랑대 역으로 가는 길을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은 간이역이라는 것 외에 다른 정보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기차 동호회에 들어가 검색해서 찾은 화랑대 역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기.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도착하는 기차가 있으면 좀 알려 주시겠어요?"역장 아저씨께서는 그 사이에는 기차가 없다고 하시며 서울역이나 청량리역에 문의하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아마 신병수송열차라 일반인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 같았다. 일단, 무조건 찾아가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남자친구를 볼 생각에 들떠서 쉽게 잠을 못 이루고 늦게 잠이 들었다.드디어 화랑대 역에서 만나기로 한 날, 늦게 잠이 들었던 난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게 일어났다. 내 자신에게 화가나고 속상했다. 다급하게 준비를 하고 화랑대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도착시간 2분을 남기고 화랑대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다급해져서 바로 택시를 탔는데, 간이역이라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택시 아저씨께서도 잘 모르시겠다며, 확실하진 않지만 육군사관학교 근처에서 철도를 어렴풋이 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일단 믿어보기로 하고 최대한 빨리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화랑대 간이역에 도착했다. 영화에나 나올만한 간이역 @IMG2@택시에서 내리니 화랑대 간이역이 보였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영화에서 나올만한 한적하면서도 아담하고 푸근한 이미지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 근처에서 군인 2-3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를 보자 놀라는 기색이었다.'어, 군인이다! 그럼 벌써 도착했다는 뜻인데. 어디있지? 왜 3명 밖에 없지?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벌써 간 건가?'나는 거의 울먹이며 역 안과 근처를 둘러보며 남자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역 안에 있으면 말을 걸 것 같고, 또 남자친구를 보러왔다는 사실을 알면 저지할 것라고 생각되어 역에서 좀 떨어져서 서 있었다.그 때 군용 버스 3대가 역 앞에 섰다. 그제서야 아직 군용열차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이 되었다. 콩닥콩닥 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물이 가득 고인채로 남자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기차소리가 들렸다. 난 역 안 개찰구 앞으로 뛰어 들어갔다. 기차가 도착하고, 신병들이 하나 둘씩 내렸다. 기차에서 내린 모든 훈련병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고, 곧 술렁대기 시작했다. 난 긴장됐고, 남자친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나는 내 남자친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똑같은 복장과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을 보자 다들 비슷비슷해 보여 눈앞이 깜깜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남자친구를 찾았다. 어수선해진 분위기에 간부들은 나를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고 나에겐 별 말 하지 않았지만 신병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앞에 보이는 남자친구만 보였다. 인원점검을 마치고 줄 지어서 오는 긴 행렬.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내 사랑. 우리의 두 눈이 마주치자, 눈치를 챈 한 간부가 "한눈 팔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 라고 다그쳤다.나는 어제 밤에 쓴 편지를 전해주었다. 남자친구는 아주 잠시 내 손을 꼭 잡고 편지가 들어있는 종이 가방을 건네주고서는 "사랑해. 고마워. 많이 보고싶었어. 나 지금 가야해. 따라오면 안 돼"라는 말을 남기고 긴 행렬을 따라 갔다.그 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 숨이 막힐 정도로 행복하고 좋았다.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난 따라가지 못하고 역 입구에 서 멀어져 가는 남자친구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바로 버스를 타게 될 줄 알았는데 남자친구가 타게 될 버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아 다들 짐을 풀고 앉아 있었다. 남자친구는 나와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앉아 있었는데 군인들 사이로 마음대로 지나갈 수 있는 여건도 아니어서 멀리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남자친구가 나 때문에 혼나기라도 할까봐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꾹 참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다가가지 못하고,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해서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 버리고야 말았다. 소령을 역장 아저씨로 착각하다 그 때, 옆에 계시던 역장 아저씨께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여기 남자친구 보러왔어요?" "네. ""둘이 많이 좋아하나 봐요. 남자친구 아주 잠깐 밖에 못 볼텐데 여기까지 온거예요?정말 애뜻한게 한편의 영화같아요." 우리 나이가 그다지 많지 않아 가볍게 보실 줄 알았는데,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했다.역장 아저씨는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육군사관학교에서 근무하는 심 아무개 소령 이라고해요. 요즘에 군대도 많이 변해서 옛날처럼 힘들지만은 않아요. 내 연락처를 알려줄테니까 남자친구 자대배치 받으면 나한테 꼭 알려줘요. 내가 남자친구 자대를 가까이 배치받도록 할 수는 없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가 조언도 해주고, 간부들에게 좀 더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하는 정도는 해줄 수 있어요. 아가씨가 눈물 흘리는 모습 보고, 얘기 들어보니 서로 참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어요. 오래오래 변하지 말고 사랑하세요." 난 순간 당황했다. 군대 복장에 익숙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소령님을 역장 아저씨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처음 본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어 주시고, 도와주신다는 말에 너무 감사했고 남자친구가 힘이 들 때, 좋은 말씀을 해주실 것 같아 안심이 됐다.옆에 계시던 진짜 역장 아저씨께서 우리 대화를 들으셨는지, "남자친구 보러 여기까지 오신 분은 처음 봐요. 정말 대단해요. 소령님. 말이라도 붙이게 해주세요"라고 이야기 하셨다. "그럼 내가 남자친구에게 말을 걸어볼테니, 나와 함께 갈래요?""네? 소령님, 정말이세요?""하지만 아가씨, 한가지 약속해줘야 되요. 둘이 얘기는 하면 안 되고, 듣고 있기만 해야돼. 그대신 눈물 닦고 기분 좋게 조심해서 집에 가는 거예요~"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고 왔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큰 행운이 찾아왔다. 소령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남자친구가 있는 무리 쪽으로 갔다. 거기서 남자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간부들에게도 잘 대해주라고 하시고,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남자 친구의 군복 입은 모습이 참 잘 어울리고 멋있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대답할땐,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말투에 군기가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남자다워 보이고 어른스러워 보여 든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우리는 부러운 시선을 느끼며, 서로 애뜻하게 바라보았다. 소령님은 남자친구에게 마지막으로나한테 한마디 하라고 하셨다. "사랑해. 조심해서 들어가야돼" 라는 말에 "나도 사랑해" 라는 말을 남기고, 잠깐 손을 잡고 돌아섰다.철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내 옆으로 몇대의 군용버스가 지나갔다. 지나가는 버스안에서 남자친구는 나를 향해 손을 이마에 대는 군대식 경례를 하였다. 나는 버스가 안 보일때까지 서 있다가 행복 가득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화랑대 역을 생각하면 미소가 번진다 화랑대 역에서의 만남. 그 추억만 생각하면 정말 행복하다. 정말 한편의 영화처럼 애뜻하게 만났고, 좋은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까지 얻었다. 남자친구도 화랑대역에서의 기억을 자주 언급하곤 한다. 주변에 있던 동기들도 다들 놀라고 부러워했다며, 와줘서 고맙고 행복했다고 한다. 다음에 휴가 나올 때는 함께 화랑대 역에 가기로 약속했다. 일상속의 작은행복을 느끼게 해준 지하철 화랑대 역에 이어 애뜻하고, 특별하고, 달콤한 '또 다른' 화랑대 기차역에서의 추억은 잊지 못할 것이다.남자친구가 재대를 하고, 또 10년이 지나도 다시 찾아 가도 간이역이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화랑대 역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아직 이병이라 많이 힘들고 시간도 없을텐데 매일매일 전화해주고, 나한테 최선을 다해 잘해주어서 고맙다. 멀리 있어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 정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10일 남자친구는 달콤한 4박5일의 휴가를 보내고 자대로 복귀했다.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고 멀게만 느껴졌던 100일 휴가에는 동해 망상해수욕장에 다녀왔다. 남자친구가 근처에 있는 등대, 촛대바위, 천곡동굴 등을 데리고 가서 즐거운 휴가를 보냈다."군대 안에 있으면서 이런 정보 찾기를 어려웠을 텐데. 이런 곳 어떻게 알아봤어?"라고 물었더니, 웃으며 "있어, 비밀이야"라고 대답했다.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의문이 풀렸다. 심심해서 여행안내책자 을 읽었는데, 특집으로 동해여행을 다룬 기사를 발견하고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휴가 첫날에 KTX를 타고 대전에 있는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읽은 것이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 남자친구. 이렇게 기차와 기차역은 우리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준다.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글


태그:#화랑대역, #기차, #KTX, #사랑, #군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